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낙명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홍문관부제학, 형조판서, 병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시호문청(文淸)
  • 신재(新齋)
  • 자순(子順)
인물/전통 인물
  • 본관풍산(豊山 :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
  • 사망 연도1784년(정조 8)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이조참의|대사헌|강화유수|홍문관부제학|병조판서
  • 출생 연도1722년(경종 2)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양수 (청주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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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홍문관부제학, 형조판서, 병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자순(子順), 호는 신재(新齋). 홍중기(洪重箕)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홍석보(洪錫輔)이고, 아버지는 예조판서 홍상한(洪象漢)이며, 어머니는 어유봉(魚有鳳)의 딸이다. 외할아버지 어유봉으로부터 수학하였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41년(영조 17) 사마시에 합격하고, 1754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57년 정언·사서를 역임하고, 1762년 강동현령, 이듬해 부응교·필선·응교·교리를 지냈다. 1764년 부제학, 이듬해 참판·참의, 1766년에 대사성이 되었다.

1768년 승지, 이듬해 이조참의, 1773년에 대사헌을 지냈다. 정조 즉위년에 강화유수를 거쳐 홍문관부제학이 되고, 1778년(정조 2) 형조판서를 거쳐, 이듬해 병조판서를 지냈다.

정조 초 세도가인 홍국영(洪國榮)이 친척이라 하여 높은 벼슬에 매번 천거하였으나 병을 핑계로 정계에서 물러났다가 1780년홍국영이 실각하자 다시 등용되어 한성부판윤·의정부우참찬이 되었고, 그 뒤에 이조판서에 제수되었으나 사직하고 취임하지 않았다.

경사(經史)에 밝고 특히 『소학』을 애독하였으며, 만년에 이황(李滉)과 중국의 한유(韓愈)를 사숙하여 경서와 문장에 침음하였다.

저서로는 『신재문집』 6권과 『소학초록(小學抄錄)』·『경술편(敬述篇)』·『기락편(旣樂編)』·『유은록(儒隱錄)』 등이 있다. 시호는 문청(文淸)이다.

참고문헌

  • - 『영조실록(英祖實錄)』

  • - 『정조실록(正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연천집(淵泉集)』

  • - 『한국계행보(韓國系行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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