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경주(慶州). 계림(鷄林: 지금의 경상북도 경주) 출신. 아버지는 신라왕족의 후예로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를 지낸 김세린(金世麟)이다.
문음(門蔭)으로 벼슬에 올라, 명종 즉위초에 내시(內侍)로 있었으며, 1176년에 남쪽에서 초적(草賊)의 난이 일어나자 종군하여 공을 세웠다.
이듬해에 명복궁녹사(明福宮錄事)가 되고, 이어 군기주부(軍器注簿)·상식국직장(尙食局直長)·춘방통사사인(春坊通事舍人)을 거쳐 감찰어사(監察御史)로 승진하였으며, 여러 벼슬을 거쳐 대부경(大府卿)이 되고 동북면지병마사(東北面知兵馬事)로 나갔다.
호어(胡語)·한어(漢語)를 해득하여 금나라의 사신이 오면 반드시 안내하여 접대하였으므로 항상 동각(東閣)에 거처하였다. 따라서, 관반(館伴)으로 인진사(引進使)에서 판합문사(判閤門事)에 오르기도 하였다.
1203년(신종 6)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를 역임한 뒤 중서문하평장사태자태부(中書門下平章事太子太傅)를 역임하였다. 시호는 정평(靖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