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빈동재사는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문단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김담(金淡)의 묘역 인근에 건립된 재사이다. 초창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김당의 8세손인 김이만(金履萬)의 문집에 수록된 「중건빈동재사기(重建賓洞齋舍記)」를 통해 1753년(영조 29)에 중건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재사는 정면과 측면이 모두 5칸인 ㅁ자형 건물 1동인데, 지붕 가구는 모두 3량이다. 비교적 경사가 급한 대지에 자리잡았는데, 이러한 입지를 활용해 부분적으로 2층 공간을 두었다.
정의
조선시대,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문단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김담의 묘역 인근에 건립된 재사.
건립 경위
변천
형태와 특징
재사는 외부에서 봤을때 정면과 측면이 모두 5칸인 ㅁ자형 건물로, 모든 공간의 지붕 가구(架構)가 3량(三樑)이고, 보 방향의 폭도 1칸으로 같다. 전체 규모는 16칸이며, 안마당의 폭은 3칸이다. 남쪽에 위치한 대문간채의 두 번째 칸에 문을 달아 출입하고, 마굿간과 부엌, 아랫방이라고 부르는 온돌방을 두었다. 서쪽편에 위치한 날개채에는 남쪽으로 누마루 4칸이 있고, 북쪽으로는 상실(上室)이라 칭하는 온돌방이 있다. 이렇게 넓은 마루 공간을 두어 여러 사람이 함께 모일 수 있게 구성하는 모습은 재실 건축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데, 주로 음복례(飮福禮)를 할 때나, 비가 올 때 묘제(墓祭)를 대신 치르는 장소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동쪽편의 날개채에는 부엌과 온돌방들이 있는데, 높은 층고를 이용해 부엌 위편으로 2층을 두어 제사 준비를 위한 전사청(典祀廳)으로 사용하였다. 북쪽의 건물에는 안방 2칸과 마루가 있는데, 이 곳은 주로 제사를 진행하는 역할을 맡는 유사(有司)가 사용하는 공간으로 전해진다.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원전
- 『학고선생문집(鶴皐先生文集)』
단행본
- 봉화군, 『봉화문화유적요람』(봉화군, 1992)
- 문화재관리국, 『93년도 문화재수리보고서 하권』(문화재관리국, 1995)
논문
- 김동인·김일진, 「조선시대 재실 건축 연구-빈동재사를 중심으로」(『대한건축학회논문집』 6-5, 대한건축학회, 1990)
- 유기원, 『안동문화권의 재실 건축: 건축적 형식과 역사적 전개』(연세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08)
인터넷 자료
-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www.heritage.go.kr)
주석
-
주1
: 제사를 지내고 난 뒤 제사에 쓴 음식을 나누어 먹는 의례. 후손들이 조상의 가호를 입게 된다는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말샘
-
주2
: 무덤 앞에서 지내는 제사. 우리말샘
-
주3
: 나라의 제사를 맡아보던 관아. 우리말샘
-
주4
: 건축물의 터를 반듯하게 다듬은 다음에 터보다 한 층 높게 쌓은 단. 우리말샘
-
주5
: 땅이 비탈지고 조금 높은 곳. 우리말샘
-
주6
: 낱낱의 재료를 조립하여 만든 구조물. 우리말샘
-
주7
: 한 집에서 주인이 거처하는 방. 우리말샘
-
주8
: 절이나 왕궁 따위를 보수하거나 고쳐 지음. 우리말샘
-
주9
: 다락처럼 높게 만든 마루. 우리말샘
-
주10
: 건물의 층과 층 사이의 높이. 우리말샘
-
주11
: 음력 2월, 5월, 8월, 11월에 가묘에 지내는 제사. 우리말샘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