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운룡 선무공신교서 및 관련 고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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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운룡 선무공신교서 및 관련 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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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4년 문신 이운룡을 선무공신 3등에 책록한 교서. 공신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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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604년 문신 이운룡을 선무공신 3등에 책록한 교서. 공신교서.
내용

1604년(선조 37) 6월 25일에 선조는 국난을 극복하는 데 공을 세운 신하들에 대해 책훈 대상자와 훈호를 결정하였고, 4개월이 흐른 10월 29일에 공신들에 대한 교서를 반급하였다. 이때 책훈된 공신의 종류는 세 가지였는데, 호성공신(扈聖功臣), 선무공신, 청난공신(淸難功臣)이 그것이다. 이 중에서 선무공신은 왜군을 정벌한 장수 및 원병, 양곡 요청을 위해 명(明)나라에 왕래한 사신으로서 공이 있는 신하에게 내리는 칭호이다. 선무공신은 1등에 이순신(李舜臣) 등 3인, 2등에 신점(申點) 등 5인, 3등에 정기원(鄭期遠) 등 10인 총 18인이다.

이운룡은 자는 경현(景見), 호는 동계(東溪)이다. 그는 1596년(선조 29)에 경상좌수사가 되어 봉직하였고, 임진왜란이 끝난 후에도 1602년까지 계속 경상좌수사로 봉직하였다. 1605년(선조 38) 2월에는 안릉군(安陵君)으로 봉해졌으며, 그 해 7월에 경상우수사 겸 통제사로 제수되었다. 1607년(선조 40) 통제사직을 마치면서 식성군(息城君)으로 봉해졌다. 이운룡은 원래 원균의 막하였지만 이순신이 삼도수군통제사가 되면서 이순신의 휘하에서 활동하였다.

이 교서는 선조가 임진왜란 때 특히 옥포해전(玉浦海戰)에서 혁혁한 무공을 세운 식성군이운룡에게 선무공신(宣武功臣) 3등을 내린 상훈교서(賞勳敎書)이다. ‘교효충장의 선무공신……이운룡서(敎效忠仗義宣武功臣……李雲龍書)’라는 제목 아래에 4행이 해서체(楷書體)로 써져 있으며, 발급연월일 위에 ‘施命之寶(시명지보)’란 새보(璽寶)가 찍혀 있다. 내용은 24행이고, 공신명단이 21행, 발급 연월일 1행이다.

교서에는 이운룡이 임진왜란 때에 옥포해전 등에서 왜군을 크게 격파한 무공을 찬양하고 선무공신 3등에 책훈(策勳)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또한 포상으로 화상을 그려 후세에 남기고, 1계급의 작위를 올리며, 부모·처자도 1계급씩 올리되 자식이 없으면 생질(甥姪)이나 사위를 1계급 올려주며, 적장(嫡長)이 세습(世襲)하여 대대로 그 녹을 받게 하고 영세토록 죄를 사면할 것임을 밝히고 있다. 또한 반당(伴倘)4인, 노비 7명, 구사(丘史) 2명, 전지 60결(結), 은 5냥, 표리(表裏: 옷감) 1단(段), 내구마(內廐馬) 1필 등을 하사하고 있다.

교지는 1596년(선조 29) 1월 25일에 국왕이 이운룡에게 절충장군(折衝將軍) 경상좌도 수군절도사(慶尙左道水軍節度使)에 임명하는 사령장이다.

두가지 문서는 현재 국립진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고, 1994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식성군이운룡선무공신교서와 관계문서는 조선시대 공신 및 임진왜란사 연구, 이운룡의 전기자료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참고문헌

『동산문화재지정보고서』’94∼’95 지정편(문화재관리국, 1996)
「임진왜란 종전후 이순신 막하인물의 활동」(제장명, 『이순신연구논총』7,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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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김효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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