내용 요약
정의
조선 후기 공조좌랑, 영평현령 등을 역임한 문신.
가계 및 인적 사항
주요활동
1682년(숙종 8) 천거로 관직에 올라 창릉‧영릉‧효릉 등의 참봉 등에 임명되었으나 병을 이유로 곧 그만두었다. 이어 1688년 종부시 주부에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기사환국 당시 인현왕후가 폐위되자 분개하며 상소하였는데, 그 말이 장엄하고 정직하여 보는 사람들이 매우 놀랐다고 한다.
갑술환국 이후 공조좌랑에 임명되었고, 1696년(숙종 22) 영평현령에 제수되어 진휼에 공을 세웠다. 이어 세자의 보필을 맡았으나 얼마 되지 않아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장례를 치르기 어려울 정도로 집안이 가난하여, 국왕 숙종이 특별히 부의(賻儀)를 내려주었다.
학문과 저술
참고문헌
원전
- 『귀록집(歸鹿集)』
- 『농암집(農巖集)』
- 『승정원일기』
- 『조선왕조실록』
논문
- 김윤경, 「閔以升 智性論의 轉變」(『양명학』 29, 한국양명학회, 2011)
- 임홍태, 「閔以升 사상을 통해 본 조선후기 智와 知覺의 同異論爭」(『한국철학논집』 23, 한국철학사연구회,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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