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생곡리고분군은 부산광역시 기념물로 가달부락의 남서쪽에 있는 높이 84m의 동남쪽으로 뻗은 구릉에 자리한다. 이 고분군은 1983년 부산대학교박물관의 지표 조사를 통해 처음으로 그 성격의 일단이 알려졌고, 삼각판을 가죽끈으로 연결한 갑옷 조각들이 채집되어 주목을 받았다.
1989년 12월 18일부터 1990년 2월 17일까지 부산시립박물관(지금의 부산박물관)의 조사에서 구덩식돌덧널무덤 16기, 돌널무덤 7기, 독무덤 2기, 널무덤 1기 등의 삼국시대 무덤이 확인되었다. 2012년 7월 12일부터 10월 19일까지 동양문물연구원에서 실시한 발굴 조사에서 널무덤 19기, 구덩식돌덧널무덤 2기, 굴식돌방무덤 3기 등 모두 24기의 무덤이 확인되었다.
널무덤은 길이 3m 미만, 너비 70∼150㎝ 크기로 규모가 작다. 껴묻거리는 짧은목항아리 · 삼뉴부옹(三紐附甕: 꼭지 세 개 달린 항아리) · 뚜껑 · 무른항아리 · 손잡이달린화로모양그릇받침 · 작은그릇받침 · 토기잔 등의 토기와 쇠도끼 · 쇠손칼이 소량 포함되었고, 갑옷이나 큰 칼 등은 나오지 않았다. 4세기 후반에서 5세기 전반에 해당한다.
구덩식돌덧널무덤은 평면 형태가 장방형이고 뚜껑돌이 없는 것, 세장방형이고 뚜껑돌이 있는 것의 두 가지 형태가 있다. 구덩식돌덧널무덤에 부장된 토기는 5세기 중엽 이후 옛 김해만 일대의 여러 유적에서 출토되는 것과 유사한 뚜껑 · 뚜껑있는굽다리접시 · 긴목항아리 · 손잡이달린접시 · 바리모양그릇받침 · 원통모양그릇받침 등과 창녕 양식 토기, 유자이기(有刺利器) · 덩이쇠 등의 철기가 출토되었다.
6세기 전반에 축조된 구덩식돌덧널무덤에는 신라 토기들이 출토되었다. 소형 돌덧널무덤은 구덩식돌덧널무덤의 주위에 분포하며, 독무덤과 더불어 어린아이용이다.
굴식돌방무덤은 높은 쪽에 둥근 형태의 도랑을 설치하고, 그 아래에 방형에 가까운 돌방을 만들었다. 돌방 벽은 대부분 무너져 일부만 남았다. 바닥에는 돌을 한두 겹 깔아 주검 받침대를 설치하였다. 돌방 내부에서 뚜껑 · 짧은목항아리 · 접시 · 입술이 한 번 꺾여 올라가는 긴목항아리 등 6세기 후반에서 7세기 전반의 신라 토기들이 출토되었다.
김해생곡리고분군은 옛 김해만의 남쪽 해안변의 구릉에 자리한 중소형 규모의 고분들이 4세기부터 7세기 전반까지 비교적 오랜 기간 동안에 걸쳐 축조된 유적이다. 옛 김해만의 해안 세력 집단이 금관가야에서 신라로의 지배로 이행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유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