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홍문관부제학, 형조판서, 병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768년 승지, 이듬해 이조참의, 1773년에 대사헌을 지냈다. 정조 즉위년에 강화유수를 거쳐 홍문관부제학이 되고, 1778년(정조 2) 형조판서를 거쳐, 이듬해 병조판서를 지냈다.
정조 초 세도가인 홍국영(洪國榮)이 친척이라 하여 높은 벼슬에 매번 천거하였으나 병을 핑계로 정계에서 물러났다가 1780년홍국영이 실각하자 다시 등용되어 한성부판윤·의정부우참찬이 되었고, 그 뒤에 이조판서에 제수되었으나 사직하고 취임하지 않았다.
경사(經史)에 밝고 특히 『소학』을 애독하였으며, 만년에 이황(李滉)과 중국의 한유(韓愈)를 사숙하여 경서와 문장에 침음하였다.
저서로는 『신재문집』 6권과 『소학초록(小學抄錄)』·『경술편(敬述篇)』·『기락편(旣樂編)』·『유은록(儒隱錄)』 등이 있다. 시호는 문청(文淸)이다.
참고문헌
- 『영조실록(英祖實錄)』
- 『정조실록(正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연천집(淵泉集)』
- 『한국계행보(韓國系行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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