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병조판서, 찬성사, 영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이어서 예조판서·서북면도순문찰리사(西北面都巡問察理使)·평양부윤·대사헌·이조판서·참찬의정부사(參贊議政府事)·병조판서·찬성사 등 요직을 거친 뒤 1416년에는 좌의정이 되었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영의정에 임명되었다.
1419년(세종 1) 대마도를 정벌할 때 삼군도통사에 임명되었고, 1424년에는 영돈녕부사 겸 판호조사(領敦寧府事兼判戶曹事)를 지낸 뒤 1426년에 다시 좌의정에 임명되었으나 신병을 이유로 사퇴하고, 이로부터 4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시호는 정숙(貞肅)이다.
관직생활을 순탄하게 지냈다. 성품은 과단성이 있고 검소, 근면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도 이치를 따지고, 옳은 일을 주장할 때에는 조금도 꺼리지 않았다고 한다. 태종이 양녕대군의 세자위를 폐할 때 누구도 감히 말을 꺼내지 못하였으나, 먼저 현명한 이를 세자로 책봉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는 사실에서 유정현의 성품을 짐작할 수 있다.
참고문헌
- 『태조실록(太祖實錄)』
- 『태종실록(太宗實錄)』
- 『세종실록(世宗實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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