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봉화 계서당 종택(奉化 溪西堂 宗宅)은 조선 중기의 문신 성이성이 경상북도 봉화군 물야면에 경영하던 초당을 후손들이 중건한 종택이다. 1613년(광해군 5)에 성이성이 지은 방 1칸 규모의 계서초당(溪西草堂)을 후손들이 증축하여 기와집으로 바꾸었고, 이후 건물을 하나씩 지어 종택으로 사용하게 되면서 최종적으로 ㅁ자형의 주택이 되었다. 이로 인해, 안채와 사랑채 등 주요 건물들의 건립 연대가 다르고 증축 · 개축의 흔적이 있다. 경상북도 북부 지역에 위치한 ㅁ자형 뜰집의 유형을 확인할 수 있는 사례이다.
정의
조선 중기의 문신 성이성이 경상북도 봉화군 물야면에 경영하던 초당을 후손들이 중건한 종택.
건립 경위
변천
형태와 특징
봉화 계서당 종택의 전체적인 구성은 경상북도 지역의 보편적인 뜰집 구성과 유사하지만, 안채와 사랑채의 세부 구성에서는 조금 차이가 있다. 안채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5량가(五樑架)이다. 중앙의 3칸은 대청이며 좌우 2칸은 온돌방이 대칭으로 있다. 다른 사례들과 비교해 볼 때 비교적 방의 개수가 많은 편인데, 대청 서쪽 전면의 안방을 제외한 세 개의 방은 주로 부녀자들이 기거하는 규방(閨房)과 같은 의미의 ‘도장방’이라는 명칭으로 불린다. 이 주택에서 도장방이라 불리는 방은 총 4개인데, 나머지 하나는 중문간채의 가장 서쪽 편에 있다. 부엌은 안채 양쪽 온돌방 전면에 각각 1개씩, 총 2개가 있는데, 대청 동쪽 온돌방 아래에 위치한 부엌은 마당 쪽으로 길게 뻗어 중문간채와 만나며, 대청 서쪽 온돌방 앞의 부엌은 사랑채 부분과 1m 정도 틈을 두고 위치해 있다. 부엌의 상부에는 모두 다락을 두었다.
사랑채는 정면 3칸, 측면 2.5칸의 5량가 팔작지붕으로 후대에 증 · 개축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보통의 뜰집과는 다르게 보 방향으로 두 칸 반으로 구성한 겹집이고, 이로 인해 전면과 측면 일부가 ㅁ자형의 배치에서 외부 쪽으로 돌출되어 있다. 돌출된 면에는 ㄴ자형으로 툇마루를 두었는데, 툇기둥 바깥쪽으로 마루를 40㎝ 가량 더 내밀어 난간(欄干)을 둘렀다. 양쪽 측면은 널판으로 벽을 만들어 각 칸에 문을 달았고, 마루 뒤편으로는 사랑방 · 책방 · 사랑윗방으로 사용된 온돌방 4개를 두었다. 사랑채의 온돌방의 뒤쪽으로는 주인이 바깥에 나가지 않고 소변을 볼 수 있도록 판자로 3면을 막고 바닥을 뚫은 독특한 공간을 두었는데, 아래에 항아리를 놓아 간이 화장실로 썼다고 전한다.
정면 3칸, 측면 1칸 반의 3량 맞배지붕인 사당은 ㅁ자형의 몸채 동북쪽에 있다. 남쪽의 출입문을 제외한 삼 면에 흙을 돋워 얕은 높이의 둔덕을 두었다. 이러한 모습은 일반적인 조선시대의 사당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데, 묘소 조성 시 흙 둔덕을 이용해 활개를 두는 것과 유사하다.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단행본
- 『한국의 전통가옥 기록화 보고서』(문화재청, 2014)
인터넷 자료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https://www.heritage.go.kr/)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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