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시는 경상남도 동남부에 위치한 시이다. 동쪽은 경상남도 양산시와 부산광역시, 남쪽은 남해, 서쪽과 북쪽은 경상남도의 창원시·밀양시와 접한다. 수리적 위치는 동경 128°44′∼129°01′, 북위 34°52′∼35°23′이다. 기원전 2세기경 고대국가의 틀이 잡히기 시작하여 삼한시대에 구야국으로 역사에 등장했고, 이후 가락국으로 발전하여 육가야의 맹주가 되었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463.53㎦이고, 인구는 53만 1676명이다. 행정구역은 1개 읍, 6개 면, 12개 행정동이며, 김해시청은 부원동에 있다.
김해시의 동쪽은 경상남도 양산시와 부산광역시, 남쪽은 남해, 서쪽과 북쪽은 경상남도의 창원시 · 밀양시와 접한다. 수리적 위치는 동경 128°44′∼129°01′, 북위 34°52′∼35°23′이다. 청동기시대에 농경이 시작되면서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터전을 잡고 정착하였다. 기원전 2세기경 고대국가의 틀이 잡히기 시작하여 삼한시대에는 구야국(狗耶國)이라는 이름으로 역사에 등장했고, 이후 가락국(駕洛國)으로 발전해 육가야(六加耶)의 맹주국이 되었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463.53㎢이고, 인구는 55만 6403명이다. 행정구역은 1개 읍[진영읍], 6개 면[주촌면 · 진례면 · 한림면 · 생림면 · 상동면 · 대동면], 12개 행정동[동상동 · 회현동 · 부원동 · 내외동 · 북부동 · 칠산서부동 · 활천동 · 삼안동 · 불암동 · 장유1동 · 장유2동 · 장유3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김해시청은 부원동에 있다.
시의 북부를 관류하다 북동부에서 방향을 바꾸어 남쪽으로 흐르는 낙동강(洛東江)이 경상남도의 밀양시 · 양산시 및 부산광역시와 자연적 경계를 형성한다. 지세를 보면 시의 북부는 낙동강의 유수에 의해 침식되어 단절되었다가 다시 돌출된 태백산맥의 지맥이 지나가 평지가 적다. 무척산(無隻山: 700m), 석룡산(石龍山: 495m), 금동산(琴洞山: 463m), 신어산(神魚山: 630m) 등의 산지가 분포하나 차츰 고도가 낮아져 낙동강 하구 쪽의 평야 지대와 맞닿아 있다.
대동 수문은 밀물 때 바닷물이 흘러드는 것을 막는 구실을 하며 관개에도 이용된다. 김해평야는 낙동강 상 · 중류에서 운반되어 온 토사가 퇴적되어 형성된 우리나라 최대의 삼각주 모양의 충적평야이다.
서쪽에는 북에서 남서쪽으로 해안산맥이 연속되어 비음산(飛陰山: 510m), 용지봉(龍池峰: 728m), 대종산(大宗山: 655m), 불모산(佛母山: 802m), 팔판산(八板山: 801m), 화산(花山: 798m), 굴암산(窟巖山: 621m), 보배산[479m] 등이 경상남도 창원시와의 동부 경계를 이루며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지질구조는 중생대 경상계 지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남동부는 낙동강 삼각주의 거대한 평야지대가 시의 시가지 및 농경지를 형성하고 있다.
한편, 동부는 북쪽에서 낙동강이 유로를 바꾸어 부산광역시와 경계를 이루며 남류하다가, 중앙의 삼각주 평야부를 배후지로 한 뒤 하구 부근의 명지도에 이른다. 유로가 두 갈래로 나뉜 동부의 낙동강 본류와는 달리 폭이 현저히 좁아진 지류로 남해에 도달한다.
낙동강에 유입되는 주요 소하천으로는 주촌면 덕암리 쪽의 황새봉[393m]에서 발원해 주촌면과 장유동을 관류하는 조구천(潮溝川), 진례면 산본리의 남쪽 용지봉에서 발원해 진례면과 생림면을 북류하며 관개용수로 이용되는 화포천(花浦川)이 있다. 아울러 시 동부의 대조천 · 예안천, 시 중심부의 해반천, 시 서쪽의 진례천 · 주촌천 · 죽동천, 서남쪽의 내삼천 · 죽동천, 그리고 시 남쪽의 율하천 · 사촌천 등이 있다.
대체로 해양성의 온난 다습한 기후가 나타난다. 1991~2020년 평년값 기준 연평균기온은 15.1℃이고, 1월 평균기온은 2.1℃, 8월 평균기온은 27.3℃이다. 연강수량은 1,375.8㎜이다. 서리는 10월 말부터 내려 이듬해 3월 초순에 끝난다.
가락국(駕洛國)의 도읍지였던 김해는 청동기시대에 농경이 시작되면서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터전을 잡고 정착하였다. 부원동 등의 패총과 고인돌[지석묘] · 고분군 등이 각 대학 박물관과 관계 연구기관에 의해 발굴되었으며, 지금도 도처에 산재해 있다. 기원전 2세기경 고대국가의 틀이 잡히기 시작하여 삼한시대에는 구야국이라는 이름으로 역사에 등장하였다.
신라 유리왕(儒理王: 주1 19년인 서기 42년에 수로왕(首露王: ?∼199)이 금관가야(金官加耶)를 건국하였다. 이후 금관가야는 10대 491년 동안 존속하며 주2의 중심 세력으로 자리매김하였다. 532년(법흥왕 19)에 마지막 왕인 구형왕(仇衡王)이 신라에 투항해 김해 지역은 금관군(金官郡)이 되었다. 680년(문무왕 20) 주3이 설치되었고, 757년(경덕왕 16)에는 김해소경(金海小京)으로 개칭되었다.
고려 전기인 940년(태조 23)에 김해소경은 김해부가 되었다가 임해현(臨海縣)으로 강등되었으나 곧 군으로 승격되었다. 971년(광종 22)에 김주도호부(金州都護府)로 승격되었고, 1000년(목종 3)에 안동대도호부(安東大都護府)로 개칭되었다. 1012년(현종 3)에 김주(金州)로 개칭해 방어사를 두었으며, 1018년 의안군(義安郡)[지금의 경상남도 창원시], 함안군(咸安郡), 칠원현(漆原)[지금의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 합포현(合浦縣)[지금의 창원시 마산합포구)], 웅신현(熊神縣)[지금의 창원시 웅천]을 속군[현]으로 삼았다.
1078년(문종 32)에 동남해선병도부서사본영(東南海船兵都部署使本營)이 설치되며 동남해 방비의 기지가 되었다. 이 본영은 이후 존폐를 거듭하다 1368년(우왕 4)에 폐지되었다. 1271년(원종 12) 지금의 경상남도 밀양 지역에서 일어난 반란을 방어사 김훤(金晅: 1234∼1305)이 평정한 공으로 김녕도호부(金寧都護府)로 승격하였으나, 1276년(충렬왕 2) 안렴사(按廉使) 유호(劉顥)가 살해되는 사건으로 인하여 현으로 읍격(邑格)이 강등되었다. 이후 1308년(충렬왕 34)에 다시 김주목(金州牧)으로 승격되고, 1310년(충선왕 2)에 김해부가 되었다.
김해부는 조선 전기인 1413년(태종 13) 김해도호부(金海都護府)로 승격하였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따르면 세종(世宗: 1397~1450) 대에 김해부에는 1,290호, 1만 6642명이 살았으며, 웅신현에는 63호, 641명이 살고 있었다. 1467년(세조 13) 지방 군제가 개편되며 경상우도병마절도사(慶尙右道兵馬節度使) 관하의 김해진관(金海鎭管)이 설치되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발발 직후인 4월 19일, 김해성이 왜병에게 포위되자 부사가 성을 버리고 탈출하였다. 이에 고을 선비인 송빈(宋賓: 1542∼1592)과 이대형(李大亨: 1543∼1592), 김득기(金得器: 1549∼1592), 유식(柳湜: 1552∼1592) 등이 의병을 일으켜 대적하다 순절하였다. 『김해부읍지(金海府邑誌)』에 따르면 1759년(영조 35) 김해도호부에는 8,511호에 3만 3015명이 살았다.
1895년(고종 32) 23부제로 지방 관제가 개편되면서 김해군이 되었으며, 1906년(광무 10) 대산면(大山面)을 창원군으로 이관하고 양산군 대저면(大渚面)을 편입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23개 면이 14개 면으로 정리되었고, 1918년 좌부면(左部面)과 우부면을 합치고 김해면으로 하였다. 1919년 3·1운동 때 장유면 무계리를 중심으로 격렬하게 시위가 전개되었다. 1931년 11월 1일 김해면이 읍으로 승격되고, 1933년 낙동강대교가 준공되어 지금의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동과 연결되었다. 1942년 10월 1일에는 진영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73년 남해고속도로가 개통된 해에 대저면이 읍으로 승격되었고, 1976년 김해국제공항이 개설되었다. 1978년 2월 15일 서낙동강의 강동 지역이었던 대저읍, 명지면과 가락면 일부가 부산직할시 북구로 이관되었고, 1989년 1월 1일 가락면, 녹산면이 부산직할시에 이관되었다. 1976년 4월 20일 중부출장소 · 동부출장소 · 서부출장소를 설치했고, 1979년 5월 1일 다시 북부출장소를 설치해 4개의 출장소를 운영하였다.
1981년 7월 1일 김해읍이 시로 승격되어 김해군[1개 읍, 9개 면]과 김해시로 분할되었다. 이후 1995년 5월 10일 도농통합시 설치에 따라 김해군과 김해시가 통합되어 지금의 김해시가 되었다. 1998년 9월 행정동인 칠산동과 서부동을 합쳐 칠산서부동으로 하였다. 2013년 7월 1일 장유면이 행정동인 장유1동, 장유2동, 장유3동으로 분동되었다.
2024년 12월 기준 김해시에는 102건의 국가유산이 분포한다. 구체적으로는 20건의 국가지정문화유산[보물 9건, 사적 9건, 천연기념물 2건 등]과 82건의 시도지정문화유산[유형문화유산 41건, 무형유산 2건, 기념물 14건, 문화유산자료 25건 등]이 있다.
청동기시대 유적으로는 김해 서상동 지석묘(金海 西上洞 支石墓)[경상남도 기념물]가 있고, 청동기 후기 혹은 초기 철기시대에 축조된 김해 내동지석묘(金海 內洞支石墓)[경상남도 기념물]와 명법동 지석묘군, 용성 지석묘, 장유동의 김해 무계리지석묘(金海 茂溪里支石墓)[경상남도 기념물]와 유하동 지석묘, 내연 지석묘군, 연지 지석묘, 용곡 고인돌, 주촌면의 양동리 지석묘와 망덕리 지석묘, 지라 지석묘 등이 있다.
상동면의 우계리 주거지는 가야시대 주거지로 추정된다. 수가동 패총에서는 신석기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석기와 골각기, 방추차, 흑요석 등이 출토되었고, 한림면 용덕리 패총에서는 신석기 말기의 토기가 발견되었다. 봉황동의 김해 봉황동 유적(金海 鳳凰洞 遺蹟)[사적], 부원동 패총, 유하동의 김해 유하 패총(金海 柳下貝塚)[경상남도 기념물], 대동면 괴정리 패총 등은 삼한시대의 유적이다. 봉황동의 봉황대(鳳凰臺)는 1983년 12월 20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가 2001년 2월 5일 김해패총(金海貝塚)과 묶여 ‘ 김해 봉황동 유적’이란 명칭으로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가락국의 궁궐터라고 전한다.
서상동의 김해 수로왕릉(金海 首露王陵)[사적]과 구산동의 김해 수로왕비릉(金海 首露王妃陵)[사적]은 각각 가락국의 시조 수로왕(首露王: ?~199)과 허황옥(許黃玉: 32∼189)의 능으로 전해진다. 또 전김해왕릉(傳金海王陵)은 가락국 제2대 거등왕(居登王: ?~253)의 무덤이며, 능동고분군은 제4대 거질미왕(居叱彌王: ?~346)의 무덤으로 전한다. 김해 구산동 고분군(金海 龜山洞 古墳群)[사적]은 약 6세기경에 조성된 것이다.
한편, 김해 대성동 고분군(金海 大成洞 古墳群)[사적]에서는 토기류와 공구 · 무기 · 마구 등의 철기류, 벽옥제옥장(璧玉製玉丈) 등의 옥류가 출토되었다. 4∼6세기에 걸쳐 조성된 김해칠산동고분군(金海七山洞古墳群)[경상남도 기념물]에서는 토광묘 · 목관묘 · 횡구식 석실분 · 옹관묘 등의 다양한 묘제가 조사되었다. 대동면의 김해 예안리 고분군(金海 禮安里 古墳群)[사적]에서는 총 125체의 인골이 출토되었다.
삼문동의 김해 능동석인상 및 상석(金海 陵洞石人像 및 床石)[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은 가락국 왕릉이 있었다고 전해지는 능동마을 뒷산에 위치한다. 이 고분 앞에는 문인 석상과 상석이 설치되어 있는데, 이는 능묘를 호위하는 석물들로 당시의 조각 양식과 능묘 제도의 변천을 보여 주는 유물로 평가된다.
불교 유산으로는 상동면 감로리의 감로사 터에 고려시대의 석불이 있고, 대청동의 김해 장유화상 사리탑(金海 長遊和尙 舍利塔), 삼방동의 김해은하사대웅전(金海銀河寺大雄殿), 김해 구산동 마애여래좌상(金海 龜山洞 磨崖如來坐像), 김해 봉화산 마애여래좌상(金海 烽火山 磨崖如來坐像)이 있다. 구산동 요지에서는 4기의 가마터가 발견되었다. 이 중에 김해 장유화상 사리탑은 1983년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고, 김해은하사대웅전은 1983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김해 구산동 마애여래좌상과 김해 봉화산 마애여래좌상은 1979년에 각각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고려시대의 유적으로는 자연 암벽에 폭 3㎝ 정도의 굵은 선으로 음각된 김해 초선대 마애여래좌상(金海 招仙臺 磨崖如來坐像)[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이 안동에 있으며, 한림면의 김해 안곡리 삼층석탑(金海 安谷里三層石塔)[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과 감로사 터, 백련암 터, 명월사 터, 중봉사 터, 임강사 터, 무척사 터가 있다.
유교 유산으로는 동상동에 김해 사충단(金海 四忠壇)[경상남도 기념물]이 있고, 대성동에는 김해향교(金海鄕校)[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가 있다. 김해향교는 1408년(태종 8)에 창건해 1770년(영조 46) 현 위치로 이건한 것으로 대성전 · 동무 · 서무 · 내삼문 · 명륜당 · 동재 · 서재 · 풍화루 등이 있다. 대동면 주동리의 김해 산해정(金海 山海亭)[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은 남명(南冥) 조식(曺植: 1501~1572)이 제자들을 가르친 정자이다. 이 외에도 진례면의 청천리에 낙오정(樂吾亭), 담안리에 첨모재(瞻慕齋)가 있다.
홍동에 있는 김해 선조어서각(金海 宜祖御書閣)[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은 임진왜란 당시 선조(宣祖: 1552~1608)가 백성들에게 한글로 내린 선조국문유서(宣祖國文諭書)[보물]를 보관하기 위하여 건립한 곳이다. 선조국문유서는 현재 김해한글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다. 또 숭선전(崇善殿)은 수로왕과 허황옥의 신위를 봉안하고 제사를 드리는 전각으로 1878년(고종 15)에 건립되었다. 이곳에서 시행되는 숭선전제례(崇善殿祭禮)[경상남도 무형유산]는 춘추향 2회로 춘향은 음력 3월 15일, 추향은 음력 9월 15일에 실시된다.
어방동에 있는 김해 분산성(金海 盆山城)[사적]은 삼국시대의 산성으로 고려시대에 수축하고 임진왜란 때 개축하였으며, 산성의 둘레는 약 900m, 면적은 5만 721㎡이다. 천곡성은 가락국 때 축조한 성으로 전하며, 김해부사 박위(朴葳: ?∼1398)가 수축한 김해읍성은 임진왜란 때의 격전지로 유명하다. 주촌면에 있는 김해 양동산성(金海 良洞山城)[경상남도 기념물]은 남북의 두 성문에 초석이 남아 있으며, 폭은 2.5m, 둘레는 약 800m이다. 각성산성 주위에서는 삼국시대의 적갈색 연질 토기 편이 확인되었다.
또한 수로왕이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전하는 구산동의 김해 구지봉(金海 龜旨峰)[사적]이 있으며, 동척 철광지는 고려시대의 철광산이다. 천연기념물로는 한림면의 김해 신천리 이팝나무(金海 新泉里 이팝나무)와 주촌면의 김해 천곡리 이팝나무(金海 泉谷里 이팝나무)가 있다.
조선시대 교육기관으로는 대성동에 1408년에 창건한 김해향교가 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00년(선조 33)에 부사 정기남(鄭奇男: ?∼1619)이 중건하였다. 1683년(숙종 9)에 산사태로 무너진 것을 1688년에 김후수(金後修)와 부사 이하정(李夏禎)이 중건해 지금의 자리인 송악산으로 옮겼다. 그 뒤에도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쳐 지금에 이른다.
공립 교육시설로는 1800년(정조 24)에 함허정(涵虛亭) 옛터에 설치한 양사재(養士齋)가 있는데, 1821년(순조 21)에 대성동으로 이건한 후 취정재(聚精齋)라 이름을 바꾸고 유생들의 교육을 담당하였다.
사설 교육시설로는 16세기 중반에 남명(南冥) 조식(曹植: 1501∼1572)이 김해 산해정(金海 山海亭)[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을 건립해 후학을 가르친 것이 처음인데, 뒤에 신산서원(新山書院)으로 편액을 받았다. 이 외에도 1642년(인조 20)에 설립한 구산동의 구천서원(龜川書院), 1703년(숙종 29)에 건립한 진례면 신안리의 송담서원(松潭書院), 1708년 삼방동에 건립한 예암서원(禮巖書院), 1811년(순조 11)에 건립한 물봉서원(勿峰書院), 1832년(순조 32)에 건립한 진영읍 신룡리의 미양서원(薇陽書院) 등이 있었다. 현재는 단(壇)이나 유허비만 남아 있는 곳도 있다.
신교육기관으로는 「보통학교령」에 따라 1908년(융희 2) 지금의 동광초등학교가 설립되었고, 점차 각 면에서 학교가 설립되기 시작하였다. 1909년에는 현재의 김해농업학교가 설립되었다. 1982년 어방동에 인제대학교 김해캠퍼스가 설치되었는데, 1989년 종합대학교로 개편하였고 현재는 가야대학교 김해캠퍼스와 함께 지역 고등교육 산실로 자리 잡고 있다.
2025년 3월 1일 기준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60개, 중학교 33개, 고등학교 24개가 있으며, 3개 대학교인 인제대학교 · 가야대학교 · 부산장신대학교와 1개의 전문대학인 김해대학교가 있다.
문화시설의 경우, 박물관으로 국립김해박물관, 대성동고분박물관, 김해분청도자박물관, 김해한글박물관, 김해민속박물관, 진영역철도박물관, 화포천습지생태박물관, 인제대학교 김해캠퍼스박물관, 김해한림박물관 등이 있다. 도서관으로는 시립 김해도서관, 장유도서관, 그리고 칠암도서관 등 6개소가 있으며,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 김해문화의전당, 소림기념관 등이 있다.
1964년 외동에 개원한 김해문화원은, 가락문화제 등의 행사를 주관하며 향토문화의 계승 · 발전에 공헌하고 있다. 문화행사로는 가락문화제와 함께 10월경 진영읍에서 열리는 진영단감제가 유명하다.
김해 지역의 전통 민속놀이로는 가락오광대와 소싸움 놀이가 유명하다. 그 외에도 전국적인 분포를 보이는 널뛰기 · 윷놀이 · 연날리기 · 지신밟기 · 씨름 등의 민속놀이가 있다.
가락오광대는 1937년 일제의 탄압으로 중단된 탈놀음으로, 상원 날 밤에 연희되었다. 내용은 여섯 과장으로 이루어지는데, 오방신장무과장과 상좌춤과장, 노장중과장, 양반과장, 문둥이과장, 할미 · 영감과장이며, 마지막에 사자무가 덧붙는다. 영노과장이 따로 없고 할미과장에 나와서 영감[양반]을 욕하고 조롱하는 것은 가락오광대만의 특성이다.
소싸움놀이는 소를 먹이는 아이들이 즐겨한 놀이로 추석 무렵 쇠전[소시장] 근처에서 본격적으로 열렸다. 상머슴이 소의 고삐를 잡고 소싸움터로 끌고 가서 굴레와 코뚜레를 벗기면 소끼리 뿔을 마주치고 싸움을 한다. 밀리거나 달아나는 소가 지며, 이긴 소의 목과 뿔에 비단과 종이꽃으로 장식을 하고 머슴이 타고 풍물을 울리며 돌아오면 주인집에서 술을 한턱낸다. 원래 소싸움은 여름 동안 어느 집 머슴이 소를 잘 먹여서 힘이 세어졌는지 치하하려고 했던 놀이이다.
마을의 태평과 풍년을 비는 줄다리기는 상원날[정월 대보름]에 한다. 먼저 마을 사람들끼리 짚 · 돈 · 음식 등을 모으고, 서부[수줄]와 동부[암줄]로 나누어 암줄의 고를 수줄의 고에 넣고 비녀목에 걸어 대개 3일쯤 당겨 승부를 겨룬다. ‘메구’라고 하는 농악놀이는 상원 날에 즐기는데, 집 안에서 치는 것을 ‘집돌금’, 샘에서 치는 것을 ‘샘굿’이라 하며, 정월 초에 집집마다 다니면서 가내 태평을 빌어 준다. 이 밖에도 아이들의 놀이인 풀쌈과 삘기따먹기 등이 있다.
김해 지역에서는 대부분의 마을에서 동제를 지냈다. 흥동에서는 마을 뒤편 임호산 중턱의 산신당과 마을 중간에 있는 당산에서 연 1회, 정월 14일 자정을 전후해 동제를 지낸다. 동리에서 가장 연로한 사람을 제주로 삼고 도수 1명, 제관 2명을 선정해 제당(祭堂)에서 산신제를 지내고 당산에서 당산제를 지낸 다음 거리 잡신을 위해 마을 동 · 남 · 서 세거리 입구에 제물을 진설해 제를 마친다. 다른 마을에서도 대체로 이와 비슷한 동제를 지냈다.
김해 지역은 수로왕이 가락국을 건국했던 곳인 만큼 수로왕과 관계된 설화가 많이 전하며, 지명 유래 설화도 풍부하다.
진영읍에는 신라 때부터 전하는 당나라 황후와 자암산(紫巖山)에 얽힌 설화가 있다. 미모의 당나라 황후가 웬일인지 우울해하고 쇠약해지는데 백약이 무효였다. 어느 날 황제가 가위에 눌린 황후를 깨워 물으니, 밤마다 꿈속에서 어떤 청년이 침실을 침범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황제가 꿈에 신승(神僧)이 황후를 괴롭히는 청년을 바위틈에 가두는 것을 보고 꿈에서 본 산과 바위를 찾던 끝에 신라 땅 김해 자암산에서 발견했는데, 그 뒤부터 황후가 회춘하게 되었다고 한다. 자암산 중턱에는 지금도 석불이 있다.
진례면의 벼락등 외톨바위는, 선녀들이 자매 정하기 공기놀이를 하다가 한 선녀가 옥황상제가 부른다는 전갈에 마음이 급하여 떨어뜨린 공깃돌이 바위로 변한 것이라고 전해진다.
이 밖에도 진영읍 본산리 금봉의 「핏골」, 진영리 중부의 「세 그루의 회나무」, 주촌면 천곡리 용덕의 「아래가마소」 · 「떳다리」, 내삼리의 「김자점의 집터」, 대동면 주동리 원동의 「조차산(曺次山)에 관한 설화」, 삼문동 능동의 「중봉사(中峰寺)와 장군수」라는 절의 흥망 이야기, 생림면 무척산의 「천지전설(天池傳說)」 등이 전해 내려온다.
지역에서 전승되는 민요로는 노동요와 비기능요인 타령요류가 많다. 노동요는 논농사가 중심이 되어 농업노동요가 주류를 이루나, 대도시 근교라서 일찍부터 농기계의 현대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대도시와의 왕래가 잦아 비기능요의 비중도 크다.
농업노동요로는 「모내기노래」 · 「논매기노래」 · 「보리타작노래[打麥謠]」를 들 수 있는데, 그중 「모내기노래」를 「등지노래」라는 특별한 명칭으로 부른다. 「등지노래」의 사설은 보통 전승되는 「모내기노래」의 사설과 비슷하나, 한림면 · 주촌면에서는 ‘허이’나 ‘헤이’라는 감탄 어구가 삽입되는 것이 특이하다. 한림면의 「등지노래」는 다음과 같다. “[앞소리] 밀양에 삼랑[三浪津] 왈자처녀 / 허 / 이 / 전옥(典獄)간에 갇혔다에[뒷소리] 사정사정 옥사정[獄鎖匠]아 / 허 / 이 옥문쪼끔 열어주소.”
「논매기노래」는 후렴이 경상남도의 대표적인 ‘∼상사듸야’ 형을 사용하고 앞부분만 ‘이어열열’이라고 해 2음보 후렴 중 가장 안정된 형태를 취하고 있다. 「보리타작노래」는 경상남도 특유의 것으로 단조로우면서도 힘차고 규칙적이다. 보통은 후렴이 ‘옹헤야’ · ‘에와(화)’ · ‘에오’ · ‘요오’ 등으로 단순하고 간단하나, 이 고장의 것은 상당히 길고 복잡하다.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개구리 보리는 살살간다 / [후렴]오헤야 헤야 헤야헤야 여기처라 헤야헤야 / 건너산에 비 묻어온다. [후렴].”
이 외에도 부녀 노동요로 「베틀가」 · 「시집살이노래」 등이 전한다. 비기능요인 타령요류도 다양하게 전승되고 있다. 「각설이타령」 · 「창부타령」 등이 널리 불리나 다른 지방의 것과 비슷하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동물을 소재로 한 타령과 상사 · 연정을 노래한 타령들이다. 「닭타령」 · 「소타령」 · 「이타령」 등은 다른 지방에서는 대체로 동요의 소재가 되는 것들을 타령으로 부른 것이며, 「처녀타령」 · 「과부타령」 · 「며느리타령」 등은 여자들의 연정과 고난을 노래한 것이다.
「폐가타령」은 일상사의 작은 잘못이 집안을 망친다는 내용의 노래로 사설이 재미있다.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자부다가 첩을잃고 / 첩 찾다가 본댁잃고 / 개치다가 짝지잃고 / 똥누다가 바지잃고.”
이 밖에도 「줌치노래」 · 「아이 어르는 노래」 등의 동요와 「성주풀이」 등의 의식요가 있다.
김해시는 부산광역시와 울산광역시, 경상남도 창원시의 거대 국가산업단지와 인접한 동남광역경제권의 중심에 위치하여, 국가산업단지에 있는 거대 기업들과 협력 관계에 있는 중소 기업체가 밀집한 공업도시이다. 지역 경제를 지탱하는 3,000여 개의 중소기업체가 지역 경제발전의 주축이 되고 있으며, 저렴한 물류비 등 우수한 입지 여건에 힘입어 매년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동남광역경제권의 기계 테크노벨트 중심축 역할을 하고 있다.
1990년대를 기점으로 섬유 · 신발 등 경공업이 이끌던 제조업의 주력 업종이 기계 금속 · 자동차 · 선박으로 전환되었다. 지역 제조업을 이끄는 기계산업의 첨단화와 함께 의 · 생명산업의 육성이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과제로 남아 있다. 또한 21세기 다품종 생산 시대에 유리한 입지 조건으로 인하여 선진 농업지역으로 도약하고 있다.
시가지 면적은 142.05㎢이며, 이 중 대지 면적은 27.2㎢로서 시가지 면적 중 주4에 해당하는 대지 면적은 22.9%이다. 이를 세분하면 주거지역 12.76㎢, 상업지역 1.42㎢, 공업지역 3.6㎢이며 나머지는 도로 및 녹지지역에 해당한다.
1995년 도농통합시로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광범위한 배후지 촌락 지역이 편입되면서 넓은 농경지 면적이 시역에 포함되었다. 총 경지면적 110.2㎢ 중 논이 67.5㎢, 밭이 17.2㎢로 각각의 점유비는 논이 78%, 밭이 21%이다. 논이 밭에 비해 약 4배 이상 많으며, 낙동강 삼각주 평야지대가 주요 곡창지대를 이룬다. 관내의 논농사는 주로 대동면 · 장유동 · 주촌면 · 생림면 등지에서 집중적으로 이루어지며, 난대성 기후의 특성상 벼농사 외에도 채소 등을 재배하는 계절별 이모작 영농이 이루어진다.
농가인구는 8,319가구, 1만 8292명으로 농가인구율은 4.8%이다. 주요 농산물로는 주곡인 쌀 외에 보리 · 콩 · 고구마 · 채소 등이 주로 재배된다. 특히 우리나라 제2의 대도시권인 부산광역시의 배후 근교 도시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어, 농가인구의 20% 정도가 양배추 · 상추 · 배추 · 무 · 오이 · 가지 및 참외 · 딸기 등을 집약적으로 재배하는 근교농업이 이루어진다. 또한 겨울철 온상 재배를 이용한 과수 및 채소 재배와 화훼 농업도 활발하게 이루어져, 영남지방 제일의 원예농업과 근교농업 지역이라는 명성을 얻고 있다.
대도시의 배후지적 성격을 이용해 전문 축산 영농도 활발히 이루어져 젖소 · 돼지 · 닭 등을 대규모로 사육한다. 토양과 기후가 좋아 맛이 좋은 진영단감은 전국적으로 유명하며, 임산물로는 양송이 재배 및 양봉이 일부 지역에서 이루어진다. 수산업은 담수어 양식과 바다에서의 어업이 이루어지다가 최근 하천 오염과 도시화의 진전으로 위축되어 미미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
광업의 경우 8개 업소에 94명이 고용되어 있다. 사회 및 개인 서비스업과 도 · 소매업 및 음식 · 숙박업이 비교적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이는 대도시의 근교 도시로서 지역 내 주민은 물론 외부에서 유입되는 유동 인구가 많기 때문이다. 서비스업의 경우 인접한 부산광역시 및 경상남도 창원시의 교외 지역이라는 특성으로 인해 대규모 아웃렛 매장이나 창고형 매장의 입지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시장은 대형마트 3개, 전문점 3개, 쇼핑센터 1개, 등록 시장 4곳 등이 있다.
김해시는 김해국제공항과 인근 부산항을 통해 육상뿐 아니라 항공 · 해상 교통까지 두루 갖춘 교통 요충지이다. 도로 교통의 경우 남해고속도로 · 남해고속도로제2지선 · 중앙고속도로지선 · 부산외곽순환고속도로 등을 통해 전국과 연결되어 최고의 교통 요건을 갖추고 있다. 특히 부산-광주 간 남해고속도로가 시를 동서로 지나고, 부산-마산 간 국도와 다수의 지방도가 접근성을 높이고 있다. 시의 북부에는 경전선 철도가 경유하며, 2011년 9월에는 가야대(삼계)역에서 부산 사상역(서부터미널)을 잇는 부산김해경전철이 개통되었다.
낙동강 하류의 저평한 평야에 자리 잡은 김해 지역은 물의 고장이자 역사적으로 고대의 변한과 가락국의 영역이었다. 이로 인해 유형 · 무형의 각종 국가유산이 풍부하게 분포하고 있는 역사적인 고장이다. 특히 낙동강 변에 위치하여 철새 도래지와 낚시터 등이 산재해 공휴일에는 많은 탐조객과 유람객이 찾아든다.
시의 중앙에 솟아 있는 기암괴석의 신어산은 ‘소금강(小金剛)’이라 불릴 만큼 아름다운 절경을 자랑하며, 정상에서 바라보는 낙동강 변과 삼각주 평야는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한다. 신어산과 양산 토곡산(土谷山: 855m) 사이 깊은 협곡을 따라 흐르는 낙동강은 조선시대에는 황산강(黃山江)으로 불렸으며, 하얀 모래사장과 과수원이 줄지어 있어 대청동의 장유계곡과 함께 ‘한국의 다뉴브강’이라 불린다.
서낙동강 일대는 도요새 · 백조 · 청둥오리 · 가마우지 등 100여 종의 철새가 찾아드는 세계적인 철새 도래지로 유명하다. 부산광역시의 배후 전원 지역으로 편리한 교통과 함께 천혜의 관광자원을 보유하고 있어 관광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가야 문화의 예술적 가치를 홍보하는 가야문화축제는 가야 유적지 일원에서 개최된다. 수로왕의 창국(創國) 정신을 기리고 조상이 남긴 문화유산의 얼을 되새기며 지역민의 화합과 단결을 위한 행사로서 민속 행사, 축제 행사, 부대 행사로 이루어진다. 매년 10월에 개최되는 김해예술제는 지역 예술인의 창작 의욕을 높이고 양질의 문화예술 작품을 시민들에게 선보이는 김해시 유일의 순수예술 축제이다. 이 외에도 김해분청도자기축제 등이 열린다.
1998년에 개관한 국립김해박물관은 구지봉 기슭에 세워져 있다. 고대 변한과 가야의 문화유산을 집대성하여 풍부한 문화유산을 전시하고 있다. 2023년에는 가야 고분 문화의 가치가 세계적으로 인정받아, 김해 대성동 고분군을 포함한 가야고분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2006년 개관한 봉황동유적패총전시관은 회현리 패총으로 유명한 김해 봉황동 유적의 패총 발굴면을 실물 그대로 전시하고 있다.
내동에 자리 잡은 김해문화의전당은 2005년 개관하였다. 최첨단 무대 시설을 갖춘 공연장과 전시관, 영상미디어센터, 빙상장이 운영되고 있어 다양한 문화 · 레저 체험을 즐길 수 있는 복합문화 예술 공간이다. 이 외에도 김해가야테마파크, 가야랜드, 김해가야딸기테마파크 등의 관광 시설이 있다. 내동에 위치한 김해시민스포츠센터는 약 1만 평에 이르는 종합 스포츠 시설로, 다양한 스포츠를 관람하고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또 구산동에 김해종합운동장이 있다.
시의 서북부에 있는 읍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39.72㎢이고, 인구는 5만 3793명이다. 읍 소재지는 여래리(餘萊里)이다. 여래리 · 진영리(進永里) · 본산리(本山里) · 하계리(荷溪里) · 우동리(牛洞里) · 방동리(芳洞里) · 사산리(舍山里) · 좌곤리(佐昆里) · 신룡리(新龍里) · 설창리(雪倉里) · 내룡리(內龍里) · 죽곡리(竹谷里) · 의전리(蟻田里) 등 13개 법정리가 있다.
본래 김해군 하계면(下界面)으로 여래리 · 우동리 등 5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중부면의 신룡리(新龍里) · 내룡리(內龍里) · 설창리(雪倉里) 등 6개 리와 상북면의 일부를 병합해 하계면이 되었다. 1928년에 진영면으로 개칭되었다가 1942년에 읍으로 승격되었다. 남부에는 동서로 뻗은 금병산(金屛山: 272m)을 비롯한 소규모 산지들이 있으며, 북부에는 읍의 북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낙동강과 그 지류들이 이룬 진영평야가 동-서 방향으로 펼쳐져 있다.
주산업은 농업으로 평야지대를 중심으로 쌀 · 보리 · 채소 · 감자 등이 생산되며 한우와 닭의 사육도 활발하다. 특히 최근에는 부산광역시의 근교농업 지역으로 변화했으며, 단감나무 단지를 개발해 전국적인 단감 명산지가 되었다. 편리한 교통을 배경으로 주호일반산업단지 · 본산농공단지 · 가산일반산업단지 · 죽곡일반산업단지 · 하계농공단지 등 많은 제조업 생산 시설이 입지해 있으며, 진영리에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다.
도로는 경전선 철도와 함께 동-서 방향으로 남해고속도로 및 부산외곽순환고속도로가 통과하고, 부산-대구 간 국도 25호선과 부산-창원 간 국도 14호선이 교차해 부산광역시 · 대구광역시 · 경상남도 창원시로 연결되어 교통이 편리하다.
문화유산으로는 진영리의 남방식 고인돌, 본산리의 가야시대 절터, 하계리의 진장군 묘(陳將軍 墓) 등이 있다. 진영리에 주호공원과 스마트그린도시 수변공원이 있으며, 본산리에 노무현대통령묘역이 위치한다.
시의 동단에 있는 면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48.60㎢이고, 인구는 5,107명이다. 면 소재지는 초정리(草亭里)이다. 괴정리(槐亭里) · 대감리(大甘里) · 덕산리(德山里) · 수안리(水安里) · 예안리(禮安里) · 월촌리(月村里) · 조눌리(鳥訥里) · 주동리(週同里) · 주중리(酒中里) · 초정리 등 10개 법정리가 있다.
본래 김해군 하동면(下東面) 지역으로 수안리 · 주중리 · 초정리 · 시례리(詩禮里) · 괴정리 등 11개 리를 관할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수안리 · 주중리 · 주동리 · 예안리 · 초정리 등 10개 리로 개편되었고, 1944년 대동면으로 변경되었다. 상동면과의 경계에 신어산이 있고, 중앙에 태백산(太白山: 352m) · 까치산(272m) 등의 낮은 산이 있으나 낙동강 연안에는 비옥한 충적평야가 발달해 있다. 1934년에 가설한 대동수문은 바닷물이 거슬러 올라오는 것을 막는 동시에 조수지로서 김해평야의 관개를 담당한다.
쌀이 주산물이지만 낙동강에서 얻는 어획고도 많으며 채소와 원예 소득도 높다. 2024년 김해대동첨단일반산업단지가 준공되어 지역 산업 기반이 한층 강화되었다. 도로 교통망으로는 시의 중심지 및 부산광역시 방면으로 여러 지방도가 연결되어 있으며, 부산외곽순환고속도로가 동서로, 중앙고속도로지선이 남북으로 경유하고 있다. 한편, 전통 시대에는 낙동강 변의 물금나루(勿禁나루)와 고암나루 등이 부산 지역과의 교통 및 물류 연결지로 기능하였다.
문화유산으로는 김해 예안리 고분군, 주동리의 김해 산해정과 조선시대 요지(窯址) 등이 있다.
시의 북동부에 있는 면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70.52㎢이고, 인구는 2,961명이다. 면 소재지는 대감리(大甘里)이다. 감로리(甘露里) · 대감리 · 매리(梅里) · 묵방리(墨方里) · 여차리(余次里) · 우계리(牛溪里) 등 6개 법정리가 있다.
본래 김해군 상동면 지역으로 용당리(龍塘里) · 후포리(後浦里) · 학운리(鶴雲里) · 용성리(龍城里) · 감로리 · 신곡리(新谷里) 등 20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6개 리로 개편되었다. 면의 동북쪽은 낙동강에 접해 있고, 북부에는 생림면과의 경계에 무척산이 있으며, 남쪽 대동면과의 경계에는 신어산, 대감리와 감로리 사이에는 금동산 등 산지가 많다.
농산물로는 채소류의 생산이 많으며, 낙동강에서의 어획량도 상당하였다. 산간 지역에서는 표고버섯을 비롯한 각종 버섯류가 생산되며, 양봉업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과거 농경지였던 지역에 제조업 생산 시설이 밀집되면서 산업구조에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도로는 국가지원지방도 60호선이 동-서 방향으로 지나가고, 남-북 방향으로 중앙고속도로지선이 경유한다. 과거 낙동강 변에는 개목나루 · 고암나루 · 양동나루 등의 나루터가 있어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院洞)과 통하였다.
문화유산으로는 감로리의 감로사 터와 백운암(白雲庵), 대감리의 조선시대 도요지, 여차리의 모석정 등이 있다.
시의 북부에 있는 면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50.19㎢이고, 인구는 3,460명이다. 면 소재지는 봉림리(鳳林里)이다. 나전리(羅田里) · 도요리(都要里) · 생철리(生鐵里) · 마사리(馬沙里) · 봉림리 · 사촌리(沙村里) · 생림리(生林里) · 안양리(安養里) 등 8개 법정리가 있다.
본래 김해군 생림면 지역으로 사촌리 · 나전리 · 봉림리 · 금곡리(金谷里) 등 7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하북면의 용덕리(龍德里) 일부와 밀양군 하동면(下東面) 일부를 병합하여 오늘에 이른다. 면의 대부분이 무척산과 작약산(芍藥山: 377m) 등 산지로 둘러싸여 있으며, 이 산지 사이를 소하천이 북류해 면 북쪽을 경유하는 낙동강에 합류한다.
산업은 북쪽의 평야지대에서 쌀과 보리 및 채소와 과일이 재배된다. 또한 산지를 이용한 양계업과 양돈업도 활발하다. 최근 들어 나전농공단지와 나전일반산업단지 주변으로 제조업체가 밀집하고 있다. 도로는 면의 중앙을 남-북 방향으로 밀양-김해 간 국도 58호선이 통과하고 동-서 방향으로 국가지원지방도 60호선이 경유한다. 북서쪽으로 경전선이 지난다.
문화유산으로는 봉림리에 가락국의 수로왕 때 축조된 것으로 전해지는 김해 마현산성(金海 馬峴山城)[경상남도 기념물]과 가야시대 고분이 있으며, 생림리에 삼국시대 고분과 마사왜성(馬沙倭城), 생철리에 무척사(無隻寺) 터, 도요리 사리탑(都要里 舍利塔)과 비로암(飛露庵) 터, 사촌리에 어씨 열녀비 등이 있다. 생철리에는 ‘김해가락오광대 탈 전승관’이 있으며, 낙동강 변에 생림도요생태공원과 생림오토캠핑장이 들어서 있다.
시의 중앙부에 있는 면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31.22㎢이고, 인구는 1만 9815명이다. 면 소재지는 천곡리(泉谷里)이다. 천곡리 · 내삼리(內三里) · 농소리(農所里) · 덕암리(德巖里) · 망덕리(望德里) · 선지리(仙池里) · 양동리(良洞里) · 원지리(元支里) 등 8개 법정리가 있다.
본래 김해군 주촌면 지역으로 외선리(外仙里) · 원지리 · 천곡리 · 연지리(宴支里) · 망덕리 · 농소리 등 10개 법정리가 있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8개 법정리로 개편되었다. 면의 이름은 주주봉(酒主峰)이라는 산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이후 주촌면이 되었다. 시내와의 사이에 경운산(慶雲山: 378m)이 있고, 진례면과의 경계에 황새봉 등 산지가 많다. 한림면으로 넘어가는 정골[正谷]에서 시작하는 조만강이 동남쪽으로 흐르다가 원지리에 이르러 여러 골짜기의 물을 합하고, 면의 가운데를 흐르며 분지형 경지를 관개하는 데 이용된다.
남쪽의 평야지대에서는 쌀이 주로 생산되는데 쌀 맛이 좋고, 주지봉 아래의 물이 옥수와 같아서 이 물로 빚은 술맛이 일품이라 원님에게 진상했다고 한다. 면의 남쪽으로 남해고속도로제2지선이 동-서 방향으로 관통하고 있고, 남-북 방향으로 국도 14호선이 경유하여 교통이 편리하다. 최근에는 급속한 도시화와 함께 공업지역으로 변모하고 있다. 김해골든루트일반산업단지, 이지일반산업단지, 김해의생명센터단지, 내삼농공단지, 산성공업단지, 덕암일반산업단지 등이 분포하며 대규모 택지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문화유산으로는 천곡리에 천곡성(泉谷城) 터와 조개더미가 있으며, 원지리에는 가야시대 석길 고분군이 위치한다. 내삼리에는 성터가 있고, 양동리에는 김해 양동산성과 삼국시대 고분군, 고인돌, 조개더미가 분포한다. 또한 망덕리에는 고인돌, 농소리에는 조개더미가 있다. 천곡리의 이팝나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시의 서단에 있는 면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44.83㎢이고, 인구는 5,712명이다. 면 소재지는 송정리(松亭里)이다. 고모리(古慕里) · 담안리(淡安里) · 산본리(山本里) · 송정리 · 송현리(松峴里) · 시례리(詩禮里) · 신안리(新安里) · 신월리(新月里) · 청천리(晴川里) · 조전리(棗田里) 등 10개 법정리가 있다.
본래 진례성(進禮城)의 이름에서 유래한 김해군 진례면 지역으로 청천리 · 시례리 · 송정리 등 5개 법정리를 관할하였다.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율리면(栗里面)의 고모리 · 고령리(高嶺里) · 상우리(上右里) · 개동리(蓋洞里) · 담안리 · 송현리 · 산본리 등 9개 법정리와 중북면의 의전리와 죽곡리 일부를 병합하였다. 장유동과 경상남도 창원시의 경계에 용지봉이 있고, 주촌면과의 사이에 황새봉이 있다. 산본리 남쪽 여러 골짜기에서 발원해 북쪽으로 흘러 신월리 · 조전리 · 송현리를 거쳐 흐르는 송현천(松峴川)이 면의 중앙을 남-북 방향으로 흐르며 분지형 경지를 관개하는 데 이용된다.
농산물로는 쌀 이외에 별다른 특산물이 없으나 산나물이 김해시 안에서 가장 흔한 곳이다. 또한 산지를 이용해 한우와 산양도 많이 사육한다. 최근에 김해테크노밸리일반산업단지와 AM하이테크일반산업단지 등이 조성되었으며, 대규모 택지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도로는 면의 남쪽으로 남해고속도로와 남해고속도로제3지선이, 남-북 방향으로 부산-마산 간 지방도 1042호선이 통과하여 교통이 편리하다.
문화유산으로는 청천리에 낙오정, 담안리에 첨모재, 신안리에 팔성암(八聖庵) 터와 송빈 · 김득기 · 이대형을 봉안했던 송담사지(松潭祠祉) 등이 있다. 2000년대 후반에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과 김해분청도자박물관이 개관하였다. 진례재래시장이 자리 잡고 있다.
시의 중앙 북부에 있는 면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59.41㎢이고, 인구는 6,534명이다. 면 소재지는 장방리(長方里)이다. 장방리 · 가동리(佳洞里) · 가산리(佳山里) · 명동리(明洞里) · 병동리(屛洞里) · 시산리(匙山里) · 신천리(新泉里) · 안곡리(安谷里) · 안하리(安下里) · 용덕리(龍德里) · 퇴래리(退來里) · 금곡리(金谷里) 등 12개 법정리가 있다.
본래 김해군 하북면(下北面) 지역으로 신천리 · 용덕리 · 명동리 · 안곡리 · 퇴래리 · 병동리 등 6개 법정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상북면의 가산리 · 가동리 · 장방리 · 시산리의 4개 리와 생림면의 생림리 일부, 그리고 밀양군 하남면의 명례리 일부를 병합해 상북과 하북의 두 자를 따서 이북면이 되었다가 1987년 한림면으로 개칭되었다. 서쪽과 남쪽으로 봉화산(烽火山: 140.7m), 무릉산(武陵山: 313m), 금음산(金音山: 376.3m) 등이 분포한다. 면의 북쪽으로 낙동강이 흐르고 서쪽에는 주천강(注川江)이 북류하여 흐르고 있어 하천 주변으로 충적평야가 발달하였다.
주요 농산물은 쌀 · 보리이며, 부산광역시와 가까워 무 · 배추 · 참외 · 수박 등의 근교농업이 발달하였고, 양돈 · 양계업도 활발하다. 최근에는 병동일반산업단지, 안하농공단지, 금음공단 등이 설치되어 많은 제조업체가 분포하고 있다.
도로는 금곡리에서 장방리를 거쳐 진영읍으로 통하는 경전선이 통과하며, 동-서 방향으로 부산외곽순환고속도로와 국가지원지방도 60호선이 면의 북쪽과 남쪽으로 경유하고 있다. 과거 낙동강 변에는 명례나루가 있었다.
문화유산으로는 안곡리에 고려시대에 조성된 김해 안곡리 삼층석탑이 있고, 명동리에 김득기의 낙산재(洛山齋)와 김득기 묘(金得器 墓), 퇴래리에 권형 효자비(權衡 孝子碑)가 있다. 신천리의 이팝나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시산리에 술뫼생태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퇴래리에는 화포천습지생태공원과 김해한림박물관이 있다.
시의 서남부에 있는 행정동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55.18㎢이고, 인구는 17만 7명이다[장유1동 5만 8557명, 장유2동 3만 7542명, 장유3동 7만 3902명]. 관동동(官洞洞) · 내덕동(內德洞) · 대청동(大淸洞) · 무계동(茂溪洞) · 부곡동(釜谷洞) · 삼문동(三文洞) · 신문동(新文洞) · 유하동(柳下洞) · 율하동(栗下洞) · 응달동(應達洞) · 장유동(長有洞) · 수가동(水佳洞) 등 12개 법정동이 있다.
본래 김해군 지역으로 장유암(長遊庵)의 이름을 따서 장유면이라 하여 대청리 · 삼문리 · 화촌리 · 관동리 · 율하리 등 8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유하면(柳河面)의 유하리 · 무계리 · 내덕리 · 신문리의 4개 리를 병합해 12개 리가 되었다.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와의 경계에는 굴암산이 있고, 창원시 성산구와의 경계에는 불모산과 용지봉이 있다. 이들 산악에서 발원한 율하천(栗下川)과 대청천이 인근 농경지의 관개에 이용된다.
산업은 축산업과 함께 쌀과 보리 생산이 활발했으며, 산지가 많아 버섯류와 산나물의 소출도 많았다. 최근에는 대규모 택지개발과 함께 도시화가 진행되며, 각종 제조업체들도 밀집해 있다.
도로는 동-서 방향으로 남해고속도로제2지선이, 남-북 방향으로 남해고속도로제3지선이 경유하며, 국도 58호선 및 여러 지방도가 통과하여 부산광역시 및 창원시 등과의 접근성이 뛰어나다. 남-북 방향으로 부산신항과 연결되는 경전선 철도 지선이 경유하고 있다.
문화유산으로는 무계동의 고인돌, 내덕동의 내덕산성과 3·1운동기념탑, 유하동의 가야시대 고분과 김해 유하패총, 삼문동의 중봉사 터와 가락국 왕릉이라 전해 내려오는 고분(古墳) 등이 있다. 이 밖에 대청동의 김해 장유화상 사리탑, 응달동의 임강사 터, 수가동의 패총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