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예안이씨 사직공파 구택은 기묘사화 때 안동 풍산현으로 낙향한 예안이씨 7세손 이영이 1525년(중종 20)경 건립한 것으로 전해지는 주택이다. 이영은 조선 전기의 문신 이필간(李弼幹)의 첫째 아들로, 1507년(중종 2)에 생원진사시에 급제하였다. 사랑채와 안채가 좌우 익사로 연결되어 완전한 ㅁ자형을 이루고 있으나, 정면에서 볼 때, 우측으로 1.5칸 정도가 돌출되어 있다. 가운데 설주가 있는 영쌍창과 같이 건립 당시 모습으로 추정되는 부분들이 있다. 이 집은 예안이씨 충효당에서 남서쪽으로 약 300여 미터 떨어져 있다.
정의
1525년(중종 20)경, 16세기 기묘사화 때 안동 풍산현으로 낙향한 예안이씨 7세손 이영이 건립한 것으로 전해지는 주택.
건립 경위
변천
형태와 특징
ㅁ자형의 몸채 전면 중앙에는 안마당으로 출입할 수 있는 중문간(中門間)을 두었고, 우측에는 온돌방 2칸과 마루 1칸으로 구성된 사랑 영역이 있는데, 이 중 온돌방 1칸과 마루 1칸이 ㅁ자형의 배치에서 전면 우측으로 돌출된 부분이다. 2칸의 온돌방과 1칸의 마루는 기둥 간격이 조금씩 다르며, 전면의 처마 밑에는 폭이 좁은 마루가 설치되어 있다. 중문 좌측으로는 마굿간과 모방을 각각 한 칸씩 두었다.
중문을 통해 들어가면 전면에 2칸의 대청마루가 있으며, 안마당의 폭도 이와 같다. 전면에서 대청마루를 바라볼 때, 좌우측에 각각 상방(上房)과 안방이 1칸씩 있다. 안방에서 사랑 영역으로 연결된 우측의 익사(翼舍)에는 부엌과 고방(庫房)이 있고, 상방에서 모방으로 연결된 좌측의 익사에는 우익사(右翼舍)보다 작은 규모의 부엌과, 마루를 깐 고방, 곡식을 보관하는 뒤주를 차례로 두었다. ㅁ자형으로 된 몸채의 모든 부분이 3량가(三樑架)로 구성되어 있다.
남쪽으로 약 18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안동 하리동 삼층석탑’이 있다.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단행본
- 안동시, 『안동문화재대관』(안동시, 2007)
논문
- 김화봉, 『조선시대 안동문화권의 ‘뜰집’에 관한 연구』(부산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9)
인터넷 자료
- 국가유산청 국가문화유산포털(https://www.heritage.go.kr/)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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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대대로 살고 있는 고장.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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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중문이 있는 곳.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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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안방의 한 모퉁이에 붙어 있는 작은 방.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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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한 집에서 주인이 거처하는 방.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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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중심이 되는 집채의 좌우에 붙어 있는 곁채.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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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광’의 원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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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7
: 집의 안채와 떨어져 있는, 바깥주인이 거처하며 손님을 접대하는 곳.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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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8
: 한옥에서, 몸채의 방과 방 사이에 있는 큰 마루.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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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9
: 쌀 따위의 곡식을 담아 두는 세간의 하나. 나무로 궤짝같이 만드는데, 네 기둥과 짧은 발이 있으며 뚜껑의 절반 앞쪽이 문이 된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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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0
: 문짝을 끼워 달기 위하여 문의 양쪽에 세운 기둥.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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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1
: 기둥 밑동에서 꼭대기까지 직선으로 조금씩 가늘게 한 흘림.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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