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언휘(彦暉), 호는 성재(誠齋)이다. 성종의 부마 민자방(閔子芳)의 5대손으로, 아버지는 진사 민만(閔晩)이다. 어머니 압해정씨(押海丁氏)는 참봉 정언찬(丁彦瓚)의 딸이다. 태어나기도 전에 아버지를 여의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 과거 공부에 뜻을 두었으나, 대장부의 사업이 여기에 있지 않다며 그만두고는 육경(六經)과 오서(五書), 『심경(心經)』, 『근사록(近思錄)』 등의 공부에 매진하였다. 이후 윤증(尹拯)의 문하에 들어가 학문을 배웠는데, 윤증으로부터 실심(實心)과 실공(實工)이 뛰어나다는 극찬을 받았다.
1682년(숙종 8) 천거로 관직에 올라 창릉‧영릉‧효릉 등의 참봉 등에 임명되었으나 병을 이유로 곧 그만두었다. 이어 1688년 종부시 주부에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기사환국 당시 인현왕후가 폐위되자 분개하며 상소하였는데, 그 말이 장엄하고 정직하여 보는 사람들이 매우 놀랐다고 한다.
갑술환국 이후 공조좌랑에 임명되었고, 1696년(숙종 22) 영평현령에 제수되어 진휼에 공을 세웠다. 이어 세자의 보필을 맡았으나 얼마 되지 않아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장례를 치르기 어려울 정도로 집안이 가난하여, 국왕 숙종이 특별히 부의(賻儀)를 내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