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방(桂坊)이라고도 한다. 조선 건국 초에는 세자관속(世子官屬)이 설치되어 세자에 대한 강학(講學)과 시위(侍衛)의 일을 함께 관장하였다.
그 뒤 강학에 관한 것을 맡는 세자시강원과 시위를 맡는 세자익위사가 분업되었는데, 이렇게 해서 성립된 세자익위사는 조선 후기까지 그대로 존치되면서 중요한 기능을 발휘하였다. 세자익위사는 병조의 속아문인 정5품아문으로『경국대전』에 나타난다.
그 관원은 좌우익위가 각각 1인씩으로 정5품, 좌우사어(左右司禦)가 각각 1인씩으로 종5품, 좌우익찬(左右翊贊)이 각각 1인씩으로 정6품, 좌우위솔(左右衛率)이 각각 1인씩으로 종6품, 좌우부솔(左右副率)이 각각 1인씩으로 정7품, 좌우시직(左右侍直)이 각각 1인씩으로 정8품, 좌우세마(左右洗馬)가 각각 1인씩으로 정9품이었다.
그 밖에 이속으로 서리(書吏)가 2인, 사령(使令)이 7인, 군사(軍士)가 4인 배치되어 있었다. 세자익위사의 관원들은 세자가 밖에 거둥할 때는 앞에서 인도하고, 회강(會講)할 때는 섬돌 아래에서 시립(侍立)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들은 무반이지만, 왕세자 가까이에서 보도(輔導)하는 뜻이 컸으므로 경술(經術)이 있는 사람으로 충당되는 경우가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