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책 3장의 필사본이다. 표제는 ‘경상남도곤양군읍지(慶尙南道昆陽郡邑誌)’인데, 이는 1896년(고종 33) 지방제도 개편에 따라 경상도가 ‘남도’와 ‘북도’로 분리되고 곤양군(昆陽郡) 지금의 경상남도 [사천시]이 경상남도에 소속되었음을 의미한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책의 첫머리에 채색 지도를 첨부하였다. 수록 항목은 강계(疆界), 건치연혁(建置沿革), 군명(郡名), 관직(官職), 성씨(姓氏), 산천, 풍속(風俗), 방리(坊里), 호구(戶口), 수한전결(水旱田結), 성지(城池), 창고(倉庫), 향교(鄕校), 단묘(壇廟), 불우(佛宇), 누정(樓亭), 공해(公廨), 도로, 교량(橋梁), 도서(島嶼), 제언(堤堰), 장시(場市), 어염(漁鹽), 역원(驛院), 형승(形勝), 토산(土産), 봉름(俸廩), 명환(名宦), 인물, 천방(川防) 등으로 구성하였다.
강계 항목에는 곤양군의 동서남북 및 서울까지의 거리를 기재하였고, 건치연혁 항목에는 고려를 거쳐 조선조까지 주변 지역과의 이합 과정과 지명 변천에 대해 적어 놓았다. 군명 항목에서는 곤명(昆明), 곤남(昆南), 철성(鐵城) 등의 명칭을 언급하였고, 관직 항목에서는 군수(郡守)를 비롯해 향장(鄕長) 1인, 순교(巡校) 4인, 서기(書記) 7인 등이 있었음을 기록하였다. 성씨 항목에는 강(姜) · 정(鄭) · 문(文) · 조(趙) · 최(崔) 등의 성을 올렸다. 산천 항목에서는 세종과 단종의 태실(胎室)이 있었던 소곡산(所谷山)을 소개하였으며, 풍속 항목에는 ‘검소함과 소탈함[儉率]’을 숭상한다고 적었다.
방리 항목에는 곤양군 소속 10개 면의 이름과 위치를 기재하였고, 호구 항목에는 1898년(고종 35) 기준 원호(元戶) 및 인구수를 기록하였다. 수한전결 항목에는 원장부상의 토지를 기재하였다. 성지 항목에는 곤양군성의 규모와 여첩(女堞), 성문, 옹성, 그리고 성내 우물과 연못의 숫자 등을 적었으며, 창고 항목에서는 사창고(司倉庫)와 군기고(軍器庫), 노량창(露梁倉)의 위치를 소개하였다. 향교 항목에는 그 위치를 기록하였다.
단묘 항목에서는 사직단(社稷壇)과 문묘(文廟), 성황단(城隍壇), 여제단(厲祭壇) 등의 위치를 알려 주고 있으며, 불우 항목에서는 다솔사(多率寺)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누정 항목에서는 관야정(觀野亭)과 연강정(練江亭)을 언급하였으며, 공해 항목에서는 객사(客舍)와 동헌(東軒), 향청당(鄕廳堂) 등에 대한 내용을 적었다. 도로 항목에는 관문으로부터 동서남북 방향에 위치한 각 지역마다의 거리를 기재하였고, 교량 항목에서는 진교(辰橋)와 당천교(唐川橋) 등 4곳을 소개하였다.
도서 항목에서는 가리면의 안도(鞍島), 양포면의 비토도(飛兎島), 서부면의 작도(鵲島), 서면의 전죽도(箭竹島) 등 4개 섬을 소개하였다. 제언 항목에는 지지제(枝池堤) 등 6곳의 위치와 규모를, 장시 항목에는 군북문외장(郡北門外場)과 진교장(辰橋場)의 위치와 개시일을 기록하였다. 어염 항목에는 서부면과 가리면, 금양면, 서면 등의 백성들이 소유하는 어정(漁艇)과 염부(鹽釜) 등을 적어 놓았다. 역원 항목에는 완사역(浣紗驛)과 양포역(良浦驛)을, 형승 항목에는 금오산(金鰲山)의 위치와 관련 유적을 소개해 놓았다.
토산 항목에서는 굴과 오징어, 전어, 낙지, 게, 도미, 가오리, 밤, 대나무 등을 소개하였다. 봉름 항목에는 4등군의 1년 경비를 기재하여 놓았고, 명환 항목에서는 역대 곤양군수 가운데 하경리(河敬履), 어득강(魚得江), 이광악(李光岳) 등 10인에 대해 말하였다. 인물 항목에서는 곤양 지역 출신으로 임진왜란 때 왜적 토벌에 공을 세운 정기룡(鄭起龍)을 언급하였으며, 천방 항목에는 18고(庫)가 있다고 기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