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사간원정언, 홍문관부수찬, 사간원헌납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특히, 사간을 역임하는 동안 직언으로 일관하여 주위의 시기를 받아 승진이 순조롭지 못하기도 하였다. 외직으로는 진주·강계 등 네 고을을 다스렸는데, 진주 때는 어사 민정중(閔鼎重)의 선치(善治) 보고로 표리(表裏: 속과 겉의 옷감)를 받았다.
강계 때에는 삼세(蔘稅)를 모두 면제해주어 백성들이 ‘관서활불(關西活佛)’이라는 칭호를 주기도 하였다. 그리고 정부로부터 청백리에 뽑혔다. 학업에 열중하여 13세 때 정경세(鄭經世)에게 보이니, 정경세가 크게 될 인물이라 하였다.
자라면서 학문에 더욱 정진하여 김굉필(金宏弼)·이연경(李延慶)의 학통을 이은 강복성(康復誠)의 문인이 되었다. 부제학에 추증되었다.
저서로는 『계서유고(溪西遺稿)』가 있다.
참고문헌
- 『인조실록(仁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영남인물고(嶺南人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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