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이조판서, 우의정, 좌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504년에 다시 돈녕부첨정(敦寧府僉正)에 기용되고, 이듬해 우의정이 되어 등극사(登極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506년 좌의정으로 있을 때 박원종(朴元宗) 등이 장차 연산군을 폐하고 진성대군(晉成大君: 중종)을 임금으로 추대할 뜻을 품고 연산군의 처남이자, 진성대군의 장인인 신수근에게 넌지시 누이와 딸 중 그 어느 편이 더 중하냐고 물어보자, 신수근은 자리를 차고 일어서면서 임금은 비록 포악하나 총명한 세자를 믿고 살겠다고 하였다.
박원종 등이 그 마음을 움직일 수 없음을 알고 중종반정 때 맨 먼저 역사인 신윤무(辛允武)·이심(李瀋) 등을 보내어 수각교(水閣橋)에서 신수근을 살해하였다. 그 때 시종(侍從)도 몸으로 막다가 함께 죽음을 당했고, 아우인 유수 신수겸(愼守謙)과 판서 신수영(愼守英)도 모두 죽음을 당하였다.
반정으로 임금이 된 중종이 신수근의 딸을 왕비로 책봉했으나 화를 두렵게 여긴 박원종 등에 의하여 폐출되었다. 1739년(영조 15) 딸인 단경왕후(端敬王后)의 능호가 온릉(溫陵)으로 추복(追復)됨에 따라 신수근도 왕의 장인으로서 영의정에 추증되고, 익창부원군(益昌府院君)에 추봉(追封)되었다. 시호는 신도(信度)이다.
참고문헌
- 『성종실록(成宗實錄)』
-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 『중종실록(中宗實錄)』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성호문집(星湖文集)』
- 『거창신씨세보(居昌愼氏世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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