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조선 전기 언관으로서 언론 활동을 펼치다가 화를 당한 문신 관료.
가계 및 인적 사항
주요 활동
한훈 역시 사간원과 홍문관의 일원으로서 언론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한편, 1497년(연산군 3) 홍문관 부교리 직에 단독으로 의망(擬望)된 일로 물의가 일기도 하였으나 연산군이 탄핵을 수용하지 않았다.
1498년 7월 무오사화가 일어났을 때 한훈이 김일손과 함께 소릉(昭陵) 복위를 논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 이때 한훈은 도망을 갔다가 곧 붙잡혀 국문을 받은 뒤 이성(利城)으로 부처(付處)되었다. 그 뒤 1501년(연산군 7) 방면되었었는데, 이후의 행적은 분명하지가 않다.
그러다가 1504년 10월 갑자사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과거 언관 시절의 한훈의 발언이 문제가 있다고 하여 “부관참시하고 능지처참하는 형벌”이 추가로 내려진 기사가 확인된다. 갑자사화 과정에서 무오사화 이전 김일손 등과 소릉 복위 문제를 언급하였던 것이 문제가 되어 처형되었다가 이때 처벌이 가중된 것으로 보인다.
이후 죄가 그의 부친에게까지 연좌되어 한훈의 부친 한충인까지 고초를 겪었는데, 한훈의 누이이자 신수근의 처인 한씨가 연좌된 아버지의 죗값을 속바치기를 청원하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한충인은 결국 유배되었다가 추가로 형벌이 가중되어 교형에 처해졌다. 한훈은 척신 출신의 인사였지만, 문과에 급제한 뒤 청요직에서 언론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가 사화가 일어나면서 처벌된 인사였다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원전
- 『성종실록(成宗實錄)』
-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논문
- 한희숙, 「조선 초기 한확의 생애와 정치활동」(『한국인물사연구』 18, 한국인물사연구회, 2012)
- 한충희, 「朝鮮初期 淸州韓氏 永矴(~1417 이전, 知郡事贈領議政)系 家系硏究」(『계명사학』 6, 계명사학회, 1995)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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