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기 ()

고려시대사
인물
고려 전기에, 수사도 문하시랑 동중서문하평장사 감수국사, 수태부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시호
문정(文貞)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031년(현종 22)
사망 연도
미상
주요 관직
수사도 문하시랑 동중서문하평장사 감수국사|태부|수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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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 전기에, 수사도 문하시랑 동중서문하평장사 감수국사, 수태부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신라의 왕족이었던 각간 김주원(金周元)의 후손이며, 아들은 김인존(金仁存)이다. 사위는 최용(崔溶)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070년(문종 24)에 좌우보궐(左右補闕)을 거쳐 1084년(선종 1)에는 동지공거(同知貢擧)로서 과거를 주관하였다.

이듬해에는 이듬해는 이부상서 참지정사로서 예부시랑 최사문(崔思文)과 함께 송나라에 가서 신종의 상을 조문하고 돌아왔다. 그 뒤 간의(諫議)를 거쳐 1089년 우산기상시(右散騎常侍), 1091년 호부상서정당문학(戶部尙書政堂文學), 이듬해는 호부상서로서 권판동북면병마사 겸 행영병마사(權判東北面兵馬事兼行營兵馬使)를 맡았다. 이 해 김상기가 지공거(知貢擧), 예부시랑(禮部侍郞) 오함서(伍咸庶)가 동지공거(同知貢擧)가 되어 진사(進士)를 뽑았다.

1093년에는 이부상서 참지정사 판상서호부사 수국사(吏部尙書參知政事判尙書戶部事修國事)에 올랐다. 1095년에 숙종이 즉위하자 수사도 문하시랑 동중서문하평장사 감수국사(守司徒門下侍郎同中書門下平章事監修國事)로 승진하고 1098년 태부(太傅), 이듬해에 수태부(守太傅)에 올랐다. 이후 김상기는 81세나 되어 예종이 내전에서 잔치를 베풀어 후한 예우를 보여주고자 하였다. 김상기가 노환으로 이를 사양하자, 특별히 좌승선(左承宣) 한교여(韓曒如)에게 명령하여 가마를 탄 채 내전에 들 수 있게 하고 들어온 후에도 큰 절을 하지 말도록 분부하는 교지를 내렸다. 그럼에도 그는 굳이 사양하고 나아가지 않았다. 선종 묘정(廟庭)에 배향되었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최용처김씨묘지명(崔湧妻金氏墓誌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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