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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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사간원(司諫院)의 정6품 관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성준 (수원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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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사간원(司諫院)의 정6품 관직.

내용

정원은 2인이다. 1392년(태조 1) 7월의 신반관제(新頒官制)는 고려의 관제를 습용(襲用)한 것이므로 사간원의 전신인 낭사(郎舍)의 간관(諫官) 11인 중 좌우습유(左右拾遺) 각 1인이 있어 정6품이었는데, 이 습유가 뒤에 정언으로 바뀐 것이다.

낭사는 문하부(門下府)의 속아문(屬衙門)으로서 간관의 직무를 가지고 사헌부와 더불어 대간(臺諫)을 구성하고 있었다. 1401년(태종 1) 7월 문하부를 혁파하고 의정부를 강화할 때 문하부 낭사는 사간원으로 독립하였다. 이 때 습유가 정언으로 개정되었으며, 간관의 정원은 7인으로 줄었다.

1460년(세조 6) 5월 한재가 너무 심하여 용관(冗官)을 없앨 때 사간 1인, 헌납 2인, 정언 1인을 혁파함으로써 간관은 3인으로 대폭 줄게 되었다. 그러나 1463년 7월 사간원의 사무가 너무 번다하다는 주장이 있어서 헌납 1인을 복설하였으며, 1470년(성종 1)에는 또 정언 1인을 증원하여 사간원의 정원은 5인으로 고정되었다.

국초에는 정언이 2인으로 좌우 각 1인이 있어 좌정언·우정언으로 구분되어 있었으나 『경국대전』에는 그저 정언 2인으로만 기재되어 있다.

참고문헌

  • - 『태조실록(太祖實錄)』

  • - 『태종실록(太宗實錄)』

  • - 『세조실록(世祖實錄)』

  • - 『성종실록(成宗實錄)』

  • - 『경국대전(經國大典)』

  • - 『조선초기(朝鮮初期)의 언관언론(言官·言論) 연구(硏究)』 (최승희, 서울대학출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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