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간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 연산현감, 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학자.
이칭
  • 시호문경(文敬)
  • 직경(直卿)
  • 후재(厚齋)
인물/전통 인물
  • 본관청풍(淸風)
  • 사망 연도1732년(영조 8)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연산현감|지중추부사
  • 주요 저서동유예설(東儒禮說)|예기유집(禮記類輯)|후재집(厚齋集)
  • 출생 연도1646년(인조 24)
  • 출생지광주(廣州)
집필 및 수정
  • 집필 2021년
  • 나종현 (서울대 연구교수)
  • 최종수정 2025년 07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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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김간은 조선 후기 연산현감, 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학자이다. 박세채의 제자로서 노론을 대표하는 학자로 활동하였으며, 산림(山林)으로 여러 차례 벼슬에 임명되었으나 응하지 않고 학문 연구에 매진하였다. 특히 예학에 밝아 『동유예설(東儒禮說)』, 『예기유집(禮記類輯)』 등을 집필하였다.

정의

조선 후기 연산현감, 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학자.

가계 및 인적 사항

김간(金榦)의 본관은 청풍(淸風), 자는 직경(直卿), 호는 후재(厚齋)이다. 생부는 관성재(觀性齋) 김도(金濤)이며, 생모는 한담(韓曇)의 딸이다. 출생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백부(伯父)인 김수(金洙)에게 입양되었다.

주요 활동

1668년(현종 9) 대과 초시에 1등으로 급제하였지만 최종적으로는 합격하지 못하였다. 이후 학행으로 천거되어 여러 관직에 임명되었으나 대부분 나아가지 않고 처사로서의 풍모를 보이며 학문에 매진하였다.

20대에 서인의 핵심 인물인 송시열(宋時烈)박세채(朴世采)를 연달아 만난 후 성리설(性理說)과 예설(禮說)에서 가르침을 받았으며, 그중에서도 특히 박세채의 적전(嫡傳)을 자처하며 정치적‧학문적 계승자로 활동하였다. 송시열과 박세채가 사후 공격을 받을 때에도 지속적으로 변호하는 글을 올리며 두 스승을 옹호하였다. 기해예송에서의 논의를 보고 윤휴와 절교한 바 있다.

스승 박세채는 노‧소 일방으로 자처하지 않았으나, 갑술환국 이후에는 노론의 입장으로 기울어진 바 있다. 이에 김간 또한 노론의 입장에 서게 되었으며, 최석정(崔錫鼎)의 『예기유편(禮記類編)』 등에서 소론 정권이 성립된 경종조에는 조정으로부터 중용되지 못하였다.

영조가 즉위한 후에는 산림으로서 융숭한 대우를 받으며 공조참의, 대사헌, 공조판서, 우참찬 등 여러 관직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나아가지 않았다. 1725년(영조 1) 8월 영조의 긴밀한 권유로 인해 입대하여 일곱 조목의 차자를 올렸을 뿐이었다. 그러나 국휼(國恤)과 관련한 자문에는 지속적으로 응하고, 『맹자(孟子)』‧『중용(中庸)』 · 『소학(小學)』 등의 차기(箚記)를 지어 올리는 등 산림으로서의 책임을 다하였다.

학문과 저술

스승 박세채의 학문을 이어받아 주자정론(朱子定論)을 고수하였으며, 박세당이나 허목의 학설이나 양명학 등의 이설을 경계하였다. 특히 예학에 조예가 깊어 『동유예설(東儒禮說)』‧『예기유집(禮記類輯)』 등을 저술하였다.

성리설에도 밝아 당시 노론 내에서 철학적 쟁점이 되었던 인물성동이론(人物性同異論) 논쟁에서 낙론계(洛論系)의 인물성동론(人物性同論)에 동조하였다. 그러나 세부적으로는 이견이 있어 김창협의 학설을 비판하기도 하였다. 문집으로 『후재집(厚齋集)』이 있다.

상훈과 추모

1758년(영조 34) 문경(文敬)의 시호가 내려지고, 의정부 영의정에 증직되었다.

참고문헌

  • 원전

  • - 『승정원일기』

  • - 『조선왕조실록』

  • 논문

  • - 유영옥, 「조선후기 경학가와 예학가로 기억해야 할 김간(金簡)」(『연보와 평전』 4, 부산대학교 점필재 연구소, 2010)

  • - 이선열, 「김창협과 김간의 지각 논변」(『동양철학연구』 62, 동양철학연구회, 2010)

  • - 정경희, 「17세기 후반 ‘전향노론’ 학자의 사상 –박세채‧김간을 중심으로-」(『역사와 현실』 13, 한국역사연구회, 1994)

주석

  • 주1

    : 학문과 덕행, 곧 배움과 실천을 아울러 이르는 말. 우리말샘

  • 주2

    : 정통의 혈통에서 정통으로 이어받음. 우리말샘

  • 주3

    : 궁중에 들어가 임금을 알현하던 일. 우리말샘

  • 주4

    : 조선 시대에, 일정한 격식을 갖추지 않고 사실만을 간략히 적어 올리던 상소문. 우리말샘

  • 주5

    : 국민 전체가 복상(服喪)을 하던 왕실의 초상. 태상왕(太上王), 상왕(上王), 왕, 왕세자, 왕세손 및 그 비(妃)의 상사(喪事)를 이른다. 우리말샘

  • 주6

    : 책을 읽으며 얻은 바를 그때그때 적어 놓음. 또는 그런 책.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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