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기록은 중국측 문헌에 보인다. 『통전(通典)』에 따르면, 요(堯) 임금이 다스리던 당(唐)시대에 9주가 있었다고 하나 신빙성은 없다. 주의 본격적인 설치는 중국 한(漢) 무제(武帝) 원봉(元封) 5년(기원전 106)에 전국을 13주로 나누고 자사(刺史)를 파견해 감찰하게 한 데에서 비롯된다.
우리나라에서 주의 명칭이 처음 나타나는 때는 신라의 탈해이사금 11년(67)이다. 이때 전국을 주 · 군으로 나누고 박씨(朴氏) 귀족들을 파견해 주주(州主) · 군주(郡主)로 삼았다고 한다.
그 당시 주의 성격은 확실히 알 수 없으나, 505년(지증왕 6)부터 군사적인 성격의 주가 설치되기 시작해 지금의 강원도 삼척 지역에 실직주(悉直州)가 설치되고 이사부(異斯夫)가 군주(軍主)로 임명되었다. 이에 따라 여기에는 실직정(悉直停)이라는 군단(軍團)이 배치된 것으로 보인다.
이 후 신라의 영토 확장과 더불어 사벌주(沙伐州 : 지금의 경상북도 상주) · 감문주(甘文州 :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開寧) · 완산주(完山州 : 지금의 전북특별자치도 전주) · 대야주(大耶州 : 지금의 경상남도 합천) 등이 설치되었다.
그리고 삼국을 통일한 뒤 신라는 전면적인 군현제 개편의 일환으로 전국에 9주, 즉 옛 고구려 영역에 한산주(漢山州 : 漢州) · 수약주(首若州 : 朔州) · 하서주(河西州 : 溟州)를, 옛 백제 지역에는 웅천주(熊川州 : 熊州) · 완산주(完山州 : 전주) · 무진주(武珍州 : 武州)를, 그리고 신라의 본토 지역에 삽량주(歃良州 : 良州) · 청주(菁州 : 康州) · 사벌주(沙伐州 : 상주)를 설치하였다.
이때의 주도 군사적인 성격이 남아 있었지만 그 아래에 많은 군 · 현을 거느리게 됨으로써 명실상부한 지방 행정 구역의 상부 단위로 정착하게 되었다. 『삼국사기』 지리지에 따르면, 9주 소관의 군 · 현 수는 〈표〉와 같으며, 9주의 장관은 도독(都督)이라 하였다.
9주\군현 | 小京 | 郡 | 縣 | 계 |
---|---|---|---|---|
尙州 | 10 | 31 | 41 | |
良州 | 1 | 12 | 34 | 47 |
康州 | 11 | 32 | 43 | |
漢州 | 1 | 28 | 49 | 78 |
朔 州 | 1 | 12 | 26 | 39 |
溟 州 | 9 | 25 | 34 | |
熊州 | 1 | 13 | 29 | 43 |
全州 | 1 | 10 | 31 | 42 |
武州 | 15 | 43 | 58 | |
계 | 5 | 120 | 300 | 425 |
〈표〉 통일신라시대의 9주와 소관군현 |
이러한 통일신라시대의 주는 신라 말 고려 초의 전란 과정을 거치면서 상당히 변질, 저하되었다. 이 시기의 혼란을 수습하려는 궁예(弓裔) 또는 왕건(王建)의 정책에 의해 그들에게 스스로 복종하거나 협조한 지방 세력의 출신지가 주로 승격되었다.
그리하여 고려 태조 대에만 하더라도 50개가 넘는 주가 존재하였다. 특히 군 · 현 단위의 소규모 읍(邑)이 명칭 상으로만 주로 승격된 경우가 많았다.
성종 대에 이르러 이러한 제도상의 혼란을 개혁하기 위해 주 · 현 2급제를 실시하기도 했으나 실패하였다. 이렇게 해 고려시대의 주는 대규모의 주와 소규모의 주가 혼재했으며, 이것은 조선 건국 이후에야 개혁되었다.
1413년(태종 13)에 소규모 주의 ‘주(州)’자를 ‘산(山) · 천(川)’자로 바꾸고 다시 군 · 현의 명칭을 부여하였다.
예를 들면 괴주(槐州) · 곡주(谷州) 등은 괴산군(槐山郡) · 곡산군(谷山郡)으로,제주(堤州) · 신주(信州) 등은 제천현(堤川縣) · 신천현(信川縣)으로 개명하였다. 이와 더불어 이들 지역에는 군수(郡守) · 현령(縣令) 등의 외관이 파견되었다.
반면 대규모의 주는 그 명칭을 존속시키고 목사(牧使) · 대도호부사(大都護府使) 등의 관원을 파견하였다. 그러나 대규모의 주도 1895년 갑오개혁기의 23부제(府制) 실시와 광무개혁기의 13도제(道制) 실시로 행정 구획으로서의 의미를 상실하게 되었다. 결국 주는 신라시대 이후 조선시대까지 지방 행정 구획의 상부 단위로서 존속하였다. →군현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