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광산김씨 재사 및 사당(光山金氏 齋舍 및 祠堂)은 조선 중기에 경상북도 안동시 오천면 외내마을에 지어졌다가 안동댐 건설로 인근의 와룡면 오천리로 옮겨진 광산김씨의 재사 및 사당이다. 이 사당은 입향조로 알려진 농수(聾叟) 김효로(金孝盧)의 위패를 봉안하기 위해 1536년(중종 31)에 지어진 이후 김효로의 증손자 근시재(近始齋) 김해(金垓)를 합향한 것이다. 재사는 2동의 ㅡ자형 건물과 1동의 고사(庫舍)로 구성된다. 이 건물들은 함께 옮겨진 후조당(後彫堂)의 부속 건물들로 알려져 있는데, 이건하기 전의 배치는 확인되지 않았다.
정의
조선 중기에, 경상북도 안동시 오천면 외내마을에 지어졌다가 안동댐 건설로 인근의 와룡면 오천리로 옮겨진 광산김씨의 재사 및 사당.
건립 경위
변천
형태와 특징
사당과 재사는 높낮이가 다른 대지에 분리되어 있는 현재의 모습 역시 이러한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정면 1칸, 측면 1.5칸의 사당은 후조당과 같은 높이에 있는 대지의 서쪽에 좌향을 달리해 있고, 협문(夾門)을 통해 출입한다. 전퇴(前退)를 개방한 부분에 세운 두 개의 팔각형 기둥이 특징적이다.
재사는 후조당과 사당이 위치한 곳보다 낮은 남쪽 대지에 떨어져 있다. 정면 4칸, 측면 1칸의 3량(三樑) 가구(架構)로 구성된 ㅡ자형의 주사(廚舍)가 가장 앞쪽에 있는데, 좌 · 우측 지붕의 형태가, 각각 우진각(隅進閣)과 맞배지붕으로 다르다. 그 뒤로 중앙에 마루 2칸, 양 쪽 끝에 온돌방 1칸씩을 둔 ㅡ자형 맞배지붕 건물이 나란히 있다. 두 건물 사이에 정면 3칸, 측면 2칸, 5량(五樑) 가구의 고사가 동편에 치우쳐 서향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전면 주사와의 사이에 안쪽 마당으로 출입할 수 있는 문을 두었다. 이 건물 세 동이 전체적으로 ㄷ자형으로 배치되어 있으나, 건립 당시의 모습이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단행본
- 문화재관리국, 『문화유적총람』(1977)
- 안동시, 『안동문화재대관』(2007)
논문
- 서치상, 「예안 군자리의 후조당 연구」(『건축역사연구』 11-4, 한국건축역사학회, 2002)
- 정정남, 「17세기 광산김씨 예안파의 종가 건축물 활용」(『한국건축역사학회 학술발표대회논문집』, 한국건축역사학회, 2017)
인터넷 자료
-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https://www.heritage.go.kr/)
- 디지털안동문화대전(http://andong.grandculture.net/)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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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대대로 살고 있는 고장.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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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화초 무늬를 새기는 일.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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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마을에 들어와 터를 잡은 선조.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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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예전에, 곳간으로 쓰려고 지은 집.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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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7
: 삼문(三門) 가운데 좌우에 달린 작은 문. 동협문, 서협문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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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8
: 집채의 앞쪽에 다른 기둥을 세워 만든 조그마한 칸살.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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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9
: 네 개의 추녀마루가 동마루에 몰려 붙은 지붕으로 지은 집.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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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0
: 물속에 잠김.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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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1
: 묏자리나 집터 따위를 등진 상태에서 정면으로 바라보이는 방향.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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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2
: 옛날 토목건축의 구조와 양식을 알 수 있는 실마리가 되는 자취.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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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3
: 문살을 ‘井’ 자 모양으로 짠 창.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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