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고려 후기 몽고가 고려의 화주(和州 : 지금의 함경남도 영흥) 이북을 직접 통치하기 위해 설치했던 관부.
개설
변천과 현황
이에 몽고는 여기에 총관부를 두고 조휘를 총관(摠管), 탁청을 천호(千戶)로 삼았다. 그 뒤 조휘와 탁청의 일족인 조양기(趙良琪) · 조소생(趙小生) · 탁도경(卓都卿) 등이 총관과 천호를 세습하면서 이 지역을 다스렸다. 이 동안에 고려의 유이민들이 이곳으로 몰려왔으므로, 여러 차례 관리를 보내어 이들을 쇄환(刷還)하려 했으나 실효를 거두지 못하였다.
1356년(공민왕 5)에 대대적인 반원운동(反元運動)을 전개하면서 밀직부사 유인우(柳仁雨)를 동북면병마사로, 전대호군(前大護軍) 공천보(貢天甫), 전종부령(前宗簿令) 김원봉(金元鳳)을 부사로 삼아 이 지역을 수복하도록 하였다.
이 때 총관 조소생과 천호 탁도경이 항거했으나, 조휘의 손자인 조돈(趙暾)과 이 지역에 토착해 있던 이자춘(李子春)이 고려군에 내응함으로써 조소생은 이판령(伊板嶺)을 넘어 도망하고 쌍성총관부는 폐지되었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