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직후 건국운동이 한창일 때인 1946년 8월 24일 이웅렬(李雄烈)이 발행인 겸 편집인으로 『충남일보』를 제호로 처음 발행하였는데, 그 뒤 6 · 25 전쟁의 발발로 발행이 중지되었다가 1951년 8월 24일 대전시 중동 10에서 『중도일보』라는 제호로 창간하였다.
처음에는 인쇄시설의 미비와 6 · 25전쟁으로 인한 경제적 불황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그 뒤 차차 정세가 안정되자 4면으로 증면하고 다시 8면으로 발행, 『대전일보』와 함께 한때 충청남도 지방의 쌍벽을 이루는 언론기관으로 성장하여 사옥을 대흥동으로 이전하였다가 다시 선화동 382번지로 옮기고 제반시설을 확장하였다.
사시는 ‘공정신속 · 지역사회 개발’이었으며, 『충남보감(忠南寶鑑)』과 『충남상공명감(忠南商工名鑑)』을 간행하였다. 연간 주요사업으로는 영화제 ‘백마상’을 제정, 시상하는 등 8개의 사업을 전개하였으며, 분실 3, 지사 4, 지국 50사를 서울 · 부산 · 청주를 비롯하여 충청남 · 북도와 영남 · 호남 지방에 설치하였다.
1973년 제3공화국이 권력의 집중화를 가속화시키기 위해 언론통폐합에 착수, ‘1도1사정책’을 실시하면서, 그 해 5월 24일 창간 22년 만에 『대전일보』와 통합되어 『충남일보』로 제호가 변경되었다. 당시 지령7,070호였던 폐간호에 만화작가 이홍우(현 동아일보 만화작가)는 「노병은 죽지 않고 다만 사라져 갈 뿐이다」라는 만화를 남겼다.
1987년 6 · 29선언으로 자율화의 거센 돌풍이 일면서 1988년 1월 복간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9월 1일 폐간 당시의 지령을 이어받은 지령7,071호로 복간하였다. 1991년 6월 1일 자매 월간화보 『중도포커스』를 창간하고, 초고속컬러 윤전기를 도입하였으며 갈마동에 사옥을 신축하였다. 또한 1994년 5월 1일에는 20면으로 증면하고 조간으로 바꾸었으며, 1996년 12월부터는 전면 가로쓰기 체제로 전환하여 독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심한 경영난으로 인해 2003년 3월 10일부터 잠시 휴간에 들어갔다. 이 때 충청매일신문사가 중도일보의 제호를 인수하여 2003년 9월 8일 중도일보 제호를 재발행하였다. 2003년 9월 23일 신사옥(대전시 중구 오류동 187-11)으로 이전한 이후인 2005년 10월 25일 RockWell Goss BB유니트 1대를 증설함으로써 상시 24면 발행체제 구축하였고 2006년 1월 1일부터 24면으로 발행하였다.
한편, 2007년 9월 1일에는 인터넷방송을 개국하였고, 2008년 2월 1일에는 자매지인 『월간충청』을 창간하였다. 또 2008년 3월 1일에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우선지원대상사로서 처음으로 선정된 이후 2010년까지 3년 연속으로 선정되었다. 그리고 2008년 6월 27일 사옥을 다시 대전광역시 중구 오류동으로 이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