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도질토기·화로형토기 등이 출토된 무덤군.
개설
내용
으뜸널[主棺]의 관선(棺線)을 따라가며 석렬이 돌려져 있었으며, 주위에서 쇠도끼 · 쇠살촉 · 도질토기(陶質土器) · 와질토기(瓦質土器)가 출토되었다. 으뜸널의 북쪽에 있는 부광은 파괴가 심하여 규모가 불명이며, 컵모양의 도질토기가 2점 출토되었다.
제2관과 제3관은 구릉의 정상부에 나란히 설치되어 있었는데, 간격은 약 70㎝로서 장축방향은 동서이다. 제2관의 묘광(墓壙)은 길이 600㎝, 너비 120㎝의 장방형으로서 널의 크기는 길이 500㎝, 너비 80㎝로 추정된다.
널 내부의 동쪽에는 적갈색 연질의 굴대그릇받침[筒形器臺] 및 화로형토기[爐形土器]가 껴묻혀 있었다. 거기서부터 중앙부 근처까지 대형철투겁창[大形鐵鉾] 25점이 깔려 있었고, 서쪽에는 도질의 단지[短頸壺] 2점이 놓여 있었다.
제3관의 묘광은 길이 800㎝, 너비 150㎝의 규모이며, 널의 크기는 700㎝, 너비 90㎝로 추정된다. 널 내부의 동쪽에 대형철모 · 고리큰칼(환두대도(環頭大刀)), 중앙부에 갑옷[短甲], 서쪽에 와질토기와 도질토기가 껴묻혀 있었다.
제1∼3관에서 종말기 단계의 와질토기와 고식(古式)의 도질토기가 함께 출토되고 있는 점으로 보아, 이 고분의 토기편년적 위치는 도질토기의 초기단계에 해당된다. 갑옷은 11매 내외의 세로로 긴 철판을 가죽끈으로 연결시킨 고식으로 투구[胄]는 출토되지 않았다.
대형 철투겁창은 와질토기단계의 것보다 대형화한 것으로 자루부분이 몸체에 비해 기형적으로 짧으며, 의기적(儀器的)인 성격을 띠고 있다. 5, 6세기 때의 고분 중 이 정도의 규모를 가진 고분에서는 대부분 금동제품이 껴묻혀 있으나, 이 고분에서는 한 점도 출토되지 않고 철제 무기가 다량 부장된 현상을 보이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이 곳 주변의 평지에서 같은 시기의 고분들이 종종 발견되기는 한다. 그러나 이들에 비해 이 고분은 입지에 있어 현저한 우월성을 보이며, 규모도 현격히 큰 점으로 미루어 이 고분의 피장자들은 당시의 지배층으로 보인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경주구정동일대발굴조사」(최종규, 『박물관신문』139, 1983)
- 「경주구정리출토금석병용기유물에 대하여」(김원룡, 『역사학보』1,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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