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경상북도 민속문화재(현, 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이 집은 1525년에 건축되었다고 하나 현재의 구조 및 평면 형식으로 볼 때는 18세기의 건축물로 보인다. 아마도 후대에 중수(重修)를 한 것으로 추정된다.
평지에 자리잡은 남서향집으로 사랑마당 앞에 있던 대문채는 없어지고 지금은 ㅁ자형 정침(正寢 : 주택의 가장 중심이 되는 집 또는 방)만 남아 있다. 정면 7칸, 측면 7칸 규모인 전면 어간(御間 : 건물의 중앙간)에 낸 중문간의 좌측 3칸을 사랑으로 꾸몄다.
사랑은 전면에 두리기둥을 세웠는데 중문간 쪽에는 툇마루 뒤에 사랑방을 1칸 반 길이로 놓고 나머지는 모두 우물마루를 깔았다. 사랑방 뒤에는 고방이 한 칸 있는데 원래는 마루를 깐 서고였다고 하며, 그 뒤에는 안채 상방과의 사이에 통래칸이 있다.
중문간 좌측에는 마구간과 고방 그리고 전면이 개방된 마루방이 각 1칸씩 배열되었고 마루 뒤에는 책방이 1칸 연결되었는데 그 뒤에도 통래칸이 있어 안채와 은연중에 구분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안채의 중심에는 대청이 놓이고 양쪽으로 안방과 상방이 대향하여 배치되는 것이 통례인데, 이 집은 이와는 달리 안채의 좌단(左端)에 정면 2칸, 측면 2칸 크기의 대청이 배치되어 있고, 우측에 접하여 전면에 두리기둥을 세우고 반 칸 폭의 툇마루 뒤에 안방을 2칸통으로 놓아 부엌에 연결하였으며, 상방은 안대청의 좌단칸 앞에 1칸 크기로 배치되어 있다.
지붕가구는 안채나 사랑채가 모두 5량가구에 제형 판대공을 사용하였는데 안채의 재목이 더 후하다. 이 집 안채의 대청과 방들의 배치 형식은 이 지방에서만 보이는 독특한 형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