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무덤

  • 역사
  • 개념
  • 석기
선사시대부터 쓰이던 분묘의 일종으로 지하에 구덩이를 파고 직접 유해를 안치하는 무덤양식. 토광묘.
이칭
  • 이칭토광묘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최종규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선사시대부터 쓰이던 분묘의 일종으로 지하에 구덩이를 파고 직접 유해를 안치하는 무덤양식. 토광묘.

내용

평면형태는 방형·장방형·원형·타원형이 있다.

일반적으로 널[棺]이나 덧널[槨]과 같이 일차적으로 유해를 보호하는 시설[葬具]이 있는 종류는 널무덤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그러나 관용적으로는 나무널[木棺]과 나무덧널[木槨]을 사용했어도 이미 부패해 존재유무를 확인하기 곤란한 때에는 널무덤에 포함시키는 경우도 있다.

널무덤은 인류사회에 있어 가장 원초적이고 보편적인 묘제로서 세계적으로는 중기 구석기시대부터, 중국에서는 신석기시대부터 유행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약간의 지역적인 편차가 있기는 하나 초기철기시대부터 출현하여 삼국시대 전기까지 유행한 묘제로 정의되고 있다.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평안남도 평양시 태성리, 황해도 은율군 운성리, 경상북도 경주시 조양동, 경상남도 김해시 예안리 널무덤군(群)이 있다.

태성리 유적은 서기전 1세기 이후의 유적으로서 평안도 재래의 동검문화(銅劍文化)와 중국 전한문화(前漢文化)가 복합된 유물상을 보여, 세형동검과 철기, 전한계 토기가 함께 출토되었다. 널·덧널과 같은 장구도 검출되었다.

조양동 유적은 1∼3세기의 유적으로서 두 시기로 구분된다. 이른 단계에서는 철기·청동기·와질토기가 함께 출토되며 목관이 장구로 사용되었다. 늦은 단계에서는 철기·와질토기가 함께 출토되며 덧널이 장구로 사용되었다.

예안리 유적은 4세기 때의 유적으로서 덧널이 장구로 사용되었으며, 철기와 도질토기(陶質土器)가 함께 출토되었다.

의의와 평가

이와 같이 우리나라에서 널무덤으로 알려져 온 사례들은 모두 널 또는 덧널을 장구로 쓰고 있어, 이들을 널무덤으로만 명명하기에는 적당하지 않다.

구덩이 내부에 사용된 장구에 따라 널무덤[木棺墓]과 덧널무덤[木槨墓]으로 분류하는 것이 개념적으로 타당할 것 같다.

참고문헌

  • - 「태성리고분군발굴보고」(채희국, 『유적발굴보고』1959년 5집, 과학원출판사)

  • - 「土壙墓」(重松和男,『世界考古學事典』上, 平凡社,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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