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군읍지(大丘郡邑誌)』는 1768년(영조 44) 경상도 대구도호부(大丘都護府) 지금의 [대구광역시]에서 경상감영(慶尙監營)에 보고하기 위하여 편찬한 읍지이다. 전국 읍지 편찬 사업 과정에서 편찬하였다. 1책 100장의 필사본으로, 표제와 권수제는 모두 ‘대구읍지(大丘邑誌)’이다. 고을의 역사와 지리, 인물, 시문 정보와 통계 및 조사 자료 등을 수록하였다.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 도서이다. 1768년 이후 대구부(大丘府)의 읍지는 이 유형의 읍지를 저본으로 하여 환적과 과거, 인물 등의 항목에 일부 내용을 추가하였다.
1768년 홍문관(弘文館)에서는 『여지도서(輿地圖書)』를 대체할 새로운 읍지 수록 규정을 보급하였다. 당시 전국 각 고을에 읍지 편찬 명령이 내려진 것은 경상도 대구부 최흥원과 선산부(善山府) 노상추, 전라도 흥덕현(興德縣)의 황윤석 일기나, 『청하현읍지(淸河縣邑誌)』와 의주부 『용만지(龍灣誌)』의 서문을 통해 알 수 있다. 당시 경상도에서는 경상감사 이은(李溵)이 주도하여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 편찬을 시작하였다.
『대구읍지』는 이 시기에 보고한 읍지의 초고본으로, 채색 지도와 건치연혁을 시작으로 비판과 책판, 추록(追錄) 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1832년(순조 32)에 보고한 『경상도읍지』에 실린 각 고을의 읍지와 같은 유형이다. 『경상도읍지』 유형의 최초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이후 편찬된 1786년(정조 10)의 『대구부지[상 · 하]』[^1]는 물론, 1789년(정조 13)의 주2, 1832년의 주3, 1841년(헌종 7)의 주4, 1795년(정조 19)과 1871년(고종 8)의 주5, 1878년(고종 15)의 주6 등에 실린 모든 읍지의 수록 항목이 거의 같다.
1832년에 보고한 『경상도읍지』는 당시 지역사회에서 완성한 초고본을 정본화하는 과정에서 추가할 인물을 선별하였다. 그러나 경상감영에서 정본화한 읍지는 규장각(奎章閣) 보고용이었고, 지역사회에 남아 있지 않았다. 이에 따라 1871년, 1895년(고종 32), 1899년(광무 3)에 보고한 읍지는 『경상도읍지』[1832년] 초고본을 저본으로 하면서 더 이상의 인물을 추가하지 않았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과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의 『대구부읍지』 각 1종은 1899년에 규장각과 경상북도 관찰부에 보고한 것이다. 표제는 ‘경상북도대구군읍지’와 ‘대구군읍지’이며, 권수제는 ‘대구부읍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