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국가민속문화재(현, 국가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이 집은 조선 말기의 문신 봉화현감 · 김해부사를 거쳐 내직인 승정원의 우부승지를 지낸 김건수(金建銖)가 살던 집이다.
그가 사랑채인 명월루(明月樓)를 지었는데, 1850년(철종 1)에 중수한 바 있다. 안채는 김건수의 6대조가 입향하면서 여기에 살던 여씨(余氏)에게서 매입하였다고 한다. 초창된 연대에 대하여는 가전(家傳)하는 바도 없다고 한다.
안채는 지금 평면이 ㄇ자형인 듯 보이나 원래는 앞쪽에 중문간채가 있어 튼□자형의 구성이었다. 이 중문간채는 1981년에 해체하여 볼 수 없게 되었다.
안채를 조사한 바로는 대략 17세기경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봉화 · 영양 · 영덕 · 안동지방에는 그러한 시기의 집들이 남아 있어 비교 고찰을 할 수 있다. 안채는 봉화일대에서 보편적으로 볼 수 있는 튼□자형으로 남향한 중앙에 3칸의 대청이 자리 잡았다.
대청 좌우에 동서의 날개가 달렸는데, 서쪽은 골방 · 마루방 · 상방과 부엌이 있고 동쪽날개에는 고방 · 안방 · 부엌과 헛간이 있다. 기둥과 부재를 다듬은 기법이 도끼벌에 가깝고 대청 뒷벽 바라지창은 두짝미닫이를 달았다. 보통의 여닫이와는 차이가 있다. 사랑채는 안채의 동편 날개 남쪽 끝에서 동쪽으로 치우친 위치에 있다.
원래는 안채 앞쪽의 중문간채에 사랑채가 연속되었던 것이나 중문간채가 없어진 지금으로 보아서는 외따로 떨어져 있는 듯이 보인다. 사랑채는 고설(高設)한 죽담 위에 올라앉았는데, 내루(內樓)로 구성된 부분만은 누하주(樓下柱)를 마당에 내려딛고 서 있다.
내루 뒤편으로 방 2칸이 있는데 그 중 1칸은 북쪽으로 돌출하여 사랑채의 평면형태는 T자형이다. 사랑채는 정면이 4칸이고, 측면은 앞뒤 합하여 칸반통[間半通]이다.
서쪽으로부터 방 2칸, 대청 1칸, 건넌방이 있는데, 이 방이 내루의 뒤편에 해당된다. 앞쪽의 평주(平柱)들은 둥근 기둥들이나, 나머지는 방주(方柱)이다. 홑처마이고 팔작기와지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