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책 10장의 필사본이다. 표제는 ‘경상북도군위군읍지(慶尙北道軍威郡邑誌)’인데, 이는 1896년(고종 33) 지방제도 개편에 따라 경상도가 ‘남도’와 ‘북도’로 분리되고 군위군[지금의 대구광역시 일부]이 경상북도에 소속되었음을 의미한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책의 첫머리에 채색 지도를 첨부하였다. 수록 항목은 건치연혁(建置沿革), 읍호(邑號), 관직(官職), 성씨(姓氏), 산천, 풍속(風俗), 방리(坊里), 호구(戶口), 전부(田賦), 요역(徭役), 군액(軍額), 성지(城池), 창고(倉庫), 군기고(軍器庫), 봉수(烽燧), 학교(學校), 단묘(壇廟), 불우(佛宇), 누정(樓亭), 도로, 교량(橋梁), 제언(堤堰), 장시(場市), 역원(驛院), 형승(形勝), 고적(古蹟), 토산(土産), 진공(進貢), 봉름(俸廩), 환적(宦蹟), 과거(科擧), 인물 등으로 구성하였다. 이 가운데 ‘성지’, ‘봉수’ 항목에는 내용을 기록하지 않았다.
건치연혁 항목에는, 군위는 본래 신라의 노동멱현(奴同覓縣) 지역으로 경덕왕 대에 군위로 개칭되어 숭선군(嵩善郡)에 소속되었고, 고려 현종 대에 상주(尙州)에 소속되었다가 인종 대에 일선(一善)으로 이속되었으며, 공양왕 때 감무(監務)를 두었다가 조선 태종 때인 1413년에 현감(縣監)을 두었다고 기재하였다. 읍호 항목에서는 ‘적라(赤羅)’라는 이름을 소개하였다. 관직 항목에는 현감, 안동진관병마절제도위(安東鎭管兵馬節制都尉), 겸어영파총(兼御營把摠) 등이 임명되었다고 적어 놓았으며, 성씨 항목에서는 군위 지역에 세거하는 이들의 성씨를 소개하였다.
산천 항목에는 마정산(馬井山), 박달산(朴達山) 등 16곳의 위치를 기록하였다. 방리 항목에는 군위뿐 아니라 소속 ‘이(里)’의 이름과 위치를 기재하였다. 호구 항목에는 고을의 원호(元戶)는 3,224호, 인구는 1만 1666명이며, 이 중 남자가 5,566명, 여자가 6,077명이라고 기록하였다. 전부 항목에는 한전(旱田)과 수전(水田)에 대해 말하였으며, 요역과 군액, 창고 항목에는 모두 ‘지금은 없어졌다[今廢]’고 적어 놓았다. 성지와 봉수 항목은 비어 있으며, 학교 항목에서는 향교(鄕校)와 남계서원(南溪書院)에 대해 알려 주고 있다.
단묘 항목에서는 사직사(社稷祠)와 사직단(社稷壇), 성황단(城隍壇), 여제단(厲祭壇), 기우단(祈雨壇), 김유신사(金庾信祠)를 언급하였다. 불우 항목에서는 마정암(馬井庵) 등 6곳, 누정 항목에서는 준희루(畯喜樓)와 침류정(沈流亭) 등 4곳에 대한 기록이 보인다. 도로 항목에는 서울과 주1, 감영(監營)과 주2, 안동진관(安東鎭管)과 주3 거리라고 써넣었고, 그 외 동서남북 방향으로 특정 지역까지의 거리를 기재하였다. 교량 항목에는 선교(船橋)와 병천교(幷川橋)의 위치를, 제언 항목에는 가조제(加助堤)와 송현제(松峴堤) 등 38곳의 위치를 적었다. 장시 항목에는 현내장(縣內場)과 효령장(孝靈場), 화곡장(花谷場)의 개시일을 써넣었다.
역원 항목에서는 소계역(召溪驛)을, 형승 항목에서는 영귀대(詠歸臺)와 초은대(招隱臺) 등 6곳을, 고적 항목에서는 불암(佛巖)과 병천산성(幷川山城), 효령부아(孝灵府衙), 주암(酒巖), 절효비(節孝碑) 등 7곳을 소개하였다. 토산 항목에는 목화씨와 닥나무, 마와 천궁(川芎), 우슬(牛膝), 작약(芍藥), 익모초(益母草) 등의 약재를 소개해 놓았다. 진공과 봉름 항목에는 ‘지금은 없어졌다’고 적어 놓았다. 환적 항목에는 역대 군위현감 명단을 기재하였으며, 과거 항목에는 군위 출신으로 과거 시험에 합격하였던 이들의 이름과 합격 시기, 최종 관직 등을 기록하였다. 인물 항목에는 군위 출신의 이름난 인물들에 대해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