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시 ()

통영도
통영도
인문지리
지명/행정지명ˑ마을
경상남도 중남단에 위치한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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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경상남도 중남단에 위치한 시.
개관

동쪽은 남해의 지협을 사이에 두고 거제시, 서쪽은 한려수도를 건너 남해군, 남쪽은 남해와 면하고 있으며, 북쪽은 고성군과 접하고 있다. 동경 128°07′∼128°44′, 북위 34°31′∼34°58′에 위치한다. 면적은 239.54㎢이고, 인구는 13만 9168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1개 읍, 6개 면, 8개 행정동(17개 법정동), 206개 행정리(50개 법정리)가 있다. 시청은 경상남도 통영시 무전동에 있다.

자연환경

고성반도 남쪽 끝에 자리 잡은 통영시는 3면이 바다로 싸여 있고 41개의 유인도와 110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진 경상남도의 대표적 도서 지역이다. 통영항은 한려해상국립공원의 동쪽 관문으로 우리나라 제일의 미항으로 알려져 있다. 소백산맥의 지맥이 침강하여 형성된 고성반도와 남해에 산재한 많은 섬들로 이루어져 있다.

지세의 특징을 시가지 부분과 외각 부분으로 구분하여 검토하면 다음과 같다. 시가지는 내륙으로부터 남해 쪽으로 길게 돌출해 나온 고성반도의 남단에 위치해 있다. 동쪽으로는 남해의 바다 건너 거제시가 도서로서 마주 대하며, 남쪽에는 한산섬이 바다 건너 위치하여 자연적으로 양호한 항만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해안에 연한 평지부가 대단히 협소하여 시가지는 남북이 극히 좁고 동서가 비교적 넓은 형상을 하고 있다.

외각부를 보면 고성반도의 북쪽에 저산성의 동서산맥이 지나가는 지구에 낮은 구릉성의 곡저지가 전개되고 있다. 그리고 남해 한려수도 상에 산재한 무수한 섬들이 본시의 관내에 속해 있는데 아름다운 경관으로 한려수도의 해상고원으로 지정되고 있다. 해안은 리아스식 해안으로 해안선이 복잡하고 만입이 심하며 한산만 · 고성만 등 크고 작은 만이 발달되었다.

섬으로는 한산도(閑山島) · 욕지도(欲知島) · 사량도(蛇梁島) · 미륵도(彌勒島) 등 140여 개의 유 · 무인도가 분포되어 있다. 미륵도는 다리와 해저터널로 육지와 연결되어 있으며 험준한 산지가 그대로 칭강하여 기암과 다양한 형태를 한 섬들로 절경을 이루고 있다.

대표적 산들로는 시역 내 동쪽에 망일봉(望日峰, 148m), 남쪽에 용화산(龍華山, 461m)이 있으며, 그 사이로 폭 300m의 한려수도의 좁은 수로가 펼쳐지고 있다. 외각의 북쪽에는 벽방산(壁芳山, 650m)을 비롯하여 면화산(綿花山, 410m) · 천개산(天開山, 525m)이 있고 서쪽에 봉화산(烽火山, 326m ) · 매봉산(梅峰山, 311m), 남쪽에 제석봉(帝釋峰, 279m) · 미륵봉(彌勒峰, 461m)등의 산지가 있다.

하천은 지형적 제약으로 길게 굽이쳐 흐르는 강을 형성하지는 못하였다. 북부산지에서 흘러나온 안정천(安井川)과 동해천(東海川)이 동쪽으로 흘러 남해로 흘러들고, 소하천으로 산양천(山陽川) · 광도천(光道川) · 원산천(院山川) · 죽림천(竹林川) 등이 있다.

기후는 남부해안기후대에 속해 해양성의 특성을 보인다. 연평균기온 14.7℃, 1월 평균기온 2.1℃, 8월 평균기온 27.3℃이며, 연강수량은 1,358㎜이다.

지질은 대부분 중생대 경상계 화강암과 화강편마암으로 구성되어 있다.

식생은 난대림대의 특성을 보여 삼나무 · 대나무 · 편백 · 해송 · 리기다소나무 · 오동나무 등이 자란다.

역사

욕지군도의 여러 섬에서 신석기시대의 유적들이 발견되어 우리나라 신석기문화가 이러한 도서지역에까지 퍼져 있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통영반도의 해안평지에는 지석묘 등 청동기시대 유적이 도처에 산재하며 그 분포가 고성지방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 · 『위서(魏書)』 「동이전(東夷傳)」의 사료에 의해 볼 때, 변진 12국 중의 고자미동국(古資彌凍國)이나 『삼국사기(三國史記)』 물계자(勿稽子) 열전과 『삼국유사』에 나오는 포상팔국 중의 고사포국(古史浦國) 혹은 고자국(古自國, 지금의 고성)에 속한 지역이었다.

신라는 이 지역을 차지하여 고자군(古自郡)을 두었는데 757년(경덕왕 16) 고성군으로 개칭하였다. 9주 중 강주(康州 : 지금의 진주)에 속한 고성군의 직속 촌락이었다.

995년(성종 14) 고주자사(固州刺使)를 두었다가 뒤에 현으로 강등되었다. 1018년(현종 9) 고성현이 거제현의 속현이 되었다. 그러다가 다시 현으로 복구되어 현령이 파견되었다. 1266년(원종 7) 고성현이 주로 승격, 고주(固州)가 되었다. 충렬왕 때 남해현에 합쳤다는 기록이 『고려사』 · 『대동지지』 ·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에 보인다. 1390년(공양왕 2) 현으로 환원되어 현령이 파견되었다.

임진왜란 때까지는 고성현의 연혁에 아무런 변동이 없었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이 당항포(唐項浦) 한산도해전에서 적 수군을 섬멸한 후, 1593년(선조 26)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어 한산도에 통제영을 설치하였다. 그 후 한산도는 우리 수군의 본거지가 되었다.

1603년 통제사 이경준이 통제영기(統制營基)를 용두포(頭龍浦)로 정하고 세병관 등을 창건하였다. 이듬해 통제영을 두룡포로 옮겼는데 이 때부터 통영이라 부르게 되었다. 1870년(고종 7) 고성현이 부로 승격했고 치소를 통제영 안으로 옮겼다가 1872년 고성으로 복귀하였다. 1895년 통제영이 폐지되고 이듬해 고성지방대를 설치, 병졸 400명을 주둔하였다. 1900년 5월 16일 진남군이라 하고 춘원면 · 도선면 · 광이면 · 광삼면 · 욕지도 · 사량도와 거제군의 한산면, 가좌도를 합해 1군으로 하였다. 1909년(순종 3) 3월 3일 용남군으로 개칭하고 동면 · 서면 · 산양면 · 도남면 · 도선면 · 산내면 · 광이면 · 광삼면 · 한산면 · 사량면 · 원삼면 · 가조면을 1군으로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용남군, 거제군을 합해 통영군이라 개칭하고 광이면, 광삼면 일부는 고성군에 편입되었다. 또 춘원면을 통영면으로 개칭하여 통영면 · 용남면 · 도산면 · 광도면 · 한산면 · 거제면 · 동부면 · 일운면 · 이운면 · 연초면 · 하청면 · 둔덕면 · 사등면 · 장목면 · 원삼면과 사량면을 합해 원량면이라 하여 16면을 1군으로 하였다. 1931년 4월 1일 통영면이 읍으로 승격되었으며, 1936년 산양면의 평림 · 인평 · 당동 · 미수 · 봉평 · 도남의 6개 리를 동으로 하여 통영읍에 편입시켰다.

1953년 1월 1일 통영군에서 거제도를 분리하여 거제군으로 개편하였다. 1955년 6월 29일 원량면이 욕지면과 사량면으로 분할, 개편되었다. 동년 9월 1일 통영읍이 충무시로 승격됨에 따라 분리되었다. 1968년 한려수도가 한려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1971년 거제대교가 완성되었다. 1973년 7월 1일 남해군의 갈도가 통영군에 편입되었으며 동년 동월 동일 용남면의 무전리가 충무시로 편입되었다. 1974년 10월 25일 광도면안정출장소를 설치하여 7면 1출장소가 되었다.

1995년 1월 1일 도농통합에 따라 통영군과 충무시가 통합되어 새로운 통영시로 되었다. 같은 해 3월 2일 산양면이 읍으로 승격되고 문화동과 중앙동을 문화동으로, 평림1·2동을 평림동으로, 도남1·2동을 도남동으로 통합하여 1읍 6면 17동 1출장소가 되었다. 1998년 명정동 · 서호동 · 구평림2동을 명정동으로, 항남동 · 문화동 · 태평동을 중앙동으로, 정량동 · 동호동을 정량동으로, 인평동 · 구평림1동을 인평동으로, 도천동 · 당동을 도천동으로 통합하여 1읍, 6면, 11동, 1출장소가 되었다. 1999년 행정기구 통합에 따라 안정 출장소 폐지하고 광도면을 통합하여 1읍, 6면, 11동으로 오늘에 이른다.

유물 · 유적

불교 유산으로는 광도면 안정리의 안정사 경내의 안정사대웅전 · 안정사 석불좌상(安靜寺石佛坐像) · 안정사동종 · 안정사만세루가 있다. 또, 봉평동의 용화사 경내에 용화사보광전 · 도솔암 등이 있다. 안정사대웅전은 1974년, 안정사동종은 2010년, 안정사만세루는 1985년, 용화사보광전은 1985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고, 도솔암은 1983년 경상남도 문화재자료(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청동기시대 유적으로 기반식의 영운리지석묘와 원산리지석묘 2기는 모두 개석식이며 법송리지석묘 중 1기는 기반식이고 1기는 개석식이다. 관덕리지석묘는 모두 3기로 성혈을 가진 것이 있다. 이 외에도 신전리지석묘군, 죽림리지석묘, 본촌리지석묘, 동달리 대곡부락지석묘, 장문리 호암마을지석묘 등이 있다. 삼국시대 유적으로 남평리고분에서 고배개 · 고배 · 호 · 유대호 등이 출토되었다.

신석기시대 유적으로 산양면 통영연대도패총(사적, 1990년 지정)에서 융기문토기 · 즐문토기 · 무문토기 · 마제석부 · 타제석부 · 어망추 · 흑요석제석촉 · 낚시바늘 · 장신구 · 조개팔지 등이 출토되었다. 욕지면 노대리의 욕지도패총(경상남도 기념물, 1974년 지정)과 상노대도패총(上老大島貝塚)이 있다.

무형유산으로는 통영오광대 · 승전무 · 소목장 · 두석장 · 동해안별신굿 · 남해안별신굿 등이 있다. 통영오광대는 1964년, 승전무는 1968년, 소목장은 1975년, 두석장은 1980년, 동해안별신굿은 1985년, 남해안별신굿은 1987년 국가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로 지정되었다.

성지로는 산양읍 삼덕리의 당포성(경상남도 기념물, 1983년 지정), 문화동 · 북신동의 통영성지(경상남도 기념물, 1991년 지정), 삼천진지는 병선들의 전진기지로 이용되던 곳이다. 원문성지는 숙종 8년에 축조되었으나 지금은 흔적만 남았을 뿐이다.

광도면 죽림리에 통영향교(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83년 지정), 명정동에 통영 충렬사(사적, 1973년 지정) · 통영충렬사팔사품일괄(보물, 1966년 지정)이 있다. 또한, 당동에 착량묘(경상남도 기념물, 1974년 지정), 사량면 금평리의 최영장군사당(경상남도 문화재자료, 1983년 지정), 문화동의 세병관(보물, 2002년 지정)이 있다.

그리고 한산면 두억리에 한산도이충무공유적(사적, 1963년 지정)은 이순신장군이 왜군을 크게 무찌른 한산대첩의 유서 깊은 곳이다. 문화동에 두룡포기사비(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74년 지정), 명정동에 충렬묘비(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74년 지정)는 이충무공의 충절을 기리고자 1681년(숙종 7) 제 60대 통제사 민섬이 건립한 것이다. 정량동에 염언상묘(경상남도 기념물, 1992년 지정)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 왜적을 무찌른 염언상장군의 묘이다.

명정동에 충렬사동백나무(경상남도 기념물, 1985년 지정), 한산면 비진리에 통영비진동의 팔손이나무자생지(천연기념물, 1962년 지정), 홍도일원에 홍도 괭이갈매기 번식지(천연기념물, 1982년 지정), 욕지면 연화리우도의 생달나무와 후박나무(천연기념물, 1984년 지정), 동항리 욕지면의 모밀잣 밤나무 숲(천연기념물, 1984년 지정), 산양읍 추도리추도의 후박나무(천연기념물, 1984년 지정) 등이 있다. 도선리의 백로 및 왜가리 번식지는 1970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으나 더 이상 백로와 왜가리의 번식이 관찰되지 않아 기능이 상실되어 2009년 지정 해제되었다.

도산면 오륜리통영읍도 공룡발자국화석(경상남도 문화재자료, 1993년 지정)이 있다. 도천동의 백운서재(경상남도 문화재자료, 1983년 지정)가 있고, 1968년 국가민속문화재(현, 국가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된 통영문화동벅수는 1906년 동민들이 풍수지리설에 따라 세운 일종의 돌장승이다.

교육 · 문화

조선시대 교육기관으로서 향교는 1630년(인조 8) 고성현의 읍치를 이 곳으로 옮길 때 광도면 죽림리에 고성향교(固城鄕校)를 옮겨 유생들을 모아 가르치면서 처음 건립되었다. 이 향교는 1636년 고성읍으로 다시 이건하였다. 이후, 1895년 고성군에서 진남군이 분리되자 통영의 사림들이 향교를 복구하려고 1910년광도면 죽림리 옛터에 통영향교(統營鄕校)를 재건하였다.

이와 별도로 1606년 건립된 충렬사는 1663년 사액되어 강당과 동서재를 갖추어 이순신의 충절과 공훈을 추모하고 원생들을 교육하였다. 1593년 삼도수군통제영이 지금의 한산면 두억리에 설치되면서 1645년 한산도에 운주당이 건립되었는데 조선 수군의 본영으로서 수군을 조련하는 군사교육을 담당하였다. 정유재란 후 불탄 운주당(運籌堂)은 1741년 수군통제사 조경이 중건하여 제승당(制勝堂)이라 하여 호국충절을 기리는 장소가 되었다. 이순신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주민들이 세운 사당인 착량묘에 1877년 통제사 이규석이 호상재를 지어 향리 자제를 모아 교육하였다. 수군통제영이 있던 이 곳에서는 한학훈도와 왜학훈도를 별도로 두어 일본어를 가르쳤으며, 병학을 교수하기 위해 병서도 간행하였다.

사립 교육시설로는 1805년 도천동에 설립된 백운서재가 있다. 백운이 설립했다는 이 서재는 지금까지 이 곳 주민이 모여 향사를 계속하고 있다. 근대 교육기관으로는 지금의 통영국민학교가 1908년 진남보통학교라는 이름으로 개교한 이래, 1941년 지금의 통영고등학교가 개교하였다. 이후, 1942년 통영공립중학교가, 1943년 통영공립고등여학교가 개교하는 등 일찍부터 중등교육이 실시되었다. 그리고 1917년에 경남수산전습소가 설립되어 통영수산전문대학으로 되었다. 그러다가 1995년에 경상국립대학교로 편입되어 명칭을 해양과학대학으로 변경하였다.

2015년 현재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0개교, 중학교 12개교, 고등학교 6개교가 있다. 대학은 경상국립대학교 해양과학대학이 있다.

문화행사로는 해마다 9월에 열리는 한산대첩제가 있다. 이는 통영시의 종합문화예술제로서 이순신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각종 문화예술축제가 열린다.

민속

대표적 민속놀이로는 가면무극인 ‘통영오광대’와 이순신이 장병의 사기를 고취하기 위해 추게 했다는 북춤인 ‘승전무’, 그리고 ‘사또놀음’을 들 수 있다.

이 중 ‘사또놀음’은 정월 초나 4월 초에 거행되는 놀이로 이 곳에 통제영이 들어선 뒤에 생긴 일종의 원놀음이다. 이 놀이는 덕망이 높은 사람을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인 사또로 뽑아 삼현육각을 앞세우고 영기(令旗)를 휘날리며 서리와 군졸 · 팔선녀를 거느리고 미륵산 언덕으로 가면서 길놀이를 벌이는 앞놀이와, 사또가 백성들의 선악을 가려 치정하는 집정놀이와 북춤 · 검무 · 오광대놀이 등의 뒷놀이로 구성되어 있다. 사또놀음은 일제강점기에 중단되었으나 최근에 재연된 바 있다. 이 밖에도 연날리기 · 널뛰기 · 못치기 · 대문놀이 · 꼬리잡기 등이 전한다.

동제는 유래가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는 산양읍 삼덕리의 동제와 도남동의 당제가 유명하다. 이 동제는 음력 12월 12일경에 열리는 위산계(慰山稧)에서 제관을 선정하여 섣달 그믐날 11시경에 거행하며, 이 때 마을의 평안과 풍농풍어를 기원한다. 동제의 순서는 먼저 제관이 장군봉(將軍峰)에 올라가서 메를 지어 천제당에 제를 지내고, 장군당에서 장군제와 용마제를 지낸 뒤 하산하면서 중턱의 바위에서 잡신제를 지낸다. 그리고 각 가정에서 메를 한 상씩 가져와 동구의 석장승에게 벅수제를, 마을 안의 포구나무에 당산제를, 별신대거리에서 별신제를 지내게 된다. 이 삼덕리의 제당과 집기들은 중요 민속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이 밖에도 행사의 규모가 큰 사량면 양지리 능량마을에서 10년마다 행해지는 위민굿, 의적 설익장군을 모시는 사량면수우도(樹牛島)의 동제 등이 있다. 그리고 도남동의 당제는 풍어와 해난사고가 없기를 기원할 목적으로 섣달 그믐날 자정에 팽나무인 당산목에 제를 지낸 뒤, 공동우물 · 선창 · 배 등을 두루 돌면서 고사를 지내는 것이다. 예전에는 음력 12월 20일 무렵에 동회를 열어 주민 중에서 제관을 선정했으나 근년에는 승려에게 행사를 맡기고 있다. 이런 현상은 동제의 근대적 변모로서, 인평동 한실마을에서도 이와 같이 제를 거행한다.

이 밖에 특이한 동제로 열녀를 마을의 수호신으로 삼아 음력 3월 3일과 9월 9일 열녀각에 제를 지내는 봉평동 해평마을의 동제가 있으며, 통제사영이 있을 당시 둑사(纛祠)에 모시던 둑신(纛神)이 여전히 마을의 신앙대상이 되고 있는 곳도 많다. 또한 이 곳은 원래 남해안 도서의 어촌 별신굿에 초청되어 다니던 큰무당이 많이 있었던 까닭에 그 우수한 기능과 문화적 가치가 인정되어 국가무형유산인 남해안별신굿으로 지정되었다.

설화 · 민요

「염진사전설(廉進士傳說)」 · 「해평열녀전설(海坪烈女傳說)」 등의 인물전설과 이순신에 얽힌 지명유래전설이 다수 전하고 있다. 염진사는 조선시대 이 곳에 살던 선비인데, 왜국의 배가 우리의 사정을 정탐하려고 오자, “당신은 처자가 있는가(君在妻子乎).”라고 써서 왜구에게 보냈다. 이에 왜구가 “동방예의지국에서 부모의 안부를 묻지 않고 어떻게 먼저 처자를 묻는가(東方禮儀之國 不問父母候先問妻子乎).”라고 답하자 염진사는 “부모가 계실 때는 먼 곳에 가서 머물지 않느니라(時於父母在 不留遠方).” 하고 반격하였다. 그러자 왜구는 할 말을 잃고 염진사에게 선생님이라 부르며 절을 하고는 뱃머리를 돌려 도망갔다 한다.

「해평열녀전설」은 해평마을에 사는 어부가 풍랑을 만나 죽자 그 아내도 바다에 몸을 던져 죽었는데, 사흘만에 서로 안고 있는 부부의 시체가 떠올라 사람들이 합장을 해주었는데 마을에 괴질이 돌고 현감의 세숫물에 열녀라 쓰인 나뭇잎이 떨어지므로 ‘만고창해일심정렬(萬古滄海一心貞烈)’이라 새긴 해평열녀비를 세웠더니 변고가 사라졌다는 이야기이다.

이 밖에도 섬이 물결따라 떠오는데 여자가 방정맞게 섬이 떠내려온다고 외치는 바람에 그 자리에 서버렸다는 「공주섬〔拱珠島〕전설」, 목에 걸린 비녀를 빼어 살려준 호랑이의 보은으로 짓게 되었다는 「도솔암 연기설화」, 정량동 맨데마을에 태어난 아기장수가 죽자 그를 태울 용마가 산봉우리에서 눈물을 흘리고 울부짖었다는 「마루봉전설(馬淚峰傳說)」, 악정을 하던 통제사에게 도술을 부려 말발굽을 땅에 붙게 했다가 뉘우친다는 서신을 받고 말을 가게 했다는 「백운선생전설(白雲先生傳說)」 등이 전한다.

이 지역은 일찍이 통영 · 거제 · 고성 등의 중심 고을로 발달하였다. 따라서 흔히 인근 지역의 민요가 유입되어 농업노동요와 어업노동요를 들을 수 있으나, 이 고장의 특징적 민요는 고을을 배경으로 발달한 수공업노동요와 제의기능요(祭儀機能謠) · 유희요라 할 수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갓일노래」 · 「성주풀이」 · 「통영지연가(統營紙鳶歌)」 등이다.

「갓일노래」는 유명한 통영갓을 제작하면서 지루한 작업의 고단함을 잊고 일의 능률을 올리기 위해 부르는 노래이다. 갓의 제작 공정이 양태방에서 양태를 엮는 일, 총모자방에서 총모자를 절이는 일, 그리고 갓방에서 그 두 가지로 갓을 조립하여 완성하는 갓일로 분업화되어 있어 민요도 「양태노래」 · 「총모자노래」 · 「갓노래」의 세 가지가 있다. 어느 것이든 “한코 떠라 두코 떠라”, “떠라 떠라 뛰고 떠라” 등 한올 한올 엮어 나가는 과정을 표현한 구절이 있다. 그 형식은 짧은 단형과 다른 민요들을 끌어다가 이어서 부르는 장형이 있고, 그 내용은 주로 작업을 재촉하고 갓을 만들어 부모봉양하고 나라님께 진상한다는 것으로, 장형의 경우에는 사설이 다양하다.

「성주풀이」는 정초에 매귀패가 각 가정과 상점, 그리고 정박하고 있는 배에 가서 농악을 울리며 상쇠가 액을 막고 번창하라는 축원을 해주는 사설인데, 그 중에서 배에 가서 행하는 사설이 특징적이다.

「통영지연가」는 연띄우기가 성행하고 큰 연싸움대회가 열리는 지역적 특성을 배경으로 형성된, 다른 지방에서 찾기 힘든 연날리기 노래이다. 대보름날 연싸움에서 자기 남편이 이겨서 기쁘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는데, 사설에 충무의 지명과 연이름이 들어 있어 지역성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이 밖에도 고단하여 조는 며느리가 미워 관청에 송사를 했으나 며느리의 친정 가족이 육방관속(六房官屬)으로 있어 성사를 못하고 돌아온 시어머니에게 며느리가 쓴 나물 삶은 물을 준다는 내용을 서사적으로 전개한 「잠노래」와 장터에 떠돌며 동냥하는 거지가 부르는 것을 장난으로 흉내내어 부르는 「장타령」 등은 과거부터 행정도시와 상업도시로 발달한 이 고장의 특성을 잘 나타내는 민요라 할 수 있다.

산업 · 교통

대표적 산업은 수산업이다. 통영은 입지 특성상 남해 해상 교통과 수산업의 거점 도시로 청정해역을 앞에 두고 있다. 인근 해역은 어종이 다양하고 수심이 얕은 리아스식 해안으로 양식어업의 최적지이다. 멸치가 통영의 특산물이며 청정 해역에서 연승수하식 굴 양식과 피조개 양식, 그리고 장어잡이 통발 어업이 성하다. 통영은 옛날부터 양반과 상민의 차별이 적었던 곳으로 통제영에 납품하는 공방이 발전하여 장인들이 많았다. 통영갓, 통영장롱, 통영소반 등이 전국적으로 명성을 떨쳤으며 나전칠기도 통영에서 기원되었다.

총경지면적은 3,389㏊이며, 이 중 논은 전체경지면적의 31.2%에 해당하는 1,057㏊, 밭은 68.8%인 2,332㏊이다. 논보다 밭의 이용이 현저히 우세하게 나타나고 있다. 시의 농가호수는 4,454호, 농가인구는 1만 2748명으로서 시 인구에 대한 농가인구율은 9.5%에 해당한다. 과거에 비해 농가인구와 호수는 점차 줄어들고 있는 현상을 나타낸다. 시는 362.7㏊의 농업진흥지역과 95.0㏊의 농업보호구역을 설정하여 농업을 장려하고 있다.

농업생산 활동은 현재의 시가지를 형성하는 연안지구를 제외한 내륙의 분지와 각 도서지구에서 소규모로 이루어지고 있다. 주요 농산물로는 주곡인 쌀과 보리가 생산되고 있으나 양은 미미한 편이다. 주로 따뜻한 겨울의 기온을 이용한 비닐하우스를 이용한 원예작물의 재배가 성하다. 광도면에는 열대작물을 전문적으로 재배하는 원예농장이 있어 파인애플 · 바나나 · 파파야 · 아보카도 · 체리 · 키위 등을 생산하여 전국 각지에 공급하고 있다.

도내 시 · 군 중 어업의 중요성이 어느 지역보다도 큰 편이다. 농가는 약 1·3정도가 각종 어업에 종사, 농가소득의 부족을 보충하고 있다. 이는 어선의 보유가 4,638척에 달하여 도내의 어로활동에 사용 중인 총 선박의 28.9%를 점유하고 있는 사실에서도 여실히 나타나고 있다. 수산업은 고등어 · 도미 · 대구 · 방어 · 멸치 등의 어획과 김 · 미역 · 굴 · 조게 등의 양식업이 널리 알려져 왔다.

산업구조의 특성을 보면, 2008년 현재 농업 및 임업, 그리고 광업에 종사하는 인구나 해당 업체는 전무하다. 총 사업체수는 9,245업체에 3만 8745명이 고용되어 있다. 어업관련업체는 2개 업체에 21명의 종사자가 있고 제조업체는 582개 업체에 총 1만 527명이 종사한다. 제조업체 중에서는 음식료품제조업이나 기타 운송장비제조업의 비중이 다른 업종에 비해 큰 편이다. 정량동과 광도면에 제조업체가 집중적으로 분포하며 도산면에도 상대적으로 많은 제조업체가 자리 잡고 있다.

가장 비중이 큰 산업인 서비스업의 업체수는 8,661개이며 총사자수는 2만 8,197명에 달한다. 이중 도매 및 소매업의 업체수는 2,708개이며 총 6,611명이 종사하고 있다. 다음으로 비중이 큰 숙박 및 음식업체는 2,358개이고 5,266명이 고용되어 있다. 통영시의 경우 1차 산업의 비중이 극히 적고 상업과 서비스업의 비중이 고용 면에서 제조업의 10배가 넘는 등 산업간 균형이 매우 불균형한 것으로 나타난다. 시장은 상설시장 10개소가 시가지와 외각 지역에 분포되어 있다.

교통은 국도 14호선이 군의 북부를 고성∼거제로 지나며, 그 외에도 지방도가 있다. 대전∼통영간 고속도로가 개통되어 사천∼서울간의 공로와 함께 진주 · 대전 · 서울을 바로 잇는 육로를 통한 남북 간의 교류가 더욱 활기를 띠고 있다. 해상교통은 쾌속선을 비롯하여 연안항로의 해운이 발달하여 주요 섬과의 연결이 되어 있으나 다소 불편한 편이다.

관광

이 지역은 우리나라 제1의 해상 관광지역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한산도를 비롯하여 40여 개의 크고 작은 섬들로 이루어진 다도해지역으로, 온화한 기후에 수려한 자연경관이 어우러져 있다. 또 곳곳에 이순신 장군의 전승 유적지가 많아 연중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다.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일부로 점점이 떠 있는 섬 사이를 누비면서 나가는 해상관광은 이름 없는 무인도의 기암괴석과 동백 숲이 나타나고 흰 모래사장을 둘러싸인 섬들이 전개되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여름철에는 비진도 · 연화도 · 욕지도 등이 해수욕장과 더불어 더욱 유명하다.

욕지면에는 오래된 고분군과 백로 · 괭이갈매기 서식지가 있어 새와 함께 어우러지는 경치가 아름다워 사진작가들이 많이 찾는다. 통영항을 기점으로 정기 여객선이 운항되고 부산에서 매일 3회 여객선 페리호가 왕래하며 이 밖에 소형선도 이용할 수 있다.

특히 통영항은 임진왜란의 대전승지이며 한려해상국립공원의 관문에 위치한 미항이다. 한국의 나폴리로 불릴 만큼 수려한 관광자원과 임진왜란의 유적지가 많아 연중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 곳으로 남망산공원에서 보는 다도해는 절경이다. 통영항 서쪽 한려수도 관문에는 미륵도와 해저로 연결되는 우리 나라 유일의 해저터널인 통영해저터널이 있어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 이 해저터널 위에 설치된 아치형의 통영교는 통영의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관광명소이다. 이 밖에 착량묘 · 용화사 · 송장나루터 등의 경승지가 유명하다.

관광호텔 · 유스호스텔과 그 밖에 숙박시설이 완비되어 있고, 40여 척이나 되는 쾌속여객선 · 해상유람선을 이용, 한산도와 비진도를 관광할 수 있다. 특히 통영만에 자리 잡은 한산도는 임진왜란 때 한산도해전에서 대승을 거둔 충무공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제승당과 그 주변 해역의 호수같이 맑고 잔잔한 바다와 수면 위를 난무하는 갈매기 떼와의 조화는 절경을 이루어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관광 명소이다.

시내에는 이순신의 위업을 기리기 위한 충렬사가 있으며, 특히 수령 350년 된 울창한 동백나무로 둘러싸여 장관을 이룬다. 통영항에 들어서면 눈에 띄는 웅장한 건물이 세병관이다. 이는 1604년부터 1896년까지 삼도수군통제영의 본영으로서 그 당시 국방을 담당하던 이순신의 얼을 느낄 수 있는 자랑스런 유적지이다.

통영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가 주최하는 통영예술제는 통영 지역의 유일한 종합예술축제로서 통영시의 문화예술관련 단위지부가 수준 높은 문화예술향유 기회를 통영시민에게 제공한다. 이순신장군의 얼과 높은 뜻을 계승하고 한산대첩의 큰 뜻을 기리기 위한 한산대첩기념제전은 통제영 300년 역사의 전통을 살려 역사와 문화 · 예술, 수산과 관광이 어우러진 해양축제이다.

동호동에 자리 잡은 시민문화회관은 통영시의 대표적인 문화예술의 장으로 각종 공연과 전시 및 창작공간의 제공 등 다목적 문화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한다. 항남동강구안 물량장에 있는 통영문화마당은 지역특성과 문화를 표출할 수 있는 예술의 열린 공간을 조성하여 시민 생활에 유익하고 풍부한 문화휴식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1997년에 개장되었다. 태평동의 향토역사관은 통영과 관련된 사료를 발굴, 수집, 보존, 정리, 전시하고 있다.

그리고 바다의 학습장인 통영수산과학관이 산양읍 미남리에 위치하고 있다. 용남면 화산리의 통영옻칠미술관은 400여년의 오랜 전통을 가진 통영옻칠의 역사를 잇기 위해 2006년에 문을 연 미술관이다. 이외에도 도천동의 페스티벌하우스, 도남동의 통영전통공예관, 용남동의 명품진주전시관, 동호동의 남망산조각공원 등이 있다. 그리고 예술공간으로 전혁림미술관, 연명예슐촌, 청마문학관, 청마거리, 윤이상거리 등이 있다.

통영공설운동장은 전국규모의 각종 대회를 개최하며, 시민들을 위한 각종 사회체육프로그램을 기획운영하고 있다. 북신동에 자리 잡고 있다. 평림동의 평린체육전지훈련장에서는 전국규모의 축구대회를 개최하고 있으며, 특히 동계전지훈련장으로 각광받고 있다. 동호동에 있는 충무체육관은 다양한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5레인의 수영장을 갖추고 있다.

읍 · 면
  1. 산양읍(山陽邑)

시의 남부해역에 위치한 읍. 면적 39.62㎢, 인구 5,203명(2015년 현재), 읍 소재지는 남평리이다. 본래 거제군 지역으로 1603년(선조 35)고성현 춘원면(春元面)이라 하다가 1900년에 편입되어 신봉(新峰) · 봉전(鳳田) · 마동(馬洞) · 달아(達牙) · 연명(延命) 등 16개 리를 관할하였다. 그러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서면(西面)의 풍화 · 미오 · 남수 · 봉수 등 11개 리를 병합해 통영군에 편입, 1995년 읍으로 승격되었다.

미륵도와 23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면 전체가 한려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미륵도는 동쪽에 한산만 · 통영만과 접하여 있으며 섬의 중앙에 미륵산이 있다. 침강해안으로 해안선의 굴곡이 심하여 곤리도(昆里島) · 학림도(鶴林島) · 연대도(烟臺島) 등 작은 섬들이 산재해 있다. 경지율이 총 면적의 약 20%로 낮으며, 밭농사가 우세하다.

주요 농산물로는 쌀 · 보리 · 고구마 등이 생산되고 비닐하우스에서 열대성작물인 파인애플 · 바나나 · 멜론 등을 재배하여 농가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시의 어업중심지로서 어류축양단지를 조성, 장어통발업 · 우렁쉥이 양식 등을 하고 있다. 수산물로는 가자미 · 멸치 · 갈치 · 방어 등이 어획되고 특산물로 피조개가 유명하다.

교통은 해저 터널과 통영교로 통영시가지와 연결, 연륙되었고 군도인 도로가 있다. 해상 교통은 통영시에서 정기적으로 여객선이 학림도 · 연대도 · 추도 등을 운항하며 각 섬들간에는 도선으로 내왕한다. 문화유적은 신전리와 미남리에 패총, 남평리에 고분, 삼덕리에는 당포산성이 있다. 연화리에 경주이씨(慶州李氏)의 동족마을이 있다.

남평(藍坪) · 영운(永運) · 신전(新田) · 미남(彌南) · 연화(延和) · 삼덕(三德) · 풍화(蘴和) · 곤(昆) · 추도(楸島) · 저림(猪林) · 연곡(烟谷) 등 11개 리가 있다.

  1. 광도면(光道面)

시의 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40.89㎢, 인구 2만 9350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노산리이다. 본래 고성군 도남면(道南面)지역으로 1900년 용남군(龍南郡)에 편입되어 용호(龍湖) · 죽림(竹林) · 호리(壺里) · 노산(魯山) · 우동(牛洞) · 적덕(赤德) 등 7개 리를 관할하였다. 그러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광삼면(光三面)의 안정리 · 황리를 병합해 광삼과 도남의 이름을 따서 광도면이라 하여 통영군에 편입, 7개 리로 개편되었다. 북쪽에 망산(望山, 331m) · 면화산 · 벽방산, 서쪽에 천개산, 남쪽에 제석봉 등으로 둘러싸여 있고, 천개산에서 발원한 안정천과 도덕산에서 발원한 동해천이 동남쪽의 원문포로 흐른다. 앞 바다에는 딱섬 · 갓섬 등 8개의 섬이 흩어져 있다.

해안선의 굴곡이 심하고 구릉지가 많아 평야는 해안가에 분포하며 경지 면적은 총면적의 약 22%이다. 쌀 · 보리 등 식량 작물이 생산되나 부족하여 외부에서 들어오고 있다. 최근에는 비닐하우스에서 열대성 작물인 파인애플 · 멜론을 재배하여 농가 소득을 올리고 있다. 수산물로는 가자미 · 멸치 · 갈치 · 고등어가 어획되고 굴양식도 이루어진다.

교통은 고성∼거제 간을 연결하는 국도가 중남부를 횡단하고, 황리∼노산리 간에 지방도가 남북으로 뻗어 있다. 그 밖에 덕포리과 용포리에 군도도 건설되어 있다.

문화유적은 노산리에 지석묘군, 죽림리에 통영향교, 안정리에는 안정사가 있다. 우동리에는 김해김씨의 동족 마을이 있다.

노산(魯山) · 덕포(德浦) · 우동(牛洞) · 죽림(竹林) · 용호(龍湖) · 황(黃) · 안정(安井) 등 7개 리가 있다.

  1. 도산면(道山面)

시의 북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38.58㎢, 인구 3,193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법송리이다. 본래 고성군 지역으로 도선면(道善面)이라 하여 관일(貫一) · 덕치(德峙) · 지법(地法) · 송계(松溪) 등 9개 리를 관할하였다. 그러다가 1900년 용남군(龍南郡)에 편입되었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산내면(山內面)의 양지 · 수월 · 저산 · 오륜 등 4개 리를 병합해 산내면과 도선면의 이름을 따서 도산면이라 하여 통영군에 편입되었다. 고성만과 접한 지역으로 북쪽에 시루봉(373m), 중앙에 도덕산(320m), 남쪽에 봉화산(326m) · 매봉산(311m) · 장막산(261m) 등 산지로 둘러싸여 있다. 북쪽에 원산천이 고성만으로 흘러 바다로 유입되고, 도덕산에서 발원한 동해천이 동쪽으로 흘러 광도면을 지나 바다로 유입된다.

산지가 많아 해안가에 소규모의 평야가 분포한다. 주요 농산물로 쌀 · 보리 · 고구마 등이 생산된다. 비닐하우스에서 열대성 작물인 파인애플 · 감귤 · 바나나 등이 재배되어 농가 수입을 올리며 그 밖에 고추 · 유채 · 참깨 등의 작물도 생산된다. 수산물로는 가자미 · 멸치 · 갈치가 잡히고, 농업과 어업을 겸한 가구가 대부분이다.

교통은 마산∼거제 간을 연결하는 국도가 면을 북쪽에서 동쪽으로 지나고, 법송리에서 각 동리로 연결되는 군도가 뻗어 있다.

문화유적은 법송리 · 원산리 · 관덕리 · 수월리에 지석묘, 오륜리에 해안을 향해 전초적 역할을 하던 산성(山城)이 남아 있다. 도산리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왜가리 · 백로 번식지가 있다. 저산리에는 연안차씨(延安車氏)의 동족 마을이 있다.

법송(法松) · 원산(院山) · 도선(道善) · 관덕(貫德) · 오륜(五倫) · 저산(褚産) · 수월(水月) 등 7개 리가 있다.

  1. 사량면(蛇梁面)

시의 서부 해상에 위치한 면. 면적 26.98㎢, 인구 1,587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금평리이다. 본래 고성군 지역으로 사량면이라 하여 동변(東邊) · 서변(西邊) · 옥동(玉洞) · 내지(內池) · 돈지(敦池) 등 9개 리를 관할, 1900년 용남군에 편입되었다. 그러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연화 · 두미 · 노대 · 읍동 · 옥동 등 9개 리를 병합해 원량면(遠梁面)으로 개칭하여 통영군에 편입되었다. 이후, 1955년 금평 · 동지 · 읍덕 · 양지 등 4개 리가 병합되면서 사량면으로 다시 부르게 되었다. 위섬 · 아랫섬 · 수우도 등 11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윗섬은 중앙에 지리산(398m), 아랫섬에는 북쪽으로 망봉(349m) · 칠현산 등이 솟아 있다.

주산업은 수산업이다. 주요 수산물은 멸치 · 갈치 · 대구 등이 어획되고 홍합양식이 활발하다. 경사지에서 흑염소가 사육되며 반농반어농가가 대부분이다. 교통은 도로는 없으나 통영항 및 전라남도 여수와 정기선으로 연결된다.

문화유적은 금평리에 최영장군의 사당이 있다. 금평리의 옥동마을에는 김해고씨(金海高氏)의 동족 마을이 있다.

금평(琴平) · 돈지(敦池) · 읍덕(邑德) · 양지(良池) 둥 4개 리가 있다.

  1. 욕지면(欲知面)

시의 남부 해상에 위치한 면. 면적 23.94㎢, 인구 2,076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동항리이다. 본래 고성군 지역으로 욕지 · 두미 · 노대 · 연화 등 4개 리를 관할하였다. 그러다가 1900년 용남군에 편입되어 9개 리가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원산면과 사량면의 이름을 따서 원량면(遠梁面)이라 하여 통영군에 편입, 금평 · 돈지 · 읍덕 · 양지 · 연화 등 9개 리로 개편되었다. 1955년에는 원량면이 욕지면과 사량면으로 다시 분리, 4개 리로 되었다. 이후 1973년남해군 이동면갈도(葛島)가 편입되어 현재 5개 리를 관할하고 있다.

본도인 욕지도를 중심으로 연화도(蓮花島) · 노대열도(老大列島) · 두미도(頭尾島) · 좌사리도(佐沙里島) · 갈도(葛島) · 국도(國島) 등의 섬들이 넓게 분포되어 있다. 욕지도에는 중앙에 천황산(天皇山, 392m)이 솟아있고, 동쪽으로는 깊숙한 만입에 동항리 부두와 자부포 부두가 있다. 면의 동부 연화도는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섬으로 중앙에 연화봉(蓮花峰, 212m), 사정에 용굴이 있다. 그 밖에 두미도에 천황산(天皇山, 467m)이 있다. 산지가 많아 경지면적이 협소하다.

주요 농산물로는 파 · 마늘 · 깨 등이 생산되고 최근 감귤 재배가 활발하여 농가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수산업이 주산업으로 어획물로는 가자미 · 고등어 · 넙치 · 멸치 · 방어 · 가사리 · 해삼 등이 어획된다. 교통은 통영항과 정기여객선이 매일 운항되고 면내에 욕지도를 중심으로 각 섬이 도선으로 연결된다.

문화유적은 욕지도의 동촌패총, 상노대도의 패총 · 산등마을패총, 하노대도의 패총 · 갈도패총 · 국도패총, 연화도리의 패총 · 우도패총 등이 있다. 천연기념물로 동항리에 모밀잣밤나무숲이 있다.

동항(東港) · 서산(西山) · 연화(蓮花) · 노대(老大) · 두미(頭尾) 등 5개 리가 있다.

  1. 용남면(龍南面)

시의 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16.97㎢, 인구 1만 1597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동달리이다. 본래 거제군 지역으로 1603년(선조 35)고성현 춘원면에 편입되었다. 이후, 1900년 용남군에 편입, 동면(東面)이라 하여 지도(紙島) · 신화(新和) · 연기(蓮基) · 원평(院坪) · 삼화(三和) 등 15개 리를 관할하였다. 그러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용남면으로 개칭하여 통영군에 편입되었다. 고성반도의 일부와 유인도 4개, 무인도 13개 등 17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동쪽 장평리에 거제대교(巨濟大橋)가 있어 거제시 사등면과 이어져 있다. 면의 중앙에는 삼봉산(三峰山, 246m)이 솟아 있고, 해안선의 굴곡이 심하다. 북쪽으로 지도 · 수도(水島) · 어의도를 비롯한 많은 섬이 산재해 있다.

경지면적은 총면적에 비해 높은 편이나 밭이 절반 이상를 차지하고 평야는 동남부 해안가에 주로 분포한다. 주요 농산물은 쌀 · 보리 이외에 약간의 채소류가 생산된다. 비닐하우스에서 열대성 작물인 파인애플 · 바나나 등을 재배하여 농가소득을 올리고 있으며 특산물로는 유자가 유명하다. 수산물로는 멸치 · 가자미 · 대구 · 방어 등이 있고 양식업의 조건이 좋아 굴양식이 활발하다.

교통은 고성∼거제 간을 연결하는 국도가 면을 관통하고 용남해안일주도로인 지방도로가 있다.

문화유적은 원평리에 연화사, 장문리에 성지(城址), 삼화리의 성지에는 돌계단과 성벽이 약 150m 가량 남아 있다. 화삼리에는 1964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오광대(五廣大)놀이가 전승된다. 장평리에는 장흥고씨(長興高氏)의 동족마을이 있다.

동달(東達) · 화삼(花三) · 장문(章門) · 삼화(三和) · 원평(院坪) · 지도(紙島) · 장평(長坪) · 어의(於義) 등 8개 리가 있다.

  1. 한산면(閑山面)

시의 남동부 해상에 위치한 면, 면적 30.29㎢, 인구 2,223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하소리이다. 본래 거제군 지역으로 한산도의 이름을 따서 한산면이라 하고 1900년 용남군에 편입되어 여차 · 고포 · 창동 · 동좌 · 서좌 등 14개 리를 관할하였다. 그러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동면(東面)의 죽도를 병합해 통영군에 편입, 8개 리로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주도인 한산도를 비롯하여 유인도 19개, 무인도 8개 등 27개의 섬으로 되어 있다. 한산도에는 중앙에 망산(望山, 294m), 북쪽에 고동산(189m)이 솟아 있다. 해안선의 만입이 심해 어장과 양식에 유리한 지형이다. 그 밖에 용초도수동산(秀東山, 194m), 추암도에 추봉(秋峰, 242m), 비진도에 선유대(仙遊臺, 311m)등이 있다.

산지가 많은데다 경지면적이 협소하여 식량을 외부에 의존하고 있다. 채소류와 파 · 마늘 이 다량으로 생산되며 감귤의 생산이 많다. 주산업인 어업은 수역이 욕지어장과 연결되어 가자미 · 고등어 · 넙치 · 멸치 · 방어 · 가사리 · 해삼 등 어획물이 다양하고 양식업도 발달하여 김과 조개류 양식이 대규모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특히 진주 조개양식이 유명하다.

교통은 해상교통의 요지로 통영항 및 거제와 정기여객선이 운항되고 각 섬들간에 도선으로 수시로 연결된다.

문화유적은 두억리에 이충무공유적이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는데, 이 곳은 자연적인 방어지로 삼도수군통제영이 있었다. 제승당은 충무공이 기거하던 곳이다. 그의 영정을 봉안한 충무사(忠武祠)를 비롯하여 충무문(忠武門) · 행적비(行蹟碑)등과 한산만 앞 바다에 거북선을 본 따 세운 거북등대가 있다. 이 해역은 한려해상국립공원에 속하며 아름다운 기암괴석의 섬들과 잔잔한 바다, 따뜻한 기후가 만들어낸 관광명소이다. 비진리에는 비진해수욕장과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팔손이나무자생지가 유명하다. 또한 남단의 홍도는 괭이갈매기의 서식처로 갈매기섬이라고도 불린다.

하소(荷所) · 두억(頭億) · 염호(廉湖) · 창좌(創佐) · 용호(龍虎) · 비진(比珍) · 매죽(每竹) 등 7개 리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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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시(www.tongyeong.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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