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의 각종 행사·차비(差備)에 참여하였다. 즉 국왕의 종묘제사·문묘참배·선대왕릉참배 등을 위한 궁내외 거둥 때에 어가(御駕) 옆에서 시위·봉도(奉導) 및 국왕·세자의 세수간(洗手間)·무수리간[水賜間]에서의 시중 등을 담당하였다.
정원은 성종대에는 대전별감 46인, 중궁전별감 18인, 세자궁별감 18인 등 모두 80인이었다. 1505년(연산군 11)에는 40인이 증가되어 120인, 1636년(인조 14)을 전후한 시기에는 다시 150인으로 증가되었다. 그 뒤 1746년(영조 22)을 전후해 중궁전별감과 세자궁별감은 80인으로 감소되나 세손궁별감 10인이 신설되어 90인으로 조정되면서 이 수가 한말까지 계속되었다.
별감은 그 기능 및 소속처와 관련되어 무예·봉도·동산(東山 : 창덕궁 안에 있는 건양현(建陽峴)을 관장함.)·세수간·무수리간 별감 및 대전별감·세자궁별감·세손궁별감 등으로 구분되어 호칭되기도 하였다. 별감은 승정원에서 후보자를 정해 두었다가 결원이 생기면 임용하였다.
그리고 소속처별로 2번으로 나눠 교대로 근무하게 했으며, 재직 기간 900일이 차면 한 품계를 올리되 종7품 봉무랑(奉務郎)이 되면 퇴직하였다. 이들은 국왕이 거둥할 때 봉도와 관련되어, 특히 그 복색이 화려하고 당당한 차림이었으므로, 시정에서는 이들의 차림을 가장 멋있는 것으로 여겨 부러워하기도 하였다.
또, 1525년(중종 20) 이후에는 왕실과 관련된 기능에서 아지(阿只 : 궁중의 유모)의 피접(避接 : 먼 곳으로 옮겨 요양함.)을 빙자, 가탁해 양반·과부가의 재물을 갈취하는 비행을 저지르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