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사람이다. 순군부(徇軍部) 이직(吏職)에 있었던 자로 고려 태조가 즉위하자 모반을 한 인물이다.
태조 1년 9월 같은 청주인인 배총규(裵悤規), 계천(季川: 지금의 전라남도 장흥)사람 강길(康吉)·아차귀(阿次貴), 매곡(昧谷: 지금의 충청북도 보은군 회북면)사람 경종(景琮) 등과 반란을 일으켜 청주로 도망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복지겸(卜智謙)이 이 사실을 태조에게 밀고함으로써 잡혀 죽게 되었다. 이에 청주인인 순군낭중(徇軍郎中) 현율(玄律)은 경종의 매형이 후백제와의 접경지대인 매곡성주 공직(龔直)임을 들어 이들을 살려줄 것을 청하였다.
그러나 마군대장군(馬軍大將軍) 염상(廉湘)이 이를 반대하여 결국 죽임을 당하였다. 이 모반사건의 영향으로 현율은 병부낭중으로 관직이 바뀌었으며, 그 해 10월 청주에서 진선(陳瑄)·선장(宣長) 형제의 모반사건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청주인들에 의한 모반사건은 궁예(弓裔) 집권시인 904년 청주인 1,000여 호를 철원으로 이주시킨 데 대한 불만에서 비롯된 것이라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