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주전투

  • 역사
  • 사건
  • 고려 전기
  • 고려 후기
몽고의 제3차 침입 때 죽주(지금의 경기도 안성시 죽산)에서 벌어진 전투.
이칭
  • 이칭죽주성전투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민병하 (전 성균관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몽고의 제3차 침입 때 죽주(지금의 경기도 안성시 죽산)에서 벌어진 전투.

내용

1235년(고종 22) 몽고는 고려를 침입한 이후 3, 4년간 거의 전국을 유린하였다. 이것이 몽고의 3차 침입이다.

1235년안변(安邊)ㆍ용강(龍岡)ㆍ함종(咸從 : 지금의 江西)ㆍ삼등(三登, 지금의 江東) 및 안동(安東)ㆍ동경(東京 : 지금의 慶州) 등지를 침범하였던 몽고군은 일단 물러갔다가 이듬해 대거 침입, 남하하여 9월에는 죽주성을 포위하였다.

이에 성 안의 군사가 출격하여 이들을 물리쳤고, 적이 다시 포(砲)로 공격하자 성안에서도 포로 맞서 또 적을 막았다. 적이 다시 화공을 하자, 성문을 열고 일제히 공격을 가하여 수많은 적을 살해하는 전과를 올렸다. 적은 여러 방면으로 성을 공격하였으나, 결국 포위한 지 15일만에 성을 공격하던 기구들을 불태우고 물러갔다.

이 때 죽주성의 수장(守將)인 방호별감(防護別監) 송문주(宋文胄)는 앞서 귀주(龜州, 龜城)에서 몽고군과 싸운 경험이 있어 적의 공성술을 알고 있었으므로 적으로부터 성을 잘 지켰던 것이다. 이 전투는 고려군이 열세였음에도 불구하고 적의 공격을 잘 분쇄한 지방군의 항전이었다.

참고문헌

  • - 『고려사(高麗史)』

  •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