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흔암 ()

고려시대사
인물
고려전기 마군대장군을 역임한 관리. 주모자.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918년(태조 1)
출생지
미상
주요 관직
마군대장군(馬軍大將軍)
관련 사건
이흔암·환선길의 모반사건
목차
정의
고려전기 마군대장군을 역임한 관리. 주모자.
생애 및 활동사항

궁예(弓裔) 말년 마군대장군(馬軍大將軍)으로서 웅주(熊州: 지금의 충청남도 공주)를 공격 탈취하여 그곳에 주둔하고 있었다. 그러나 태조가 즉위하자 부르지도 않았는데 서울에 올라옴으로써 웅주가 후백제의 수중에 들어가 버렸다.

이 때 한찬(韓粲) 수의형대령(守義刑臺令) 염장(閻萇)이 웅주를 잃은 것에 대한 처벌을 요청함과 더불어 이흔암에게 반란의 뜻이 있음을 밀고하였다. 그러자 태조는 나인(內人)을 시켜 이흔암의 집을 엿보게 하였다. 결국, 이흔암의 처 환씨(桓氏)로부터 반란을 모의하고 있음을 알게 되어 죽임을 당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사건은 태조 원년(918) 6월의 일로, 이흔암의 처가 환씨인 점으로 미루어 앞서 일어난 환선길(桓宣吉)의 모반사건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흔암·환선길의 모반사건은 궁예의 핵심적인 지지세력에 의한 것이라 추정된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고려전기노비정책에 대한 일고찰」(홍승기, 『진단학보』51, 1981)
「고려태조와 개성」(하현강, 『이홍직박사회갑기념 한국사학논총』,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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