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이 집은 □형 평면의 몸채와 ―형 평면의 별당이 따로 건축되어 있다. 몸채는 서향으로 배치되어 있는데 왼쪽에 사랑방과 대청으로 구성된 사랑채를 두고 그 옆에 중문과 마구간, 방을 두어 안채와 연속시키고 있다.
안채는 □자형의 동북쪽에 있는데 동북쪽 안쪽에서부터 부엌·안방·대청·건넌방을 두고 다시 ㄱ자로 꺾여서 부엌·방·부엌을 두어 중문간채와 연결시키고 있다.
부엌 앞쪽으로는 곳간이 2칸 설비되어 있으며 이는 사랑대청과 연결되어 있다. 이 집의 구조는 막돌허튼층쌓기를 한 기단 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방주(方柱)를 세워 납도리를 받치고 있는 민도리집 구조이다.
사랑대청은 전면과 측면을 창호 없이 개방하였고 사랑방은 띠살여닫이창을 달았다. 처마는 홑처마이고 지붕은 □자형 평면 모두를 한 지붕 속에 둔 관계로 우진각지붕형식과 맞배지붕형식으로 마무리하였다.
안채도 막돌허튼층쌓기를 한 기단 위에 방주를 세웠는데 안방 전면과 대청 전면의 기둥들은 두리기둥을 세웠다. 가구는 오량으로 대들보를 앞뒤의 평주 위에 놓고 그 위에 동자기둥을 세워 종보를 받치고 다시 판대공을 놓아 종도리를 받치고 있다. 처마는 홑처마이다. 안채와 사랑채로 구성된 몸채의 북쪽 떨어진 곳에 정면 3칸, 측면 2칸 크기의 별당인 백원당(百源堂)이 있다.
이의 평면에는 북쪽인 왼쪽에 정면 2칸, 측면 2칸의 누마루를 두고 남쪽인 오른쪽에 한 칸 반 크기의 온돌방과 반칸폭의 퇴를 두었다. 구조는 막돌허튼층쌓기를 한 기단 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두리기둥을 세워 창방으로 결구하였고, 주두를 얹어 쇠서를 내민 이익공의 구조를 이루고 있다. 기둥 사이의 창방 위에 소로를 놓아 굴도리의 장여를 받쳤다. 처마는 홑처마이고 지붕은 팔작지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