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후조당문집』 등을 저술한 학자.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평소 효제를 학문의 근본으로 삼았으며, 일생 『심경(心經)』을 애독하였다고 한다. 1571년(선조 4) 스승 이황이 사망하자 소의(素衣)·소대(素帶)·소식(素食)하며 심상(心喪) 1년을 행하였다.
아우 김부의(金富儀), 4촌형 김부인(金富仁), 4촌아우 김부신(金富信)·김부륜(金富倫), 고종 금응훈(琴應壎)·금읍협(琴應夾)과 한 동네에 살면서 학문을 토론하고 덕업을 권장하여 향리에서는 ‘오천칠군자(烏川七君子)’라 칭송되었다.
1570년 이황이 역동서원(易東書院)을 건립할 때 적극적으로 협조하였으며, 1574년에는 조목(趙穆)과 함께 도산서원 건립을 주도하였다. 구봉령·권호문·조목 등 동문들과 두루 교유하였으며, 학문과 행실로서 사림들 사이에 신망이 높았다.
1822년(순조 22)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문순(文純)의 시호를 내렸다. 예안의 낙천사(洛川祠)에 위패가 봉안되었다. 저서로는 『후조당문집(後彫堂文集)』이 있다.
참고문헌
- 『근시재집(近始齋集)』
- 『도산급문제자록(陶山及門諸子錄)』
- 『월천집(月川集)』
- 『퇴계집(退溪集)』
- 『후조당문집(後彫堂文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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