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조선 중기, 무신 박의장의 후손들이 17세기에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원구리에서 축산면 도곡리로 이전하며 건립한 주택.
건립 경위
변천
형태와 특징
대문을 들어서면 사랑마당이 나온다. 사랑마당에서 볼 때, 우측으로 남향을 한 사랑채가 있다. 사랑채는 중문간채(中門間채)와 우익사(右翼舍)를 통해 안채와 연결되어 전체적으로 ㅁ자형의 배치가 된다. 사랑채는 정면에서 볼 때, 좌측에 1칸의 온돌방, 2칸의 개방된 대청마루로 구성되어 있다. 팔작지붕의 5량가(五樑架)이며, 측면 2칸이다. 사랑채 전면으로는 약 두 자 정도 마룻바닥을 내밀어 난간(欄干)을 설치하여 누마루처럼 구성하였다.
안채는 좌로부터 2칸의 온돌방, 3칸의 마루, 1칸의 상방으로 구성되어 총 정면 6칸, 측면 2칸 규모이다. 안방의 배면에는 반 칸 규모의 작은 도장방이 있으며, 상방(上房)의 전면에는 툇마루를 두었다. 안채 창문의 중간 설주 흔적에서 조선 중기 이전의 건축기법으로 여겨지는 영쌍창(欞雙窓)이 사용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고, 사랑 대청의 파련대공(波蓮臺工) 등에서도 당대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안채의 좌측에는 3칸 규모의 부엌과 그 아래로 1칸의 퇴식칸, 1칸의 온돌방으로 구성된 좌익사(左翼舍)가 정면의 중문간채와 연결되어 있다. 안채의 우측에는 기단을 낮춰 2칸의 곳간을 두었는데, 바닥면의 높이 차를 이용해 곳간 상부에 안마당 쪽으로 개방된 다락을 설치하고, 상방 전면의 툇마루에서 직접 출입할 수 있는 계단과 통로를 설치하였다. 좌익사와는 달리 안채, 중문간채와 지붕이 분리되어 있으며, 안채와의 사이에 사당으로 출입할 수 있는 작은 문을 두었다.
중문간채는 정면에서 볼 때, 좌측으로부터 2칸의 온돌방, 3칸의 문간, 다시 2칸의 온돌방으로 구성되어 총 정면 7칸, 측면 1칸 규모이다.
본채의 우측 뒤편에는 무의공 박의장의 불천위(不遷位) 사당이 있다. 사당 영역은 종택의 좌향보다 약간 동쪽으로 틀어져 독립된 담장 안에 위치해 있으며, 사당채와 내삼문으로 구성된다. 사당채는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5량가 맞배지붕 건물이며, 전면부에 위치한 내삼문을 통해 진입한다. 내삼문은 정면 3칸의 맞배지붕으로 구성되어 있다.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단행본
- 『93년도 문화재수리보고서』(문화재청, 1995)
- 『명가의 고문서 7, 절의를 숭상하고 충정에 뜻을 두다: 무안박씨 무의공후손가』(한국학중앙연구원, 2009)
논문
- 김화봉, 「영덕지역 뜰집의 형성과정에 관한 연구」(『대한건축학회연합논문집』 20-2, 대한건축학회지회연합회, 2018)
인터넷 자료
- 국가유산청 국가문화유산포털(www.heritage.go.kr)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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