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경상북도 민속자료(현, 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무의공(武毅公)박의장(朴毅長)의 넷째 아들이고 서애유성룡의 손자사위인 도와(陶窩)박선(朴璿)이 1620년경에 창건한 고택이다. 정침ㆍ사랑채ㆍ사당채와 방앗간채가 현존한다.
박선은 여헌(旅軒)장현광(張顯光)과 수암(修岩)유진(柳珍)의 문하에서 학문을 익히고 경학(經學)에 전념, 도학자로 이름을 떨쳤다. 현종 때 벼슬에 추천되었으나 사양하고 후학 양성에 전념하다가 작고, 그 덕을 추모해서 현재 도계정사(陶溪精舍)에 배향되었다.
그는 1644년에 큰형님을 위해 무안박씨무의공파종택(경상북도 민속자료, 1987년 지정)을 짓기도 하였다. 충효당은 도곡(陶谷, 가마골) 북방 야산을 배경으로 서향해서 터를 정하였다. 전에는 솟을삼문이 있고 방앗간채 부근에 연당을 파고 앞뒤로 이오정(二五亭)등 정자가 있었으나 불에 타 없어졌고, 초당(草堂)도 있었다 하나 지금은 없다.
고택을 충효당(忠孝堂)이라 명명한 사람은 숙종 때 우의정을 지낸 미수(眉叟)허목(許穆)이었다. 박선의 충효를 기리는 뜻에서 이름을 지었고, 손수 전자체로 충효당이라 쓴 편액을 보내 주었다. 또 박춘수(朴春秀)는 무의구곡시(武毅九曲詩)를 써서 기증하니, 그것을 현판을 만들어 대청에 걸어 두었다.
ㅁ자형 안채에 사랑채가 부설된 듯이 배치가 구성되었는데 안채 대청은 9칸이나 되는 대규모로 보통 보기 어려운 넓이다. 우측 끝 칸에 2칸의 상방, 좌측에 도장 1칸, 안방 3칸 부엌 3칸, 서고에서 꺾이며 헌간, 중문칸 이어서 작은 사랑방 2칸 마루 1칸 꺾이면서 따로 설비한 2칸 곡간으로 이어진다.
큰사랑채는 작은사랑 마루에 이어 남쪽으로 자리잡고 역시 서향하였다. 정면 3칸, 측면 2칸인데 방이 2칸이고 나머지는 우물마루를 깔았다. 사당채는 평삼문 안에 역시 서향한 정면 3칸, 측면 간 반 통 맞배지붕의 사당이 있다. 장대한 호기 있는 살림집에 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