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조선 후기 영천군수, 첨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가계 및 인적 사항
주요 활동
이후 서용되어 숙종 즉위 후인 1678년(숙종 4) 충훈부 도사에 임명되었다. 1682년에는 영천군수로 나아갔으며, 1701년에는 광흥창수에 임명되었다. 이어 1702년(숙종 28) 부호군, 부사용 등의 군직을 거쳐 첨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관직 생활 외의 자세한 행적은 남아 있지 않으나, 『호보(號譜)』의 기록에 의하면 어렸을 때부터 신동으로 이름이 나서 명나라 정제독(程提督)이 그를 불러 보고는 크게 칭찬하여, 부인이 수를 놓은 세건(帨巾) 두 폭을 선물하였다고 한다. 또한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 당시 동생 유명웅(柳命雄)과 함께 인현왕후의 폐위를 반대하는 소를 올리려 하였으나, 박태보(朴泰輔)가 주도하여 소청을 연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에 참여하였다고 한다.
학문과 저술
참고문헌
원전
- 『동현호록(東賢號錄)』
- 『승정원일기』
- 『조선왕조실록』
- 『호보(號譜)』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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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임금이 탄 수레를 호위하여 따르던 일. 또는 그런 사람.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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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훈공을 장부나 문서에 기록함.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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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고려ㆍ조선 시대에, 공신이나 전ㆍ현직 고관의 자제를 과거에 의하지 않고 관리로 채용하던 일.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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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조선시대, 종묘서(宗廟署)의 으뜸 벼슬. 품계는 종5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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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일하는 사람의 곁에서 그 일을 거들어 주는 사람.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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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임금의 명(命)으로 능이나 묘를 보살피던 일.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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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7
: 죄를 지어 면관(免官)되었던 사람을 다시 벼슬자리에 등용함.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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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8
: 조선 시대에, 중추원에 속한 정삼품 무관의 벼슬. 태종 때 인진사를 고친 것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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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9
: 임금에게 상소하여 청함.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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