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후 ()

본암집 / 심기질변
본암집 / 심기질변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장령, 경연관, 자의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백고(伯高), 자정(子靜)
본암(本庵), 진재(眞齋)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721년(경종 1)
사망 연도
1780년(정조 4)
본관
청풍(淸風)
주요 관직
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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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장령, 경연관, 자의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청풍(淸風). 자는 백고(伯高) 또는 자정(子靜), 호는 본암(本庵) 또는 진재(眞齋). 할아버지는 참판 김희로(金希魯)이고, 아버지는 시직(侍直) 김치만(金致萬)이며, 어머니는 홍석보(洪錫輔)의 딸이다. 동생이 김종수(金鍾秀)이며, 민우수(閔遇洙)의 문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어려서부터 사부(詞賦)에 능하여 문명이 있었고, 1741년(영조 17) 생원이 된 뒤부터는 성리학자로 알려졌다. 1776년 지평(持平)에 이어 장령(掌令) · 경연관을 역임하였다. 이에 1778년 학행으로 천거되어 장령이 되고 경연관을 거쳐 자의(諮議)에 이르렀다.

영조대 임오화변(壬午禍變) 때에는 장헌세자(莊獻世子: 思悼世子)를 궁지에 몰아넣은 홍계희(洪啓禧) · 김상로(金尙魯) 등의 모의에 가담하였다. 또, 김종수가 벽파(僻派)인 김구주(金龜柱)와 일당이 되자, 행동을 같이하여 장헌세자의 장인인 홍봉한(洪鳳漢)을 공격하였다.

그 뒤, 김구주 일당이 제거되자 원빈(元嬪)의 오빠인 세도가 홍국영(洪國榮)을 따랐다. 다시 원빈이 죽고 홍국영이 물러나자 소를 올려, 그에게 기만당하였다고 변명하는 등 보신에 급급하였다.

후세 학자들은 권력에 추종하는 이같은 정치적 행적을 비난하여, 유자(儒者) 또는 선비로 자칭하면서도 유가(儒家)의 진의(眞義)를 해치고 국가의 흉화와 세도의 극치를 초래하는 역할에 가담하였다고 평하였다. 저서로는 『본암집(本庵集)』이 있고, 편서로 『가례집고(家禮集考)』 · 『청풍세고(淸風世稿)』가 있다.

참고문헌

『영조실록(英祖實錄)』
『정조실록(正祖實錄)』
『사마방목(司馬榜目)』
『은파유고(恩坡遺稿)』
『본암집(本庵集)』
관련 미디어 (4)
집필자
박정자(전 숙명여자대학교,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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