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조선 후기, 여항 문학을 이끈 문장가.
가계 및 인적사항
주요활동
1705년(숙종 31)에는 일본으로 가는 통신사에 역관으로 함께 참여하였고, 1717년(숙종 43)에는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나 중장년기에는 대체로 관직 생활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주로 노론 계열의 인물들과 교유하였기 때문에 노론이 화를 당한 신임사화(辛壬士禍) 당시에는 가족들과 함께 계룡산 완암곡(浣巖谷)으로 피신하였다. 50이 넘은 늦은 나이에 승문원 제술관, 통례원 인의, 귀후서 별제 등을 거쳐, 첨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시사(詩社) 활동을 통해 사대부, 여항시인, 평민가객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과 교유하면서 문학으로 명성을 얻어 당대의 사대부들로부터도 존중을 받았다. 홍낙명(洪樂命), 홍봉한(洪鳳漢), 김종후(金鍾厚), 김종수(金鍾秀) 등 당대의 명사들과도 교분을 쌓았다.
정내교의 문학은 천기론(天機論)을 바탕으로 현실 비판의식을 담은 시, 사회적으로 미천한 여항인들을 다룬 전(傳)을 통해 조선 후기 여항문학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고 평가받는다.
학문과 저술
참고문헌
원전
- 『본암집(本庵集)』
- 『완암집(浣巖集)』
단행본
- 김갑기·이종찬편, 『조선후기한시작가론』(이회, 1998)
논문
- 김경회, 「정내교의 '김택보 만최 묘지명'에 나타난 정체성의 변화 고찰」(『감성연구』 13,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2016)
- 허경진, 「정내교·정민교 형제의 사회시에 대하여」(『목원어문학』 8, 목원대학교 국어교육과, 1989)
- 이상진, 「여항인의 전에 대하여: 정내교의 ‘전’ 작품의 분석」(『한문교육논집』 1, 한국한문교육학회, 1986)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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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조선 시대에, 중추원에 속한 정삼품 무관의 벼슬. 태종 때 인진사를 고친 것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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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좁고 지저분한 거리.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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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글을 잘하여 세상에 알려진 이름.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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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유가(儒家)의 학업.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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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조선 시대에, 소과(小科) 가운데 ‘사서오경’을 시험 보던 과목. 초시(初試)와 복시(覆試)가 있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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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조선 시대에, 승문원에 속한 벼슬.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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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7
: 시인들이 조직한 문학적 단체.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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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8
: 조선 후기에, 위항 문학을 이룬 시인. 대표 인물로는 임준원(林俊元), 정내교(鄭來僑), 이언진(李彦眞) 등이 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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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9
: 여염의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벼슬을 하지 않는 일반 백성들을 이르는 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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