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1841년, 경상도 고성현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읍지.
경상도 고성현(固城縣)지금의 경상남도 [고성군 · 통영시]에 대한 읍지로 현재 전해 오는 것은 『여지도서(輿地圖書)』 계통과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 계통, 그리고 예외가 적용된 경우 등 다양한 유형의 읍지가 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 『고성현읍지(固城縣邑誌)』는 일제강점기인 1910년대 전반에 『김해진관고성현[읍지]』을 베낀 후사본(後寫本)이다. 『김해진관고성현[읍지]』은 1786년(정조 10)에 보고한 읍지를 정서하면서 지도를 생략한 것이다. 1786년에 보고한 『고성현읍지』는 『여지도서』 수록 순서를 따르면서 누정 항목에 제영을 포함하고, 책판(冊板)과 선생안(先生案) 항목을 추가한 『여지도서』 증보 유형이다. 호구는 1756년(영조 32) 병자식이며, 선생안 항목에는 1783년(정조 7)부터 1784년(정조 8)까지 재임한 이우진(李羽晉)까지 기록하였다.
1841년(헌종 7)에 보고한, 성균관대학교 존경각의 『영남여지(嶺南輿誌)』에 실린 『고성현읍지』는 31장의 필사본이다. 표제는 ‘영남여지’이고, 권수제는 ‘고성현읍지’이다. 『경상도읍지』[1832년]에서 분실한 읍지의 원형을 잘 보여 주고 있다. 호구는 1840년(헌종 6) 경자식이며, 환적은 1838년(헌종 4)부터 1840년까지 재임한 이희정(李熙廷)까지이다.
1895년(고종 32)에 보고한 『영남읍지(嶺南邑誌)』에 실린 『고성부읍지(固城府邑誌)』도 『경상도읍지』 유형이지만, 1841년의 『영남여지』에 비해 지도를 싣지 않았다. 또한 여러 항목을 생략하였으며 고성부사례를 첨부하였다. 1899년(광무 3)에 보고한 『고성군읍지(固城郡邑誌)』의 표제는 ‘경상남도고성군읍지(慶尙南道固城郡邑誌)’이지만, 권수제는 ‘고성현읍지’이며, 비문과 책판을 생략하였다.
1832년에 보고한 『경상도읍지』는 고성현 편을 잃어버려 1871년(고종 8)에 보고한 『영남읍지』에 실린 「고성[읍지]」을 다시 베껴 썼다. 베껴 쓸 당시 보완하면서 권수제를 ‘고성읍지(固城邑誌)’로 고쳤으며, 수록 항목이 『여지도서』 계통이나 『경상도읍지』 유형과 다르다. 호구는 1870년(고종 7) 경오식이며, 선생안이나 환적이 없다. 국립고궁박물관의 『읍지』[1878년]에 실린 『고성[읍지]』도 일부 내용을 더하거나 뺐으나, 1871년에 보고한 읍지와 수록 내용이 거의 같고, 호구는 1876년(고종 13) 병자식이다.
참고문헌
단행본
- 이재두, 『조선후기 읍지편찬의 계보』(민속원, 2023)
논문
- 이재두, 「조선후기 경상도 읍지 편찬 사업 재검토」(『대구사학』 138, 대구사학회, 2020)
인터넷 자료
- [서울대학교 규장각 지리지 종합정보](https://kyujanggak.snu.ac.kr/geo)
- [한국고전종합DB](https://db.itk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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