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담양부사, 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그뒤 왕의 특명으로 담양부사로 나가 부역을 경감하는 등 선정을 베풀었다. 조정에서 치적을 높이 평가하여 승지로 승진시켰으나 부임 도중에 죽었다. 곽은이 죽자 부민들은 크게 비통해하였으며 오래도록 기신제(忌辰祭)를 지냈다.
절의에 바르기로 유명한 남효온(南孝溫)도 그 죽음을 슬퍼하는 글을 지어 후세에 남겼고, 이이(李珥)도 곽은의 자손을 현인의 후예라 하여 등용할 것을 주청하였다.
참고문헌
- 『성종실록(成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송자대전(宋子大全)』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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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가계 : 『국조문과방목』 卷之四(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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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四(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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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서장관으로 명나라행 : 성종실록23권, 1472년(성종 3)년10월 13일. "구달충을 보내어 표문을 받들고 중국에 가서 신정을 하례하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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