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흥읍지(義興邑誌)』는 경상도 의흥현(義興縣) 지금의 [대구광역시 군위군 의흥면]에서 편찬하였다.
1책 10장의 필사본이다. 표제는 ‘의흥읍지’이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이 밖에 의흥현에 대한 읍지로 1899년(광무 3)에 편찬된 『의흥군읍지(義興郡邑誌)』가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과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에 남아 있으며, 1789년(정조 13)의 주1, 1795년(정조 19)과 1871년(고종 8)의 주2, 1832년(순조 32)의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3], 1878년(고종 15)의 주4 등의 도별 읍지에도 의흥현 읍지가 수록되어 있다. 모두 1768년(영조 44)에 편찬한 『의흥읍지』와 같은 형태로, 이 읍지를 저본으로 하여 환적과 과거, 인물 등의 항목에 일부 내용을 추가하였다.
1768년에 편찬하여 전국 읍지 편찬 사업에 보고하였다.
채색 지도를 첨부하였다. 수록 항목은 건치연혁(建置沿革), 군명(郡名), 관직, 성씨, 산천, 풍속, 방리(坊里), 호구, 전부(田賦), 군액(軍額), 성지(城池), 창고, 관방, 진보(鎭堡), 봉수(烽燧), 학교, 단묘(壇廟), 능묘, 불우(佛宇), 궁실, 누정(樓亭), 도로, 교량, 도서(島嶼), 제언(堤堰), 장시(場市), 역원(驛院), 목장(牧場), 형승(形勝), 고적(古蹟), 토산(土産), 진공(進貢), 봉름(俸廩), 환적(宦蹟), 과거, 인물, 제영(題詠), 비판(碑板) 순으로 구성하였다. ‘환적’에는 정의달(鄭義達)까지 기록하였는데, 1766년(영조 42)~1767년(영조 43)에 의흥현감으로 재직한 인물이다.
1768년의 『의흥읍지』와 다른 시기의 읍지를 비교해 보면, 『단성지』[일본 덴리대학]에 합철한 『의흥현[지]』는 1786년(정조 10)에 편찬되었는데, 건치연혁 앞에 ‘강역’과 ‘방리’를 수록하였고, 누정과 불우를 ‘누관’과 ‘사찰’로 표시하였다. 또 수록 순서가 일부 다르며, 환적이 없다. 국립중앙도서관의 『조선읍지(朝鮮邑誌)』에 수록된, 의성현과 합철한 의흥현 읍지는 1832년의 『경상도읍지』와 같은 시기에 편찬되었다. 환적 항목에 1830년(순조 30)에 부임한 이능연(李能淵)까지 기록하였는데, 1768년 읍지와 달리 지방관의 부임 시기와 이임 시기를 구체적으로 기재하였다.
1899년에 편찬된 『의흥군읍지』는 군기 항목을 신설하고, 관방과 능묘, 궁실 항목을 관애와 총묘, 공해 항목으로 변경하였으며, 비판 항목은 생략하였다. 환적 항목에는 1896년(고종 33)에 부임한 이채연(李采淵)까지 기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