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형조판서, 한성부좌윤, 경연특진관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이때 김안로(金安老)의 간사(奸邪)를 논핵하는 대간들의 의논이 일치하지 않자 극언하는 소를 올려 외지로 귀양보내게 되었다. 이듬해 전라좌도어사로 나갔으며 교리 · 부응교 · 헌납 · 응교 등을 거쳐, 1526년 재해가 휩쓴 평안도에 순어사(巡御使)로 파견되었다.
1530년 종부시정으로서 충청도어사로 나갔으며, 1532년 직제학에 승진되었다. 이듬해 대사성 · 이조참의를 역임하고, 1537년 승지로서 사은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1538년 경상도관찰사로 부임하였으나 성주사고(星州史庫)에 화재가 나는 등 여러 가지 사건으로 소임을 감당하지 못한다는 평을 받아 이듬해 체직되었다가 곧 예조참판에 제수되었다.
1542년 형조참판이 되었는데, 전에 함경도관찰사로 있을 때 많은 관인(官人)들을 개인적인 일에 부렸다 하여 사간원의 탄핵을 받았다. 1544년 판결사 · 내의원제조를 역임하고, 이듬해 공조참판으로 동지춘추관사를 겸하여 『중종실록(中宗實錄)』 편찬에 참여하였다. 이어 형조판서 · 한성부좌윤을 거쳐 1551년(명종 6) 경연특진관에 임명되었다. 시호는 혜평(惠平)이다.
참고문헌
- 『중종실록(中宗實錄)』
- 『인종실록(仁宗實錄)』
- 『명종실록(明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영남인물고(嶺南人物考)』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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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진사 급제 : 『정덕8년계유8월20일생원진사방(正德八年癸酉八月二十日生員進士榜)』(여주이씨 옥산문중 전적(驪州李氏玉山門中典籍)-사마방목(司馬榜目)[보물 제52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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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六(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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