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하현읍지』는 1832년 경상도 청하현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경상감영에 보고한 읍지이다. 1책 16장의 필사본이며, 국립대구박물관 도서이다. 채색 지도를 실었으며, 본문은 고을의 역사와 지리, 인물, 통계 및 조사 자료 등으로 구성하였다. 이 밖에 청하현에 대한 읍지로는 1871년의 『영남읍지』와 1878년의 『읍지』에 실린 것을 포함하여, 1899년에 보고한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 『청하현읍지』와 1899년 말 경상북도 관찰부에 보고한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 도서 『청하현읍지』 등이 전한다.
국립대구박물관에 있는 『청하현읍지(淸河縣邑誌)』는 1책 16장의 필사본이다. 표제와 권수제는 모두 ‘청하현읍지’이다. 경상도 청하현(淸河縣) 지금의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청하면 · 송라면]에서 편찬하여 경상감영(慶尙監營)에 보고한 읍지로, 고을의 역사와 지리, 인물, 시문 정보와 통계 및 조사 자료 등을 실었다. 채색 지도, 건치연혁부터 비판까지 전형적인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 유형이다.
환적 항목에는 1829년(순조 29)에 부임한 박종유(朴宗有)까지 기록하였다. 과거 항목에는 출신(出身) 신치형(申致亨)의 별무도시(別武都試) 입격과 창방(唱榜) 시기를 기재하였다. 그러나 『경상도읍지』[1832년] 수록본에는 과거 항목 아래 ‘무(無)’라고 표시하였다. 당시 경상감영에서는 각 고을에서 보고한 읍지를 수정, 보완하여 규장각(奎章閣)에 보고하였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경상도읍지』라는 서명으로 남아 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의 『영남읍지(嶺南邑誌)』[1871년], 국립고궁박물관의 『읍지(邑誌)』[1878년]에 실린 읍지도 수록 항목이 같다. 『읍지』[1878년] 수록본은 지도에 이어 읍지 구서(舊序), 읍지 후서(後序), 읍지 목록을 실었으며, 과거에는 진사 3인을 수록하였다. 1768년(영조 44) 5월에 홍옥보(洪沃輔)가 쓴 구서는, 경상감사 이은(李溵)이 고을 수령에게 고을의 지지(地誌)를 편찬하도록 지시하고 그 앞에 지도를 싣게 한 사실을 전해 주고 있다.
1899년(광무 3) 대한제국기 내부(內部)에 보고한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 『청하현읍지』도 읍지 구서와 읍지 후서, 읍지 목록을 싣고 있으며, 책 끝부분의 과거 항목에 진사 3인을 실었다.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에는 1899년 말 경상북도 관찰부에 보고한 『청하현읍지』가 전한다. 두 읍지 모두 표제를 ‘경상북도청하현읍지(慶尙北道淸河縣邑誌)’라 하였는데, 지방행정 제도의 개편을 반영하여 ‘경상북도청하군읍지(慶尙北道淸河郡邑誌)’로 표기하여야 하였다.
한편, 1786년(정조 10)에 보고한 읍지를 정서한 일본 덴리대학[天理大學] 이마니시문고[今西文庫]의 『용궁지(龍宮誌)』에 합철한 『청하현읍지』도 같은 유형이다. 이러한 사실은 1768년 이래, 청하현에서 『여지도서(輿地圖書)』를 대체한 규정에 따라 편찬한 옛 읍지를 활용하였음을 입증해 준다. 이순겸(李純謙)의 후서는 1871년 11월에 작성한 것이며, 당시 보고한 읍지는 『영남읍지』[1871년]에 실려 있다. 1871년 9월 의정부(議政府)에서 각 감영에 지시하여 고을마다 읍지와 지도, 사례대개(事例大槩)와 영 · 진 · 역지를 편찬하여 보고하게 하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