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조선 전기, 『비해당소상팔경시첩』을 엮은 왕족, 서예가.
가계 및 인적사항
주요 활동
안평대군은 원나라의 문인 서화가 조맹부(趙孟頫, 1254~1322)의 송설체(松雪體)를 토대로 서법에서 일가를 이루었다. 그의 명으로 당대 문인들의 팔경시(八景詩)를 엮어 만든 『비해당소상팔경시첩(匪懈堂瀟湘八景詩帖)』은 안평대군을 중심으로 펼쳐지던 조선 초기 시화(詩畵) 향유 문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그는 글과 글씨를 잘했을 뿐 아니라 그림에도 안목이 있어 조선 초기 서화 발달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1447년(세종 29) 음력 4월 20일 밤, 안평대군이 박팽년, 신숙주, 최항(崔恒)과 함께 도원을 거닐었던 꿈의 내용을 안견(安堅)에게 그리게 한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 제첨(題簽)과 시문(詩文)이 안평대군의 글씨로 알려져 있다.
안평대군은 그림도 잘 그렸다고 전하지만 남아 있는 작품은 없다. 그러나 신숙주의 『보한재집(保閑齋集)』에 안평대군이 서화를 사랑하여 누가 조그마한 쪼가리라도 가지고 있다고 들으면 반드시 후한 값으로 샀고, 그중 좋은 것은 표구하여 소장했다는 내용이 있다. 또 이 문집의 「화기(畵記)」에서 안평대군이 중국 송 · 원대의 작품, 특히 북송(北宋) 곽희(郭熙, 11세기)의 그림을 많이 소장했던 사실이 확인된다. 우리나라 화가 중에서는 안견의 그림을 30점이나 소장하여 안견에 대한 선호가 높았음을 알 수 있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부암동에 안평대군 이용 집터가 남아있다. 안평대군이 정자를 세워 글을 짓고 활을 쏘던 무계정사(武溪精舍) 터로 알려진 곳이다.
참고문헌
원전
- 『사육신문집(死六臣文集)』
단행본
- 안휘준, 『안견과 몽유도원도』(사회평론, 2009)
논문
- 안휘준, 「안평대군(安平大君) 이용(李瑢, 1418~1453)의 인물됨과 문화적 기여」(『미술사학연구』 300, 한국미술사학회, 2018)
- 조규희, 「안평대군의 상서(祥瑞) 산수: 안견 필 <몽유도원도>의 의미와 기능」(『미술사와 시각문화』 16, 미술사와 시각문화학회, 2015)
- 홍선표, 「〈몽유도원도〉의 창작세계: 선경의 재현과 고전 산수화의 확립」(『미술사논단』 31, 한국미술연구소, 2010)
- 황정연, 「15세기 서화 수집의 중심, 안평대군」(『내일을 여는 역사』 37, 2009)
인터넷 자료
- [국립중앙박물관 e뮤지엄](https://www.emuseum.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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