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1775년, 경상도 상주목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여지도서』 계통의 읍지.
내용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상백문고의 『상산읍지』는 호구가 갑오식[1774년]이고, 1733년(영조 9)에 고친 관수루(觀水樓)를 누정 항목에 실었는데, 영조를 당저(當宁)로 기록하였다. 궁실 항목에 ‘신증(新增)’이라 표시한 뒤, 1775년에 목사 정석달(鄭錫達)이 중수하고 단청하였다고 덧붙여 쓴 내용을 보면 1775년에 편찬한 것이다. 지도는 없지만, 상주진상주목 강역, 방리부터 선생안(先生案)까지 『여지도서』의 수록 순서를 따르면서 누정에 제영을 포함하고, 책 끝부분에 책판(冊板)과 선생안을 추가한 『여지도서』 증보 유형이다.
상주박물관에서 위탁받은 『상산지병오초책(商山誌丙午草冊)』, 고려대학교의 『상주읍지(尙州邑誌)』, 일본 덴리대학[天理大學] 이마니시문고[今西文庫]의 『창원지(昌原誌)』에 합철한 『상주진상주목[읍지]』, 이마니시본을 1910년대 초반에 베낀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의 『상주목읍지(尙州牧邑誌)』는 모두 1786년에 편찬한 읍지이다. 수록 항목은 건치연혁부터 책판까지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수록 순서를 존중하면서, 1768년에 보급한 항목을 반영하였다.
1832년에 보고한 『경상도읍지』에 실린 『상주목읍지』는 건치연혁부터 책판까지 전형적인 『경상도읍지』 유형이며, 비문(碑文)은 싣지 않았다. 그런데, 국립중앙도서관에 있는 상주목의 읍지 3종에 실린 ‘상산읍지전말(商山邑誌顚末)’을 보면, 1832년 읍지를 수정할 때 분란이 있었다. 인물 수록 기준을 놓고, 고을에 보존할 읍지와 감영에 보고할 것을 가리는 과정에서 다툼이 생겼던 것이다. 결국, 둘 다 일치시키기로 결의하면서 옛 읍지의 예에 따라 생원도 171명을 수록하였다고 하였으나, 규장각에 보고한 『경상도읍지』에는 문과 급제자만 실려 있다. 『경상도읍지』가 경상감영(慶尙監營)의 정본화 과정을 거친 결과물이었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단행본
- 이재두, 『조선후기 읍지편찬의 계보』(민속원, 2023)
- 『상산지 병오초책』(김정찬 옮김, 민속원, 2015)
논문
- 이재두, 「영조대의 제3, 4차 읍지 편찬 사업과 그 의미」(『대구경북연구』 18-2, 대구경북연구원, 2019)
- 이재두, 「1768년 개발한 『경상도읍지』 유형의 확산과 정착」(『규장각』 53,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018)
인터넷 자료
- [서울대학교 규장각 지리지 종합정보](https://kyujanggak.snu.ac.kr/geo)
- [한국고전종합DB](https://db.itk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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