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동재사는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문단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김담(金淡)의 묘역 인근에 건립된 재사이다. 초창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김당의 8세손인 김이만(金履萬)의 문집에 수록된 「중건빈동재사기(重建賓洞齋舍記)」를 통해 1753년(영조 29)에 중건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재사는 정면과 측면이 모두 5칸인 ㅁ자형 건물 1동인데, 지붕 가구는 모두 3량이다. 비교적 경사가 급한 대지에 자리잡았는데, 이러한 입지를 활용해 부분적으로 2층 공간을 두었다.
봉화 선성김씨(宣城金氏) 빈동재사(賓洞齋舍)는 조선 전기의 문신 문절공(文節公) 김담(金淡, 1416~1464)의 묘 근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지어진 건물이다. 이러한 목적으로 묘소 인근에 지어진 건물을 대개 재실(齋室)이라 하나, 특히 안동, 봉화, 영주 지역에서는 재사(齋舍)라고도 부른다.
봉화 선성김씨 빈동재사가 처음 지어진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김담의 8세손인 김이만(金履萬, 1683~1758)의 문집에 수록된 「중건빈동재사기(重建賓洞齋舍記)」의 내용을 통해 1753년(영조 29)에 중건(重建)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공사는 봄에 시작하여 같은 해 가을에 끝났는데, 중수기(重修記)에 기록된 규모는 총 16칸으로, 현재의 모습과 같다. 이후 전체적으로 기단과 벽체의 파손을 비롯해 누수로 인한 목부재의 부식이 있어 1993년 11월 10일에 보수를 시행한 바 있다.
봉화 선성김씨 빈동재사는 영주시와 봉화읍의 중간 지점인 문단리에 위치해 있다. 빈동(賓洞)은 김담의 재사가 건립된 이후 이곳을 찾아오는 손님이 많아 붙은 ‘손골’이라는 지명의 한자어 표기이기도 한데, 문단리의 중심지에서는 북쪽으로 약 2㎞ 가량 떨어진 작은 골짜기이다. 이 골짜기의 끝에 남향을 한 재사 건물이 있고, 동쪽의 구릉 위에 김담과 그의 부인 문씨(文氏)의 묘, 1635년(인조 13)에 세워진 신도비(神道碑)가 있다.
재사는 외부에서 봤을때 정면과 측면이 모두 5칸인 ㅁ자형 건물로, 모든 공간의 지붕 가구(架構)가 3량(三樑)이고, 보 방향의 폭도 1칸으로 같다. 전체 규모는 16칸이며, 안마당의 폭은 3칸이다. 남쪽에 위치한 대문간채의 두 번째 칸에 문을 달아 출입하고, 마굿간과 부엌, 아랫방이라고 부르는 온돌방을 두었다. 서쪽편에 위치한 날개채에는 남쪽으로 누마루 4칸이 있고, 북쪽으로는 상실(上室)이라 칭하는 온돌방이 있다. 이렇게 넓은 마루 공간을 두어 여러 사람이 함께 모일 수 있게 구성하는 모습은 재실 건축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데, 주로 음복례(飮福禮)를 할 때나, 비가 올 때 묘제(墓祭)를 대신 치르는 장소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동쪽편의 날개채에는 부엌과 온돌방들이 있는데, 높은 층고를 이용해 부엌 위편으로 2층을 두어 제사 준비를 위한 전사청(典祀廳)으로 사용하였다. 북쪽의 건물에는 안방 2칸과 마루가 있는데, 이 곳은 주로 제사를 진행하는 역할을 맡는 유사(有司)가 사용하는 공간으로 전해진다.
봉화 선성김씨 빈동재사는 중건 연대가 확실하고, 당시의 원형이 크게 훼손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있다. 이에 더해, 경상북도 지역에서 주로 나타나는 ㅁ자 형식의 재실 건축 유형과, 경사 지형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공간 배치를 살펴볼 수 있다. 문중에서 묘사(墓祀)를 그대로 전승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역사 ‧ 문화적 가치를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