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책 6장의 필사본이다. 표제는 ‘경상북도비안군읍지(慶尙北道比安郡邑誌)’인데, 이는 19세기 말 지방제도 개편에 따라 비안현(比安縣)이 비안군(比安郡) 지금의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이 되고, 경상도가 ‘남도’와 ‘북도’로 분리되면서 비안군이 경상북도에 소속되었음을 의미한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비안군읍지(比安郡邑誌)』는 1899년(광무 3)에 편찬하였다.
책의 첫머리에 채색 지도를 첨부하였다. 수록 항목은 [강계(疆界)], 건치연혁(建置沿革), 군명(郡名), 관직(官職), 성씨(姓氏), 산천, 방리(坊里), 호구(戶口), 학교, 단묘(壇廟), 능(陵), 객사(客舍), 관사(官舍), 불우(佛宇), 인물, 충절(忠節), 효자, 전답(田畓), 군기(軍器), 창고(倉庫), 성지(城池), 관방(關防), 진보(鎭堡), 봉수(烽燧), 교량(橋梁), 도서(島嶼), 제언(堤堰), 장시(場市), 목장(牧場) 등으로 구성하였다. 이 가운데 능과 성지, 관방, 진보, 봉수, 도서, 목장 등의 항목에는 내용을 기록하지 않았다.
강계 항목에는 비안군의 동서남북 인근 지역 및 서울과의 거리를 기재하였다. 건치연혁 항목에는, 비안군이 본래 신라의 아화옥현(阿火屋縣) 지역으로 경덕왕 때 비옥(比屋)으로 개칭되어 문소군(聞韶郡)의 영현(領縣)이 되었고, 고려 현종 때 상주목(尙州牧)에 속하였으며, 1390년(공양왕 2)에 안정현(安貞縣)과 병합된 후 1421년(세종 3)에 비안현으로 개칭되었다고 기록하였다.
군명 항목에서는 아화옥(阿火屋)과 병산(屛山), 비옥, 병옥(屛屋) 등 고을 이름을 소개하였다. 관직 항목에는 군수(郡守)와 훈도(訓導)를 기재하였으며, 성씨 항목에는 비옥(比屋), 안정(安貞), 신평(新平), 황림(黃林) 등에 거주하는 성씨를 적어 놓았다. 산천 항목에는 성황산(城隍山)과 간점산(肝岾山), 남천(南川)과 쌍계(雙溪) 등에 대한 정보를 수록하였다. 방리 항목에는 현내면(縣內面)과 신동면(身東面) 등 소속 동리들의 이름과 관아로부터의 거리를 상세히 기록하였다. 호구 항목에는 원호(元戶)가 2,752호, 인구가 1만 1313명인데, 이 중 남자가 6,375명, 여자가 4,938명이라고 써넣었다.
학교 항목에서는 향교(鄕校)를 소개하였고, 단묘 항목에서는 사직단(社稷壇)과 성황사(城隍祠), 여단(癘壇)을 언급하였다. 객사 항목에는 객사가 52칸이라고 기재하였으며, 관사 항목에는 관사가 12칸이라고 적어 놓았다. 불우 항목에는 용흥사(龍興寺)와 옥련사(玉蓮寺)에 대한 정보를 수록하였다.
인물 항목에는 비안 지역을 대표하는 인물, 즉 고려 후기의 나인(羅認), 나천서(羅天瑞) 부자에서부터 조선 후기의 장시규(張是奎), 장한상(張漢相) 부자 등에 대해 기록하였다. 충절 항목에서는 임진왜란 때 활약한 김희(金喜)와 박사숙(朴嗣叔), 박충인(朴忠仁)을 소개하였으며, 효자 항목에서는 유포(柳砲)와 변용(卞勇), 박시흥(朴時興) 등 총 3인을 언급하였다.
전답 항목에는 경작 중인 땅이 총 1,747결(結) 78부(負) 5속(束)으로, 그중 밭이 1,173결 95부 8속이고 논이 573결 82부 7속이라고 기재하였다. 군기 항목에는 비안군에서 보유하고 있는 무기들의 종류와 각각의 수량을 적어 놓았으며, 창고 항목에는 사창(社倉)에 대해 기록하였다. 교량 항목에서는 남천의 전천교(前川橋)와 후천교(後川橋)를 소개하였다. 제언 항목에는 폭두제(幅頭堤)와 발리제(鉢里堤) 등 총 33개 제언들에 대한 정보를 실었다. 장시 항목에는 5일장인 읍내장(邑內場)과 안계장(安溪場)의 개장 시기를 적어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