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군은 경상북도 최북단에 위치한 군이다. 동쪽과 남쪽, 서쪽은 경상북도 울진군·영양군·안동시·영주시, 북쪽은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삼척시·태백시와 접한다. 내륙 산악지대에 자리하여 대륙성기후를 보이며, 춘양면은 남북으로 형성된 긴 협곡의 지형적 특색으로 인해 기온이 낮아서 ‘한국의 시베리아’라고도 불린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과 백두대간 글로벌 시드볼트가 조성되어 있다. 봉화은어축제, 봉화송이축제 등이 유명하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1,202.7㎢, 인구는 2만 8836명이다. 봉화군청은 봉화읍 내성리에 있다.
경상북도 최북단에 위치한 봉화군은 동쪽과 남쪽, 서쪽은 경상북도 울진군 · 영양군 · 안동시 · 영주시와 접하고 북쪽은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 태백시 · 삼척시와 접한다. 수리적 위치는 동경 128°38′~129°12′, 북위 36°44′~37°06′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1,202.7㎢이고, 인구는 2만 8836명이다. 행정구역은 1개 읍[봉화읍], 9개 면[명호면 · 물야면 · 법전면 · 봉성면 · 상운면 · 석포면 · 소천면 · 재산면 · 춘양면]으로 구성되어 있고, 하위 행정 단위로 156개 행정리, 72개 법정리가 있다. 봉화군청은 봉화읍 내성리에 있다.
봉화군은 경상북도의 최북단에 위치하여 북쪽 태백산맥(太白山脈)의 연봉으로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 태백시 · 삼척시와 접경하고, 동쪽은 태백산(太白山: 1,567m)의 여맥으로 경상북도 영양군 · 울진군, 남쪽과 서쪽은 경상북도 안동시 · 영주시와 접한다. 도처에 해발고도가 높은 산악이 중첩하고 구릉의 기복이 심하여 평지가 적고, 황지에서 매토천이 발원하여 낙동강의 원연을 이룬다.
산맥을 자세히 살펴보면, 태백산을 중심으로 발달한 태백산맥과 소백산맥(小白山脈)의 영향을 받아 북부에는 태백산을 비롯해 연화봉(蓮花峰: 1,053m) · 구룡산(九龍山: 1,346m) · 삼동산(三洞山: 1,178m) · 선달산(先達山: 1,236m) · 면산(綿山: 1,245m) · 옥석산(玉石山: 1,242m) 등 1,000m가 넘는 산들이 경계를 이룬다. 동부에는 배바위산[968m] · 오미산(梧味山: 1,071m) · 비룡산(飛龍山: 1,129m) · 죽미산(竹美山: 907m) · 장군봉(將軍峰: 1,136.5m) 등이 솟아 있다.
서부에는 봉황산(鳳凰山: 819m) · 응방산(鷹坊山: 587m) · 대마산(大馬山: 375m) 등이, 남부에는 만리산(萬里山: 792m) · 문명산(文明山: 894m) · 청량산(淸凉山: 870m) · 산성산(山城山: 845m) · 미림산(美林山: 686m) 등이 에워싸고 있다. 이 밖에 각화산(覺華山: 1,177m) · 왕두산(王頭山: 1,044m) · 문수산(文殊山: 1,206m) · 화장산(華獐山: 859m) · 월암산(月岩山: 608m) 등 곳곳에 높은 산들이 우뚝 솟아 있고, 그 사이에 군소 산봉우리들이 첩첩으로 이어져 경상북도 내에서는 가장 높은 산악지대를 이룬다.
태백산은 해발 1,567m의 준산영봉(峻山靈峰)으로 이 산을 원봉으로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이 전개되며, 또한 산맥을 분수령으로 낙동강이 발원해 군을 남서류하면서 지류인 석포리천 · 광비천 · 재산천 등을 합치고, 내성천이 군의 서부를 남서류하면서 유역에 약간의 평야를 형성하고 있다.
기후는 내륙 산악지대여서 대륙성기후를 보이는데, 연교차가 큰 편이며 동위도의 다른 지역에 비해 기온이 낮다. 1991~2020년 평년값에 따르면 연평균기온은 10℃, 1월 평균기온은 -4℃, 8월 평균기온은 22.9℃이고 연강수량은 1,175.6㎜이다.
봉화군 지역은 삼한시대 진한(辰韓)의 12국 중 하나인 기저국(己柢國)에 속하였을 것으로 비정된다. 삼국시대에는 지금의 봉성면 일대가 고구려의 내기군 고사마현(古斯馬縣)에 속하였을 것으로 비정된다. 이후 신라 5대 왕인 파사왕(婆娑王: 재위 80~112) 시기 신라의 영토가 되었으며, 757년(경덕왕 16) 지방제도 개편 때 내령군(奈靈郡)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 옥마현(玉馬縣)으로 개칭되었다. 즉 선곡현(善谷縣)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과 함께 내령군의 영현(領縣)이 되어 삭주(朔州) 지금의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에 소속되었다.
고려 전기 현종(顯宗: 9921031) 시기의 지방제도 개편 과정에서 내성현은 봉화현(奉化縣)으로 개칭되었다. 1018년(현종 9) 안동부의 속현이 되었다. 고려 후기까지 계속 안동부의 속현으로 있다가 1390년(공양왕 2)에 감무(監務)가 설치되어 비로소 중앙의 직접적인 지배를 받게 되었는데, 별호(別號)는 봉성(鳳城)이었다. 이때 안동부에 소속되어 있던 물야(勿也)[지금의 물야면] · 매토(買吐) 두 부곡(部曲)을 관할 영역으로 편입하였다. 고려 후기에는 이곳을 본관으로 하는 금의(琴儀: 11531230) 및 정도전(鄭道傳: 1342~1398)과 관련되어 주목받기도 하였다.
조선 전기인 1413년(태종 13)의 지방제도 개편 때 현감이 임명되었고, 1457년(세조 3) 순흥도호부(順興都護府)가 역향(逆鄕)으로 지목되어 폐지되자 문수산 동쪽 지역을 할양받아 현세(縣勢)가 확대되었다. 당시 이곳의 토지는 척박했고 풍속은 절검(節儉)하며 양잠에 힘썼다고 한다. 한편, 고려 후기 이래 이곳을 본관으로 하는 금씨(琴氏) · 정씨(鄭氏)가 중앙정계에서 큰 활약을 하면서 많은 인재가 배출되었고, 조선 중기부터는 안동 지역의 사족(士族)이 이곳으로 이동해 왔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유곡(酉谷)으로 이주해 온 권벌(權橃: 1478~1548)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서울을 거쳐 강원으로 진격했던 왜군이 경상도로 남하해 오자 유종개(柳宗介: 1558~1592)와 윤흠신(尹欽信: ?1592) · 윤흠도(尹欽道: 15671592) 형제를 중심으로 한 의병 수백 명이 현의 동쪽 소천(小川) 지역에서 적을 방어하다 열세에 몰려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임진왜란 이후 실록을 보관하는 사고(史庫)를 정비하였는데, 1606년(선조 39) 이곳 태백산에도 사고와 주1, 실록각(實錄閣)이 남화사지(覽華寺址) 부근에 설치되었다.
1895년(고종 32)에 봉화현을 봉화군(奉化郡)으로 개칭하였다. 1907년(융희 1)에 군청사를 봉성면에서 춘양면으로 옮겼다가 1914년 다시 봉화읍 내성리로 옮기고, 15개 면을 9개 면으로 통합하였다.
1956년 내성면이 봉화면으로 개칭되었다. 1962년 11월 춘양면 덕구리와 천평리가 강원도 영월군에 편입되었으며, 1963년 3월 소천면에 석포출장소가 설치되어 소천면 석포리 · 대현리 · 승부리를 관할하였다. 1973년 상운면 두월리 · 내림리가 경상북도 영주군 이산면에, 법전면 소로리가 춘양면에 편입되는 등 관할구역의 조정이 있었다. 1979년 5월 1일 봉화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83년 명호면 신라리가 상운면에 편입되었으며, 소천면 석포리 · 대현리 · 승부리 및 경상북도 울진군 서면의 전곡리 일부를 통합하고 석포면을 설치하였다. 1991년 1월 1일 봉성면의 원둔리가 봉양리로 개칭되었다. 1994년 7월에는 춘양면 우구치1리 · 우구치2리를 우구치리로, 소천면 고선1리 · 고선2리를 고선2리로, 고선3리를 고선1리로, 명호면 북곡1리 · 북곡2리를 북곡리로 통합하였다.
2000년 1월에는 석포면 대현1리 · 대현2리를 대현1리로, 대현3리를 대현2리로, 재산면 현동2리 · 현동4리를 현동2리로, 남면1리 · 남편2리를 남면리로, 갈산1리 · 갈산2리를 갈산1리로, 갈산3리 · 갈산4리를 갈산2리로, 상리1리 · 상리2리를 상리리로, 상운면 문촌1리 · 문촌2리를 문촌리로, 신라1리 · 신라2리를 신라리로 통합하였다. 2002년 11월에는 봉화읍 포저리를 내성리로 개칭하였다. 2015년 6월 봉화읍 내성3리 구역 중 일부를 내성5리로 분동하고, 소천면 분천리 ‘도호’ 지역을 현동3리에 이관하였다.
선사시대의 유적 가운데 고인돌이 봉화읍 도촌리, 물야면 개단리, 춘양면 의양리 · 소로리, 재산면 동면리 · 갈산리, 상운면 구천리 등지에 산재해 있다. 상운면 신라리, 봉성면 봉성리, 재산면 동면리 · 현동리 등지에서는 간석기와 민무늬토기가 출토되었다.
삼국시대의 고분군이 물야면 북지리, 봉화읍 삼계리 · 석평리, 춘양면 소로리와 그 밖의 여러 곳에서 발견되었다. 산성으로는 내성산성 · 개단토성 · 소천석성 · 낙산성 · 청량산성 등이 있으며, 용산 · 당북산 · 호애산 · 태백산 등지에는 봉수대가 있다.
불교 유산으로는 신라 때인 666년(문무왕 6) 원효(元曉: 617686)가 명호면 북곡리에 창건한 청량사(淸凉寺)의 청량사 유리보전(淸凉寺 琉璃寶殿)[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 1974년 지정] 등과, 673년(문무왕 13) 의상(義湘: 625702)이 물야면 개단리에 창건한 축서사(鷲棲寺)의 봉화 축서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및 목조광배(奉化 鷲棲寺 石造毘盧遮那佛坐像 및 木造光背)[보물, 1989년 지정], 봉화 축서사 괘불탱(鷲棲寺 掛佛幀)[보물, 2003년 지정] 등이 있다.
또 676년(문무왕 16) 원효가 춘양면 석현리에 창건한 각화사(覺華寺)의 각화사귀부(覺華寺龜趺)[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 1984년 지정]와 삼층석탑 · 석구 등도 있고, 그 밖에 구가암(九佳庵)[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 1993년 지정] · 홍제사(弘濟寺) · 중대사(中臺寺)와 대당사지 · 소천사지 · 남화사지 · 지림사지 등이 있다.
불상으로는 신라 통일 직후의 작품인 봉화 북지리 마애여래좌상(奉化 北枝里 磨崖如來坐像)[국보, 1980년 지정] · 봉화오전리석조아미타여래좌상(奉化梧田里石造阿彌陀如來坐像)[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 1982년 지정]이 물야면에, 봉화의양리석조여래입상(奉化宜陽里石造如來立像)[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 1979년 지정] · 소로리 석불 입상 · 서동리 석조여래좌상이 춘양면에 있다.
또 봉성면에 봉화봉성리석조여래입상(奉化鳳城里石造如來立像)[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 1979년 지정] · 천성사석조여래입상(千聖寺石造如來立像)[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 1979년 지정], 법전면에 소천리 석조여래좌상, 재산면에 봉화동면리마애비로자나불입상(奉化東面里磨崖毘盧遮那佛立像)[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 1992년 지정] 등의 불상이 다수 남아 있다.
이 밖에 천성사삼층석탑(千聖寺三層石塔)[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 1979년 지정]과 축서사삼층석탑(鷲棲寺三層石塔)[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 1985년 지정] · 축서사석등(鷲棲寺石燈)[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 1985년 지정]이 있고, 특히 춘양면의 봉화 서동리 동 · 서 삼층석탑(奉化 西洞里 東 · 西 三層石塔)[보물, 1963년 지정] 내부에서는 탑과 같은 모양의 토탑(土塔) 99개가 출토되기도 하였다.
춘양면 석현리에는 봉화 태백산사고지(奉化 太白山史庫址)[사적, 1991년 지정], 봉화읍 유곡리에는 조선 중종(中宗: 14881544) 때 예조참판을 지낸 권벌의 권벌 충재일기(權橃 沖齋日記)[보물, 1963년 지정]와 권벌 종가 전적(權橃 宗家 典籍)[보물, 1986년 지정] · 권벌 종가 고문서(權橃 宗家 古文書)[보물, 1986년 지정] · 권벌 종가 유묵(權橃 宗家 遺墨)[보물, 1986년 지정], 그리고 영조(英祖: 16941776)가 권벌의 후손에게 하사한 근사록(1963)(近思錄(1963))[보물, 1963년 지정]이 전한다.
유교 유산 및 정자로는 봉화읍의 봉화 쌍벽당 종택(奉化 雙碧堂 宗宅)[국가민속문화유산, 1984년 지정], 화천리의 구만서원(龜彎書院)[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 1985년 지정]과 몽화각(夢花閣)[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 1985년 지정], 유곡리의 봉화 서설당 고택(奉化 瑞雪堂 古宅)[국가민속문화유산, 2017년 지정], 물야면의 봉화 계서당 종택(奉化 溪西堂 宗宅)[국가민속문화유산, 1984년 지정], 봉성면 봉성리의 봉화향교(奉化鄕校)[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 1990년 지정] 등이 있다.
또한 물야면 오록리의 장암정(藏庵亭)[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 1985년 지정] · 청간당(淸澗堂)[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 1985년 지정], 상운면 문촌리의 무진장재(無盡藏齋)[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 1985년 지정], 법천리의 이오당(二吾堂)[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 1985년 지정], 구천리의 봉화 야옹정(奉化 野翁亭)[경상북도 민속문화유산] 등이 있다. 이 중 봉화 야옹정은 1985년 ‘야옹정’이란 명칭으로 경상북도 문화재자료[지금의 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가 2013년 해제되고, ‘봉화 야옹정’이란 이름으로 경상북도 민속문화재[지금의 경상북도 민속문화유산]로 승격되었다.
그 밖에 춘양면 의양리의 봉화 한수정(奉化 寒水亭)[보물], 봉화읍 거촌리의 도암정(陶巖亭)[경상북도 민속문화유산, 1984년 지정], 상운면 문촌리의 종선정(種善亭)[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 1991년 지정], 명호면 북곡리의 봉화 청량정사[경상북도 기념물], 봉화읍 적덕리의 두릉서당(杜稜書堂)[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 1991년 지정] 등의 문화유산이 있다. 이 가운데 봉화 한수정은 1982년 ‘봉화한수정’이란 명칭으로 경상북도 유형문화재[지금의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가 2019년 ‘봉화 한수정’으로 보물로 승격되었다. 또 봉화 청량정사도 ‘청량정사’라는 명칭으로 1991년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가 2017년 ‘봉화 청량정사’로 경상북도 기념물로 승격되었다.
이 외에 종교 건물로 법전면 척곡리에 봉화 척곡교회(奉化 尺谷敎會)[국가등록문화유산, 2006년 지정]가 있다. 척곡교회는 1910년대에 선교사나 단체가 아닌 교인의 선구적 의지로 설립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한편, 고가옥으로는 법전면 척곡리에 봉화법전강씨종택(奉化法田姜氏宗宅)[경상북도 민속문화유산, 1982년 지정], 봉성면 원둔리의 봉화 오고당 고택(奉化 五高堂 古宅)[국가민속문화유산], 봉화읍 거촌리의 경암헌고택(경菴軒故宅)[경상북도 민속문화유산, 1984년 지정], 해저리의 봉화 만회고택(奉化 晩悔古宅)[국가민속문화유산, 1984년 지정] 등이 있다. 이 중 봉화 오고당 고택은 1984년 ‘ 오고당구택’이란 명칭으로 경상북도 민속문화재로 지정되었다가 2020년 해제되고 ‘봉화 오고당 고택’이란 이름으로 국가민속문화재[지금의 국가민속문화유산]로 승격되었다.
또 봉화읍에는 석평리의 봉화 송석헌 고택(奉化 松石軒 古宅)[국가민속문화유산, 2007년 지정], 문단리의 봉화 선성김씨 빈동재사(奉化 宣城金氏 賓洞齋舍)[국가민속문화유산, 2017년 지정], 의양리의 봉화 의양리 권진사댁(奉花 宜陽里 權進士宅)[경상북도 민속문화유산, 2013년 지정] 등이 있다.
소천면에는 분천리도토마리집(汾川里도토마리집)[경상북도 민속문화유산, 1994년 지정] · 분천리까치구멍집(汾川里까치구멍집)[경상북도 민속문화유산, 1994년 지정], 상운면에는 설매리겹집(雪梅里겹집)[경상북도 민속문화유산, 1994년 지정] · 봉화 설매리 3겹 까치구멍집(奉化 雪梅里 3겹 까치구멍집)[국가민속문화유산] 등이 잘 보존되어 있다. 이 중 봉화 설매리 3겹 까치구멍집은 1994년 ‘설매리3겹까치구멍집’이란 명칭으로 경상북도 민속문화재로 지정되었다가 2007년 해제되고 ‘봉화 설매리 3겹 까치구멍집’이란 이름으로 국가민속문화재[지금의 국가민속문화유산]로 승격되었다.
이 밖에 명호면 풍호리의 감고당문적(感顧堂文籍)[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 1984년 지정], 봉화읍 삼계리의 봉화유기장(奉化鍮器匠)[경상북도 무형유산, 1994년 지정]이 있다. 또한 봉화읍 유곡리의 봉화 청암정과 석천계곡(奉化 靑巖亭과 石泉溪谷)[명승, 2009년 지정]을 비롯해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봉화 청량산(奉化 淸凉山)[명승, 2007년 지정] 등 많은 명승지가 있으며, 196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봉화 대현리 열목어 서식지(奉化 大峴里 熱目魚 棲息地)도 유명하다.
조선시대 교육기관으로는 향교와 서원이 대표적이다. 이 중 봉성면 봉성리에 있는 봉화향교는 세종(世宗: 13971450) 때 창건되었고, 1579년(선조 12) 현감 조목(趙穆: 15241606)이 중건하였다. 1588년(선조 21)에는 봉화읍 삼계리에 삼계서원(三溪書院)이 설립되어 권벌의 위패를 봉안했고, 1660년(현종 1)에 사액서원이 되었다. 이 서원은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1820~1898)의 서원 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다가 1960년에 복원되었다.
1596년(선조 29)에는 봉화읍 화천리에 구만서원이 설립되었으나 1868년에 철폐되었다가 1967년에 복건되었다. 1804년(순조 4) 물야면 수식리에 건립된 행계서원(杏溪書院) 역시 1868년에 철폐되었다가 1931년에 복건되었다. 이 밖에 도계서원(道溪書院) · 단계서원(丹溪書院) · 문산서원(文山書院) · 오천서원(梧川書院) · 동명서원(東溟書院) · 문암서원(文巖書院) · 인계서원(仁溪書院) · 도연서원(道淵書院) · 문계서원(文溪書院) 등 많은 서원이 설립되었으나 모두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근대 교육기관으로는 1910년(융희 4) 춘양면 의양리에 설립된 사립 광성학교(廣成學校)가 최초이다. 광성학교는 1912년에 봉화공립보통학교로 개칭되었다가 이후 춘양공립보통학교로 이름이 바뀌었다. 또 1910년 봉화읍에 설립된 사립 조양학교(朝陽學校)는 1913년 내성공립보통학교(乃城公立普通學校)로 전환되었다가 다시 봉화공립보통학교로 개칭되었다. 이 밖에 사립 대성학원(大成學院) 등이 설립되어 신지식과 신문명의 수용에 힘을 기울였다.
2025년 3월 1일 기준 봉화군의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4개, 중학교 7개, 고등학교 3개가 있다. 특히 고등학교는 봉화고등학교, 한국펫고등학교, 한국산림과학고등학교 등 3개가 있는데, 봉화고등학교는 공립으로 자율형 고등학교이며, 한국펫고등학교는 사립으로 특성화고등학교, 한국산림과학고등학교는 공립으로 특성화고등학교이다. 이들 고등학교는 모두 기숙사를 운영하고 있다.
사회 · 문화 시설로 경상북도교육청 봉화도서관은 지역의 유일한 공공도서관으로 1976년 9월에 개관하였다. 청량산박물관은 청량산을 배경으로 한 문화유산, 자연환경, 지역 홍보자료를 전시하여 봉화시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봉화농경문화전시관은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농경의 역사와 계절별 농경 유물을 전시하며 봉화군 지역의 농경 문화 특징과 현황을 알려 주고 있다. 봉화 인물역사관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던 봉화인들의 활약상을 전시하고 있다.
1965년에 개관한 봉화문화원은 향토사연구소와 문화학교를 운영하며 지역 주민의 문화 함양에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밖에도 봉화정자문화생활관 등이 지역 문화활동의 거점으로 활용되고 있다.
봉화군의 축제에는 봉화은어축제, 봉화송이축제 등이 있으며, 청량문화제도 개최된다. 이 가운데 봉화은어축제는 매년 여름 내성천 일원에서 열리는데, 낙동강과 한강 수계의 최상류에 위치한 지역적 특성을 살려 청정 1급수에서 서식하는 은어의 이미지를 테마로 한 여름 대표 문화 축제로 자리 잡았다.
봉화송이축제는 지역 특산물인 봉화송이를 주제로 1997년부터 매년 가을에 열리고 있다. 봉화군은 전국 송이 생산량의 약 15%를 차지하는 국내 최대 송이 주산지로, 태백산 자락의 마사토 토양에서 자란 송이는 수분 함량이 적고 향이 뛰어나며 저장성이 우수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춘양목(春陽木) 산지로도 널리 알려진 봉화 지역은 송이의 맛과 향에서도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으며, 축제는 맑고 깨끗한 춘양목 숲에서 산림욕을 즐길 수 있는 체험형 관광 축제로 운영된다.
봉화송이축제와 함께 개최되는 청량문화제는 향토 고유의 전통 민속놀이를 재현하며 주민 화합의 장을 마련하는 대표 문화행사로 1980년부터 매년 열린다.
봉화군의 대표적인 민속놀이로는 삼계줄다리기, 사시랭이놀이가 꼽힌다. 삼계줄다리기는 봉화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전통 민속놀이인데, 조선 후기 철종(哲宗: 1831~1863) 대부터 봉화읍 삼계마을에서 전해 내려오는 전통문화이다. 정월 대보름에 행해졌으며 풍년을 기원하고 마을의 화합과 안녕을 기원하는 대동놀이이다. 남자와 여자가 편을 가르고, 혼례를 올리지 않은 남자는 여자 복장으로 여군에 편성되어 줄다리기 경연을 펼친다. 여군이 이겨야 풍년이 든다는 유래가 전해 내려오며, 전승 · 보존을 위해 해마다 청량문화제에서 이 행사를 재현하고 있다.
사시랭이놀이는 1940년대 전후로 석포면 석포마을 일대에서 전승되어 온 전통 놀이로, 주로 성인 남성들에 의해 계승되었다. 석포마을 사람들은 벌목을 생업으로 삼았는데, 벌목은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작업이기에 여러 사람이 팀을 이루어 협력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노동의 고단함을 덜고 일의 능률을 높이기 위해 사시랭이놀이가 자연스럽게 행해졌다고 전한다.
봉화군 지역에서는 자연물과 역사적 인물에 관한 설화, 지명유래담, 시정잡배나 효자에 얽힌 설화 등이 많이 전한다. 석포면 대현리에서는 태백산신이 된 단종(端宗: 1441~1457) 이야기가 전한다. 또 소천면 서천리 갯마을에는 사망바위에 얽힌 전설이 전하며, 법전면 풍정리 노림마을에서는 북쪽 산마루에 이여송(李如松: ?~1598)이 깨뜨렸다는 큰 바위에 관한 설화, 물야면에는 신의(信義) 있는 진사와 백정의 설화가 전해 온다. 이 밖에도 정만서 · 방학중 등의 시정잡배 민담, 호랑이가 장가보낸 효자의 설화, 주위 사람을 골탕 먹이는 시정잡배들과는 반대로 누구에게나 당하기만 하는 선비 정역간의 설화 등이 전한다.
그 가운데 태백산신이 된 단종의 전설은 다음과 같다. 수양대군(首陽大君: 1417~1468)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영월로 유배된 단종을 안타깝게 여기던 주민 몇 명이 저녁 무렵 영월 관아에 볼일을 보러 가던 중, 마을 근처 누각 앞에서 흰 말을 타고 오는 단종과 마주쳤다. 주민들이 길가에 엎드려 인사를 드리고 어디로 가시느냐고 묻자, 단종은 말에 탄 채 “ 태백산에 놀러 간다”고 답했다. 그러나 영월에 도착한 그들은 이미 그날 낮에 단종이 시해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자신들이 본 인물이 단종의 혼령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 일 이후 사람들은 단종의 영혼이 태백산에 입산했다고 믿게 되었고, 그렇게 하여 단종이 태백산신이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게 되었다.
봉화군 지역에서는 예로부터 다양한 민요가 전승되어 왔으나 생활양식의 변화와 농경 방법의 개선 등으로 많이 쇠퇴하였다. 대표적인 민요로 「모내기소리」가 있고, 산악이 많은 지역이라 「밭갈이소리」와 춘양면 서벽리 큰마에 여성이 부르던 「밭매기소리」도 많이 불렸다. 석포면 석포리에서 전승되는 「베틀노래」와 「물레노래」 · 「삼삼기노래」, 땅 다질 때 부르는 「지짐소리」 · 「망께소리」 등이 전하고, 의식요인 「상두소리」, 무덤 다지는 「달구소리」 등이 전승되고 있다.
특히 「정선아리랑」을 비롯해 「금자동아 옥자동아」 등 자장가류도 전해 온다. 명호면 북곡리에 전승되는 유흥요인 「머루야 다래야」, 「시집살이노래」나 「첩의 노래」 등도 자주 불렸다고 한다.
2022년 기준 봉화군의 임야 면적은 989.93㎢로 총면적의 82.3%에 달하며, 경지면적은 105.05㎢로 약 8.74%에 불과하다. 경지면적 중 논이 23.56㎢로 22.4%, 밭이 81.50㎢로 77.5%를 차지하여 밭농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주요 저수지인 봉성면의 창평저수지(昌坪貯水池)와 재산면의 동면저수지(東面貯水池)에서 이 지역의 농경지에 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쌀 생산은 적은 편이고, 주요 농작물은 고구마 · 감자 · 조 · 옥수수 · 콩 등의 잡곡이다. 그 밖에 고랭지채소를 비롯해 인삼 · 산수유 · 당귀 등의 약용작물이 많이 생산된다. 특산물로는 송이버섯 · 사과 · 딸기 · 수박 · 대추 · 고추 등이 있으며, 1996년 고랭지에 시설 화훼 농업을 개척해 백합 · 국화 · 안개꽃 등을 생산하고 있다.
봉화 지역은 낮과 밤의 기온차가 커서 사과 재배에 적합한 기후 조건을 갖추고 있으며, 이로 인해 봉화사과는 육질이 단단하고 당도가 뛰어나다. 봉화토종약대추는 높은 품질에 비해 생산량이 많지 않아 가격이 다소 비싸지만, 살이 두텁고 당도가 높으며 보혈 강장에 좋다. 봉화고랭지딸기는 당도가 높고 신선하며 빛깔이 곱고 알이 굵은 것이 특징이다. 봉화고추는 맑고 깨끗한 환경에서 재배되기 때문에 빛깔이 곱고 매운맛과 감미가 뛰어나다.
임야가 많은 지역 특성상 산림자원이 풍부한데, 입목뿐 아니라 무성한 임야 내에서 밤 · 호두 · 잣 · 대추 · 도토리 등과 섬유 연료, 유지 원료. 버섯. 산채 등의 임산물도 생산한다. 2022년 기준 임산물 생산량은 버섯 74만 458㎏[그중 송이버섯은 2,904㎏], 산나물 10만 2254㎏이며, 춘양목을 활용한 관광자원도 개발하고 있다.
봉화군의 대표적인 전통 산업으로는 한과 · 전통주 등 전통 식품 제조와 봉화유기와 같은 금속 공예품 제작이 있다.
산업단지로는 봉화읍에 위치한 봉화농공단지, 봉화제2농공단지, 유곡농공단지가 있다. 특히 유곡농공단지는 2014년에 준공하였으며, 유치 업종에는 음식료품 제조업, 비금속 광물 제품 제조업, 전자부품, 컴퓨터, 영상, 음향 및 통신 장비 제조업, 정기 장비 제조업, 목재 및 나무 제품 제조업, 펄프, 종이 및 종이 제품 제조업, 기타 기계 및 장비 제조업 등이 있다.
2024년 기준 봉화군에는 2개의 전통시장이 있는데, 봉화장과 춘양장이 있다. 먼저, 봉화장은 봉화읍 내성리에 위치하며, 끝자리가 2·7일장이다. 예전에는 영월, 삼척, 울진, 안동, 예천 등지에서 장을 보러 올 정도로 큰 장이 형성되었으며, “들락날락 봉화[내성]장”이라는 유행어도 돌았다.
춘양장은 춘양면 의양리에 자리하며, 끝자리가 4·9일장이다. 19601970년대 성황을 이루었으며 쌀을 매매하는 미시장과 함께 우시장에서는 하루에 소가 200300마리까지 거래되었다. ‘억지 춘양’ 유래로도 유명하며, 낙동강 최상류인 운곡천(雲谷川)과 그 주변 산림이 춘양목으로 청정 자연을 보전하고 있다. 장날 산채와 각종 임산물을 판매하고 있으며, 특히 춘양목 아래에서 자생한 송이는 품질이 우수하다.
도로는 국도 31호선, 국도 35호선, 국도 36호선이 동서남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철도 영동선이 군의 중앙을 지나 영동지방과 영남지방을 잇는다.
지역의 대부분을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이 차지하고 있어 경관이 수려한 명승지가 많으며, 역사적 유물도 상당수 있어 관광자원이 풍부한 곳이다.
청량산은 태백산의 지맥인 일월산(日月山: 1,219m)에서 서남쪽 24㎞ 지점에 용출한 영산(靈山)으로, 주봉인 의상봉(義湘峯) 정상에는 200㎡나 되는 넓은 면적에 만병초(萬病草) 등 각종 고산식물들이 자생하고 있다. 대부분이 편마암 절벽으로 이루어져 산수가 아름답다.
특히 신라시대에 원효가 창건한 청량사와 김생(金生: 711~?)이 글씨를 공부하던 김생굴(金生窟),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이 수도하며 성리학을 집대성한 오산당(吾山堂), 최치원(崔致遠: 856?)의 유적지인 고운대(孤雲臺)와 독서당(讀書堂), 공민왕(恭愍王: 1330~1374)이 은신한 공민왕당(恭愍王堂)과 청량산성, 총명수 · 감로수 등의 약수, 신라시대의 사찰인 각화사 · 축서사 · 홍제사 등 이름난 곳이 많이 남아 있다.
선달산과 옥석산, 박달령(朴達嶺: 967m)과 주실령(朱實嶺: 1,070m)에 둘러싸인 오전약수는 탄산 성분이 많아 톡 쏘는 맛이 나며, 철 · 염소 · 칼슘 등이 함유되어 몸에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수산에 있는 축서사는 한국전쟁 때 건물 대부분이 불타고 지금은 대웅전과 요사채만 남아 있다.
석천계곡은 태백산지에서 발원한 물이 응방산과 옥적봉[277.5m]을 지나 봉화산골에서 흘러온 옥수와 합쳐지면서 봉화읍 유곡리에 펼쳐 놓은 계곡으로서 가족 피서지로 적당하다. 이 계곡에는 권벌의 큰아들인 청암(靑巖) 권동보(權東輔: 1518~1592)가 지은 석천정사(石泉精舍)가 있다. 그 아래 닭실마을은 권벌이 은거했던 곳으로, ‘충재 권벌 종가’에는 『충재일기』 와 『근사록』, 전적, 고문서, 유묵 등이 보존되어 있다.
국립청옥산자연휴양림은 태백산 남쪽에 있는 청옥산(靑玉山: 1,277m)의 해발 896m에 위치해 있다. 대관령보다 4m 높은 곳이어서 아무리 더워도 파리와 모기가 없다. 전체 규모는 10㎢로 좀 작은 편이지만 시설이나 숲의 밀도, 관리 실태 등에서 손색이 없다. 계곡이 조금 작은 것이 흠이지만 숲이 짙어서 가뭄에도 물이 말라붙지 않는다.
벽천계곡은 태백산에서 발원한 옥계수가 해발 650m 이상의 고원을 16㎞에 걸쳐 흐르면서 만들어 낸 계곡으로, 태백산을 비롯해 연화봉 · 청옥산 · 조록바위봉[1,088.3m] 등의 높은 산에 둘러싸여 있어 계곡물이 맑고 수온이 낮다. 천연기념물인 봉화 대현리 열목어 서식지(奉化 大峴里 熱目魚 棲息地)와 일제의 강제징용으로 희생된 원혼들을 봉안한 현불사(現佛寺)가 있다. 이 밖에 석회동굴인 소천면의 평천동굴(坪川洞窟)과 재산면의 회곡동굴(回谷洞窟) 등이 있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은 춘양면 서벽리에 있으며, 전체 규모는 약 51.79㎢[1,500만 평]로 아시아에서 최대, 전 세계에서도 남아공 국립한탐식물원[62.29㎢] 다음으로 큰 규모이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은 백두대간과 고산 지역 산림 생물자원을 수집 · 보전 · 전시 · 활용하여 생물다양성을 증진하고, 다양한 관람 및 교육 · 체험 서비스 제공을 목적으로 2017년 5월 17일 자로 출범한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 소속기관이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은 시드볼트와 시드뱅크를 모두 보유한 세계 유일의 기관으로, 산림 생물종 다양성 보전 및 증진을 위하여 설립된 국립수목원이다. 또 시드볼트는 세계에서 ‘스발바르 글로벌 시드볼트’와 ‘백두대간 글로벌 시드볼트’ 두 곳밖에 없으며, 특히 백두대간 글로벌 시드볼트는 국내외 야생식물 종자를 보관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봉화목재문화체험장은 봉성면에 위치하며, 춘양목의 우수성을 알아볼 수 있는 홍보영상실과 목재도서관이 있고, 야외에는 산림욕장과 자생식물단지, 목재놀이시설, 잔디광장 등이 있다.
2005년에 개봉한 다큐멘터리 「워낭소리」를 촬영한 곳이 상운면이다. 주인공 최원균 할아버지와 소를 3년여에 걸쳐 촬영하여 완성하였으며, 최원균 할아버지가 사망한 후 봉화군에서 할아버지 집 앞에 워낭소리공원을 조성하였다.
한편, 분천 산타마을은 백두대간협곡열차[V-train]의 시발점인 분천역에 백두대간이라는 자연 자원과 낙동강의 비경, 동심을 자극하는 산타클로스 이미지를 접목한 장소로, 한여름과 한겨울 등 연 2회 산타마을을 운영하고 있다. 분천역, 소망우체통, 농 · 특산물 판매 부스, 대형 크리스마스트리 등을 통해 성탄절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낙동강세평하늘길 트레킹 길은 분천 산타마을에서 대한민국 최초의 민자 역사인 양원역을 거처 석포면 승부역에 이르는 총길이 12.1㎞의 힐링 트레킹 로드이다.
낙동정맥트레일은 총 3구간으로 나뉜다. 1구간은 석개재에서 승부역까지, 2구간은 승부역에서 분천역 또는 승부역에서 전곡리[울진], 3구간은 분천역에서 남회룡분기점에서 우련전, 영양군으로 가거나 분천역에서 남회룡분기점에서 광회리[울진]으로 가는 루트가 있다.
백두대간협곡열차는 백두대간 협곡의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수 있도록 운행하는 관광 열차로, [영주역-봉화역-춘양역]-분천역-양원역-승부역-철암역을 왕복 운행한다.
봉화군의 남서부에 있는 읍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74.50㎢로 봉화군 전체 면적의 6.2%를 차지한다. 인구는 9,083명으로 군 전체 인구의 약 31.5%를 차지한다. 봉화읍 사무소가 내성리에 있다.
봉화군의 행정, 문화, 경제활동 중심으로 군 단위 기관 · 단체가 모여 있어 지역의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읍의 동서로 국도 36호선이 지나가고 읍의 시가지 중앙을 내성천이 흐른다. 이 주변 지역이 봉화은어축제와 봉화송이축제의 중심 무대이다.
봉화군의 남부 중앙에 있는 면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114.57㎢이고, 인구는 2,095명이다. 명호면 행정복지센터가 도천리에 있다. 경상북도 안동시에서 강원특별자치도 태백시 방향으로 국도 35호선, 봉화에서 재산 방향의 지방도 918호선이 명호면 지역을 지나간다.
산간지대이나 경작지는 넓은 편이어서 쌀 · 보리 외에 고추가 주 소득원이며, 특산물로 봉화토종대추와 봉화선주, 봉화된장, 고랭지채소가 각광을 받고 있다. 한우 · 산양 · 닭 · 칠면조 등의 사육도 성하며, 낙동강에서는 8월 중순부터 9월 말까지 육봉은어가 잘 잡힌다.
봉화군의 북서부에 있는 면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109.37㎢이고, 인구는 2,808명이다. 물야면 사무소가 오록리에 있다.
지방도 915호선이 지나며, 내성천의 상류 지역으로 오전리에 중규모 저수지가 있는 등 수리 시설이 양호하다. 수원(水源)이 풍부하여 논농사가 잘되고 사과, 인삼을 재배한다. 주요 경제작물은 벼, 사과, 고추, 표고버섯, 화훼 등이며, 주로 답(畓) 위주의 영농을 하고 있다. 백두대간 등산로와 오전약수탕이 유명하다.
봉화군의 중앙에 있는 면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70.21㎢이고, 인구는 1,883명이다. 법전면 사무소가 법전리에 있다.
지형은 야산과 낮은 구릉지로 형성된 중산간지이며, 해발 350~400m 지역에 취락을 이루고, 토질은 주로 사질 양토로 형성되어 있다. 동부 지역에는 운곡천이 흘러 미작이 비교적 잘 된다. 그러나 전 지역이 고지대에 위치하여 물기가 없고 마른 편이다. 예로부터 집성촌을 많이 이루었던 곳으로 법전리에 진주 강씨(晉州 姜氏)의 동족 마을이 있다.
봉화군의 중서부에 있는 면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66.68㎢이고, 인구는 1,907명이다. 봉성면 사무소가 봉성리에 있다.
고구려 장수왕(長壽王: 394491)이 고사마현으로 칭했던 지역으로, 신라 경덕왕이 옥마현으로 개칭하였다. 고려 현종 때 봉성현으로 하였고, 공양왕(恭讓王: 3451394) 대에 봉화현으로 바뀌었다. 조선 전기 태종(太宗: 1367~1422)이 관제 개혁으로 이 고장에 현감을 두었다. 즉 본래 봉화현의 지역으로 현내면(縣內面)이라 하여 계양리(桂陽里) · 아동리(衙洞里) 등 4개 리를 관할하다가 1895년 군내면(郡內面)으로 개칭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군북면(郡北面)과 순흥군(順興郡) 와단면(臥丹面)의 일부, 서면(西面)을 병합하고 봉화군의 옛 이름을 따서 봉성면으로 하였다.
봉화군의 남서단에 있는 면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58.55㎢이고, 인구는 1,642명이다. 상운면 사무소가 가곡리에 있다.
고구려 때는 고사마현에 속했으며, 고려 때는 내성현 서면(西面)이었다. 조선시대에 임지도면 또는 임지면이라 하고 중토리(中土里) · 상토리(上土里) · 신촌리(新村里) 등 13개 리를 관할하게 하였다. 1906년(광무 10) 봉화군에 편입된 뒤 서면 · 임지면 · 상운면으로 나누어졌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상운면 · 서면 · 임지면의 일부를 병합해 상운면이 되었다.
봉화군의 북동단에 있는 면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150.20㎢이고, 인구는 1,768명이다. 석포면 사무소가 석포리에 있다. 아연 생산업체인 영풍 석포제련소가 있어 전체 가구의 절반 이상이 기업체에 속해 있는 전형적인 도농 복합시이다.
석포면은 군에서 가장 험한 산악지대로, 봉화군 최북단에 위치하여 북쪽과 동쪽은 강원특별자치도 태백시 · 삼척시와 접하며, 대부분 지역이 해발 600m 이상의 고지대에 위치하고 있다. 면의 대부분이 산지인 관계로 미곡 생산량은 군내 최하위이며, 메밀과 감자 · 배추 · 양배추 · 시금치 · 무 등 고랭지작물 재배가 성하다. 석포리의 샘터마을에는 재래종 벌이 많아 토종꿀이 많이 생산된다. 이 외에 약초, 사과 등이 재배된다.
봉화군의 북동부에 있는 면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265.08㎢이고, 인구는 2,076명이다. 소천면 사무소가 현동리에 있다.
북으로는 강원특별자치도 태백시와 접경하고, 동으로는 경상북도 울진군과 접경한다. 면내에 백연봉[830m] · 배바위산 · 횡악산[820m] · 죽미산 · 제비산[917m] 등의 고산들이 자리 잡고 있다. 험준한 산간 곡간에 취락이 형성되어 있어 임산자원이 풍부하다. 남회룡리의 남회마을은 고산지대의 특수한 기후로 인해 춘양목이 원시림을 이루며, 주민의 대부분이 약초 · 송이버섯 등을 수확해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있다.
봉화군의 남동부에 있는 면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126.05㎢이고, 인구는 1,404명이다. 재산면 사무소가 현동리에 있다.
미림산 · 덕산봉[690.3m] · 조산봉[854.7m] 등이 고산 지역을 형성하여 전면이 높은 산지를 이루고 있다. 산간 지역이지만 비교적 경지가 많고 비옥하며 재산천이 낙동강으로 북류하는 특이한 지역이다. 친환경농법으로 재배되는 재산수박이 특산물로 유명하다.
봉화군의 북부 중앙에 있는 면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167.56㎢이고, 인구는 4,170명이다. 춘양면 사무소가 의양리에 있다. 남북으로 형성된 긴 협곡의 지형적 특색으로 기온이 낮아 한국의 시베리아라고도 불리며, 봄이 짧다.
면의 대부분이 험준한 산지로, 북부는 소백산맥이 강원특별자치도와 도계를 이루고 구룡산 · 삼동산이 솟아 있으며, 이 밖에 옥석산 · 문수산 · 형제봉[834.8m] · 왕두산 · 각화산 등을 잇는 준령이 둘러싸고 있다. 그 사이에 삼동치(三洞峙) · 등어치(登於峙: 933.3m) · 박달령 · 주실령 · 예배령[919m] · 흙목이재 등의 고개가 있어 인접 지역과의 교통로로 이용되고 있다. 낙동강의 지류인 운곡천이 면의 중앙을 남동류하며 연안에 좁은 주2를 형성하고 있는데, 취락과 교통로가 이곳에 집중 분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