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천군은 서쪽으로는 충청남도 천안시, 남쪽으로는 청주시, 남동쪽으로는 증평군, 북동쪽으로는 음성군, 북서쪽으로는 경기도 안성시와 접하고 있다. 동경 127°17′∼127°35′, 북위 36°44′∼37°00′에 위치한다.
면적은 407.26㎢이고, 인구는 7만 8218명(2018년 기준)이다. 행정구역으로는 2개 읍, 5개 면, 304개 행정리(83개 법정리)가 있다. 군청은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읍내리에 있다.
서부와 남부 및 동부는 산지이고 중앙부와 북부는 평야이다. 경기도 안성시와 경계를 이루고 있는 차령산맥을 중심으로 서쪽은 덕성산(德城山, 519m) · 서운산(瑞雲山, 547m) · 무제봉(武帝峰, 573m) · 백석봉(白石峰, 467m) · 옥녀봉(玉女峰, 456m) · 장군봉(將軍峰, 435m) · 만뢰산(萬賴山, 614m) 등이 솟아 있다.
남쪽은 태령산(胎靈山, 421m) · 문안산(文安山, 415m) · 봉화산(烽火山, 415m) · 환희산(歡喜山, 402m) · 덕유산(德裕山) · 국사봉(國師峰, 360m) · 양천산(凉泉山, 350m) · 불당산(佛堂山, 246m) 등이 있다. 동쪽의 군계에는 두타산(頭陀山, 598m) · 알봉 등이 있다.
미호천은 음성군 삼성면 마이산(馬耳山)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흘러 이월면에 이르러 칠장천(七長川) · 회죽천(會竹川)과 합류한다. 덕산면에 이르러 한천천(閑川川) · 백곡천(百谷川)과 합류하여 초평면과 문맥면의 경계를 이룬다. 다시 남동류하여 초평면 남단에서 서남류하는 보강천(寶岡川)과 합류하여 서남쪽으로 흐르고 있다.
백곡천은 양백리 서쪽 서운산에서 발원하여 동남쪽으로 흘러 용덕리를 지나 석현리의 엽둔재에서 오는 물과 합류하여 진천읍 건송리에 이르러 백곡저수지(일명 진천저수지)를 이룬다. 초평면 경계 부근에서 미호천과 합류한다.
초평천(草坪川)은 음성군 음성읍에서 발원하여 초평면에 이르러 군자천(君子川)과 합류하여 초평면 중앙부를 남류한다. 연평균 기온은 11.2°C, 1월 평균기온은 -4.1°C, 7월 평균기온은 21.3°C, 연 강수량은 1239.3㎜이다.
이곳에 언제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진천읍 성석리의 고인돌 등으로 보아 청동기시대에 이미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삼한시대에 마한의 한 나라가 이곳에 있었던 것으로 전한다.
삼국시대에는 먼저 백제의 땅이었으나, 고구려 장수왕의 남진정책으로 진천은 고구려의 금물노군(今勿奴郡)이 되었다. 484년(소지마립간 6)에 모산성(母山城) 부근에서 신라가 고구려를 물리쳐 진천은 신라의 만노군(萬弩郡)이 되었다. 이 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보이는 산성터가 군내 곳곳에 남아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금현성(錦峴城) · 원산향(圓山鄕)을 둘러싸고 삼국이 각축했음을 보여주는 기사가 많이 전하고 있다. 삼국통일에 큰 공을 세운 김유신(金庾信)이 진천읍 상계리마을(일명 지랭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태를 뒷산에 묻었다고 하여 산 이름이 태령산(길상산)이라 불린다.
그 밖에 그가 몸과 마음을 닦았다는 이월면 사곡리의 장수굴, 그의 덕을 기려 세웠다는 진천읍의 송덕불상과 길상사, 그의 아버지 서현이 고구려로부터 낭비성을 되찾았을 때 놓았다는 문백면 구곡리의 농다리[籠橋] 등이 그와 얽혀 전해 내려온다.
685년(신문왕 5)에 전국이 9주로 나뉘었을 때, 진천은 흑양군(黑壤郡, 黃壤郡)으로 한산주에 속하였다. 흑양군에는 그 속현으로 도서현(都西縣: 지금의 淸安)과 음성현이 있었다.
고려 초에는 강주(降州)로 불리다가 뒤에 진주(鎭州)로 개칭되었다. 995년(성종 14)에 전국이 10도 12목으로 개편될 때 중원도에 속했고, 군사적 요충지로 자사(刺史)가 두어졌다가, 1005년(목종 8)에 폐지되었다. 그 후, 1018년(현종 9)에 전국이 5도 양계로 개편되었을 때, 양광도 청주목의 속현이 되었고 감무가 설치되었다.
1259년(고종 46) 몽고의 침략 때 사력을 다하여 저항한 무인 임연(林衍)이 문백면 구곡리에서 태어났다고 하여, 창의현(彰義縣)으로 승격되었다. 1269년(원종 10)에 다시 임연의 공으로 의령군(義寧郡)으로 승격되어 지군사(知郡事)가 파견되었으나, 임연이 죽은 뒤에 진주현으로 강등되었다.
조선 초에는 상산(常山)으로 불리다가 1413년(태종 13)에 진천으로 개칭되면서 현감이 두어졌다. 1444년(세종 26)에 왕이 안질을 치료하기 위해 초정(椒井)약수터까지 가던 도중 이곳에서 하룻밤을 지냈다 하여 이곳 지명이 성평(聖平)이라 불렸다고 한다.
1505년(연산군 11)에 경기도로 이속되었다가, 중종 초에 다시 충청도로 복원되었다. 임진왜란 때 이곳 사람 이영남(李英男)이 이순신(李舜臣)과 함께 노량해전에서 전사하였다. 1895년에 진천군이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경기도 죽산군 남면의 가척리(加尺里)와 동주리(東注里)가 만승면 광혜원리에 편입되었다. 1919년 4월 2일에 이상직(李相稷)의 주도 하에 수천 명이 읍내에서 만세운동을 한 것을 시작으로 군내 곳곳에서 3·1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근대의 인물로는 만주 땅에서 일생을 조국 광복을 위하여 힘쓰고 독립군을 양성한 신팔균(申八均), 헤이그(Hague)에 특사로 파견되었던 이상설(李相卨), 이 지역의 3·1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한 윤병한(尹炳漢) 등이 있다.
1945년에 청원군 북이면의 용기리 · 용산리 · 진암리 · 은암리가 초평면에 편입되었다. 1973년 7월 1일에 진천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83년 2월 15일에는 덕산면 중석리가 초평면에, 상신리 · 산척리와 이월면 송두리 · 가산리가 진천읍에, 만승면 내촌리 · 사당리가 이월면에 각각 편입되는 행정구역 조정이 있었다. 2000년 1월 1일에는 만승면이 광혜원면으로 개칭되었다.
신석기 시대 이전의 유물은 알려진 것이 없고, 청동기 시대의 것으로 진천읍 성석리에 고인돌이 있다. 덕산면 석장리에 진천 석장리 유적(충청북도 기념물, 2002년 지정)이 있다. 진천읍 상계리에는 김유신 탄생지와 태실(사적, 1999년 지정)이 있다.
산성으로는 진천읍 성석리의 대모산성(충청북도 기념물, 1990년 지정), 벽암리의 도당산성(都堂山城), 문봉리의 태령산성(胎靈山城), 연곡리의 만뢰산성(萬賴山城), 신정리의 걸미산성(榤尾山城), 사석리의 문안산성(文案山城), 문백면 옥성리의 양천산성(凉泉山城), 백곡면 갈월리의 갈월산성, 초평면 영구리의 두타산성(頭陀山城)이 있다.
불교 유산으로는 진천읍 연곡리 절터의 진천 연곡리 석비(보물, 1964년 지정) · 삼층석탑 · 비로자나불상, 1984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된 신정리의 진천 용화사 석조여래입상과 석탑 부재(部材), 교성리의 금동미륵입상 · 2003년 충청북도 문화재자료(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된 교성리 연화대좌, 상계리의 백련암지(白蓮庵址)와 천불전지(千佛殿址) 출토 불상이 있다.
문백면 옥성리에는 고려시대의 마애약사여래좌상과 삼층석탑, 이월면에는 진천 사곡리 마애여래입상(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82년 지정), 진천 노원리 마애여래입상(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97년 지정), 덕산면 산수리에는 진천 산수리 마애여래좌상(충청북도 문화재자료, 1998년 지정), 초평면 용정리에는 진천 태화4년명 마애여래입상(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81년 지정)과 석조여래좌상, 영구리에는 관음전 목조관음보살상이 있다.
유교문화재로는 진천읍 교성리에 진천향교(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81년 지정)와 문백면 사양리에 사양영당(思陽影堂), 봉죽리에 정송강사(충청북도 기념물, 1976년 지정), 이월면 노원리에 신잡 초상(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77년 지정)을 모신 노은영당(老隱影堂), 초평면 용기리에 금성대군 사당(충청북도 문화재자료, 1990년 지정), 백곡면 갈월리에 만뢰사(萬賴祠)가 있다.
진천읍 벽암리 도당산성 안에는 진천 길상사(충청북도 기념물, 1975년 지정), 교성리에는 숭렬사(崇烈祠)가 있다. 숭렬사는 헤이그 특사 이상설(李相卨)의 영정을 봉안한 사당으로 1972년 건립되어 1979년에 중수되었다.
건축물로는 진천읍 건송리의 식파정(息波亭) · 백원정(百源亭), 문백면 장월리의 망북정(望北亭)이 있다. 망북정은 조선 인조 때의 문신인 김내현(金鼐絃)이 병자호란 후 낙향해서 그의 증조부인 김자(金磁)가 지었던 정자를 깨끗이 수리하고 거처한 것으로, 임금이 있는 북쪽을 항상 생각하여 정자의 이름을 ‘망북’이라 하였다 한다. 그 뒤 퇴락한 것을 1976년에 복원하였다.
또한 이월면 노원리의 진천 신헌 고가(충청북도 문화재자료, 1985년 지정), 진천읍 산척리의 이상설 생가(충청북도 기념물, 1987년 지정), 문백면 구곡리의 진천 농다리(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76년 지정) 등이 보존되고 있다.
이 밖에도 유명인의 묘소와 비석이 많이 있다. 광혜원면 실원리의 홍우경 · 정인옹주 묘소(충청북도 기념물, 1988년 지정), 문백면 사양리의 이정 묘소(충청북도 기념물, 1994년 지정), 평산리의 남지 묘소 및 신도비(충청북도 기념물, 1988년 지정)가 있다.
또한 이월면 사곡리의 이집 묘갈(충청북도 기념물, 1995년 지정), 1982년 충청북도 민속문화재(현, 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된 노원리의 신화국 백자청화 묘지, 덕산면 두촌리의 송인 묘소(충청북도 기념물, 1994년 지정), 기전리의 이영남 묘소(충청북도 기념물, 2008년 지정), 진천읍 상계리의 이거이 묘소(충청북도 기념물, 1994년 지정)가 있다.
문백면 봉죽리에 정철 신도비(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96년 지정) · 정철 묘소(충청북도 기념물, 1996년 지정), 초평면 용정리의 이시발 신도비(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84년 지정)와 이대건(李大建) 신도비, 백곡면 명암리의 남연년(南延年) 신도비 등이 있다.
문백면 구곡리에는 세조가 지방 순행 때 물을 마셨다는 어수정(御水井), 이월면 노원리와 광혜원면 광혜원리에는 궁궐터가 있다. 무형유산으로는 2003년 충청북도 무형문화재(현, 무형유산)로 지정된 진천 용몽리 농요가 있고, 천연기념물로는 이월면 노원리에 왜가리 번식지(천연기념물, 1962년 지정)가 있다.
조선시대의 교육기관으로 진천읍 교성리의 진천향교는 조선 태종 당시 전국에 향교를 설치하라는 전교가 있을 때 설치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1804년(순조 4)에 현감 홍이구(洪履龜)가 명륜당을 중수하였고 같은 해 최흡이 풍화루(風化樓)를 세웠으며 1816년에 현감 조후영(趙厚永)이 대성전을 중수하였다. 그 뒤 1873년(고종 10)과 1935년 두 차례에 걸쳐 다시 중수되었다.
이월면 노원리에 있는 백원서원(百源書院)은 1597년(선조 30)에 신잡이 설립했는데 1669년(현종 10)에 사액되었으나 1871년에 철폐되었다. 초평면 금곡리에 있는 지산서원(芝山書院)은 1722년(경종 2)에 설립되어 그 이듬해에 사액되었으나 고종 때 철폐되었다. 이 밖에 초평면 용기리 수의동에 수의동서원(守義洞書院)이 있었다.
근대 교육기관으로는 1905년에 사립 문명학교(文明學校)가 지방유지인 이상직(李相稷)에 의해 진천읍내에 설립되었다. 이 학교는 1911년 진천공립보통학교로 바뀌었다가 현재는 상산초등학교로 바뀌었다.
또한, 1920년 장양공립학교(長陽公立學校)가 현재의 이월초등학교 자리에서 개교하였다. 1944년에는 수업연한 3년의 진천농업전수학교가 설립되어 1945년에 4년제의 진천공립농업학교를 거쳐 오늘날의 진천농업고등학교(현 한국바이오마이스터고등학교)가 되었다.
교육기관으로는 2019년 현재 초등학교 15개교, 중학교 6개교, 고등학교 6개교가 있다. 1956년에 개원한 진천문화원은 생거진천문화축제를 비롯한 각종 향토문화 · 예술행사를 주관하고 있다.
이 고장의 대표적 민속놀이로는 1950년경까지 행해지던 소놀이를 들 수 있지만, 현재는 전승되지 않고 있다. 이 놀이는 추석날 밤에 일 년 농사를 감사하는 추보제(秋報祭)의 일종으로 행하던 집단놀이인데 대체적인 모습은 다음과 같다.
추석날 밤이 되면 두 사람이 둥근 맷방석을 뒤집어쓴 채, 앞사람은 작대기에 둥구미를 씌워 만든 쇠머리를 들고 뒷사람은 허리춤에 새끼줄을 매어 쇠꼬리를 만들어 암소로 가장한다. 그러면 다른 사람 하나가 소쿠리를 뒤집어쓰고 작대기와 삼태기로 쇠머리를 삼고 새끼줄로 꼬리를 만들어 송아지로 꾸민다.
가장이 끝나면 질라애비(길라잡이)가 고삐를 쥐고 암소를 끌면 송아지는 그 옆을 따라다니는데 이 때 마을 농악대가 농기를 흔들고 풍장을 치면서 뒤를 따른다. 놀이패는 먼저 동네우물에 가서 샘굿을 한 뒤 질라애비가 이끄는 대로 집집마다 들러 덕담을 하고 그 집 마당에서 한판 놀며 떡과 술을 얻어먹는다. 진천의 소놀이는 경기도 양주의 소놀이와 비슷하지만 소를 농구로 꾸며 소박한 면을 보여주는 점에 특징이 있다.
이 고장의 동제에는 산신제와 정주제(井主祭)가 있다. 백곡면 성대리의 산신제는 매년 정월 초사흗날 밤 생기복덕에 맞는 사람이 제주가 되어 돼지머리 · 술 · 메 ·3색 과일 등을 차려놓고 마을의 진산에 있는 산신당에서 유교식으로 제를 지낸다.
제를 지내기 3일 전부터 마을 입구에 금줄을 치고 마을사람들 모두가 근신하며, 특히 제주는 매일 목욕을 하고 금주 · 금연 · 금색을 하는데 한 번 제주가 되면 운수가 대통한다고 한다. 만약 제기 동안 마을에 출산이나 사망 등 부정한 일이 생기면 제를 연기해야 하고, 모든 제비는 마을에서 공동으로 부담한다.
초평면 용정리에서는 매년 정월 초이튿날 새벽에 마을 우물가에서 정주제를 지낸다. 생기복덕에 맞게 선정된 제주가 우물가에 촛불을 켜고 돼지머리 · 술 · 과일 등을 진설하고 절을 네 번 올리면 마을사람들이 모여 음복을 한다. 제를 지내는 날은 우물가에 금줄을 쳐 우물물을 먹지 못하게 하고 제주는 하루 동안 엄격하게 금기를 지킨다.
진천은 김유신이 태어난 곳이기 때문에 그에 얽힌 인물전설과 지명전설이 다수 전해오고 있다. 김서현이 만노군(萬弩郡: 신라시대 진천의 지명) 태수로 있을 때 아내 만명부인(萬明夫人)이 김유신을 낳았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만명부인은 김유신을 잉태한 지 20개월 만에 낳았다고 하고 그 태를 도서성(道西城)에 묻어 그 곳의 산 이름을 태령산 또는 장태산(藏胎山)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고려사』에는 김유신의 태가 신이 되어 신라 때부터 사당을 세워 춘추로 제사하였고 고려 때에도 이를 지켰다고 전한다. 이 사당에는 김유신부부와 아들 원술(元述)부부의 목상(木像)이 모셔져 있어 누구나 이 앞을 지날 때에는 말에서 내려 걸어갔다고 한다.
그런데 언젠가 어느 충청감사가 말을 탄 채 사당 앞을 지나려 하자 말굽이 땅에 붙어 움직이지 않으므로 이에 노한 감사가 죄 없는 말을 죽여 목상에 그 피를 칠하였다가 그만 그 자리에서 급살을 당하였다 한다.
이 부근에는 김유신이 살았다는 장수터, 말 달리기를 익혔다는 질마재, 그의 송덕을 기려 세웠다는 석불(石佛)이 있는데, 이 석불이 임진왜란 때 장군으로 현신하여 왜병을 막았다고 한다.
광혜원면에는 군사를 훈련시켰다는 화랑벌이 있고, 이월면에는 수도하였다는 장수굴이 있다. 이 굴은 나라에 난리가 있을 때면 울음소리를 냈다고 한다. 이 밖에도 거북머리가 북쪽을 향해 중국을 보고 있어 명나라에 병란이 많다고 하여 이여송(李如松)이 그 머리를 남쪽으로 돌렸다는 「거북바위전설」이 있다.
또 고려의 임연이 하루아침에 다리를 놓았다는 「농다리전설(籠橋傳說)」, 동냥 온 중을 괄시했다가 망했다는 「궁골전설」, 큰 살구나무의 꽃잎이 술로 익어 아기가 없는 부인네가 마시면 아들을 낳고 과거보러 가는 선비가 마시면 급제하였다는 「살구우물전설」 등이 전해온다.
이 고장은 평야지대로 논농사가 주업을 이룬다. 그런 까닭에 농업노동요가 전승되는데 「모찌는 노래」 · 「모심기노래」 · 「논매는 노래」가 있다. 이들의 가사와 가락은 경기도의 것과 비슷하다. 이는 진천군이 경기도와 인접해 있다는 지역적 특징의 반영인 것이다.
「모찌는 노래」는 느린 중중모리장단인 두 장단으로 선소리꾼이 앞소리를 메기면 “쪘네 쪘네/ 나도 쪘네”라는 두 장단 뒷소리를 여럿이 받는다. “신농씨가 뿌린씨를/ 일추월장 자리날세/ 쪘네 쪘네/ 나도 쪘네/ 밤이 되며는 이슬을 맞고/ 낮이 되면 양기를 받어/ 쪘네 쪘네/ 나도 쪘네/ 속잎나고 겉잎자라/ 일추월장 자랐으니/ 쪘네 쪘네 나도 쪘네 ……”처럼 부른다.
「모심기노래」는 주로 「아리랑」을 부르는데 세마치의 8장단으로 선소리를 메기면 여럿이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얼시구 아라리가 났네”라는 뒷소리를 받는다. 들어보면 “…… 일녘 서산에 해떨어지면/ 월축은 동녘 달솟아온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얼시구 아라리가 났네/ 이 농사를 지어내서/ 호국충성 다한 후에/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얼시구 아라리가 났네 ……”와 같다.
「논매기노래」는 「방개소리」를 부르는데 대개 중중모리장단인 두 장단으로 선소리를 메기면 “어기야 에헤야 방개가 논다”라고 뒷소리를 받는데 모두 메나리목으로 부른다.
이 밖에 「팔자요」가 있는데 어려서부터 늙을 때까지의 풍모와 기상을 노래한 것이다. 들어보면 “박토에 심은넌출 무성히 올라가서/ 다썩은 지붕위에 청운이 서려있네/ 석로에 꽃이피고 조로에 열매맺혀…… 곳곳이 다니나 척주빈골이 다썩어지는고나/ 갈곳이 어데메뇨 갈곳이 두업일세/ 벽상 고붕에 낙낙장송 되였든들 ……”과 같다.
군의 토지이용을 보면, 총면적 407.26㎢ 중 임야는 232.93㎢, 논은 61.67㎢, 밭은 36.33㎢, 과수원은 2.04㎢, 대지는 8.39㎢ 등인데 논이 밭보다 많다. 백곡저수지 · 초평저수지 · 연곡저수지가 이 지역에 농업용수를 공급한다.
군의 중앙부는 진천들, 북부는 덕산들과 이월들 등이 있어 진천평야를 이루고 있으며, 이곳에서 생산된 쌀은 질이 좋기로 유명한 진천쌀이 되고 있다. 그 외 식량작물로는 약간의 겉보리가 생산되고 옥수수 · 콩 · 팥 · 고구마 · 감자 등이 많이 생산된다.
채소류로는 무 · 배추 · 파 · 오이 · 참외 · 수박 · 고추 · 마늘 · 시금치 · 딸기, 특용작물로는 땅콩 · 잎담배, 과실류로는 배 · 포도 · 복숭아 · 사과 등이 많이 생산되고 있는데, 특히, 잎담배 재배가 활발하다. 가축으로는 닭 · 돼지 · 오리 · 사슴 · 개 · 산양 등이 많이 사육되고 있다. 내수면 어업을 통해 매해 200M/T 이상의 어류가 생산되고 있다.
사업체수는 1127개 업체(산업단지 10, 농공단지 8)(2018년 7월 기준)이며, 주요산업단지로는 진천 · 덕산 · 초평 · 이월 · 광혜원농공단지, 문백전기전자농공단지, 광혜원산업단지 등이 있다. 군의 농공단지는 충청북도 전체에 비해 고용 · 생산 · 판매 등의 효과가 상대적으로 크게 나타나고 있다.
상업활동은 6개의 정기시장이 있었으나 백곡장과 초평장은 1960년대 이후 농촌주민의 유통 근대화에 따른 정책적 이유로 없어지고 현재는 진천장 · 덕산장 · 만승장 · 이월장 등 4개의 정기시장이 있다.
진천장은 진천읍 읍내리에서 5·10일, 만승장은 광혜원면 광혜원리에서 3·8일, 덕산장은 덕산면 용몽리에서 4·9일, 이월장은 이월면 송림리에서 1·6일에 열린다. 진천장은 군내에서 가장 큰 중심시장으로 우시장도 열리고 있고 만승장 · 이월장 · 덕산장은 주변의 평야지대를 배후지로 하여 일찍부터 발달했으나 최근에 급격한 쇠퇴를 겪고 있다.
도로망은 중부고속도로가 북방의 서울, 남방의 청주와 연결되며, 평택제천고속도로를 통해 안성 및 충주와 연결된다. 또 교통은 남북으로 서울과 청주를 연결하는 국도 17호선, 동서로 성환과 증평을 연결하는 국도 34호선 및 천안과 금왕을 연결하는 21호선이 있어 매우 편리한 편이다.
관광 휴양자원으로는 초평저수지, 백곡저수지, 길상사, 김유신 탄생지와 태실, 숭렬사, 정송강사, 노원리 왜가리 번식지, 노은영당, 농다리 등이 유명하다.
초평저수지는 진천읍에서 증평군 방면으로 13㎞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저수지이다. 전국에서 낚시터로 유명한데, 1977년에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었으며 호텔과 주차장 등의 위락시설을 갖추고 있다. 백리내는 김유신장군의 탄생지로서 벽암리에는 장군을 모신 길상사가 있다.
숭렬사는 진천읍 교성리에 있는 이상설의사를 모신 사당이고 문백면 봉죽리의 정송강사는 송강 정철(鄭徹)을 모신 사당이다. 이월면 노원리의 노은영당은 신잡선생을 모신 사당이며, 이월면 노원리는 왜가리 번식지로 유명하다.
문백면 구곡리에는 농다리가 있다. 농다리는 28간인데 현재는 양편에 2간씩 매설되어 24간만이 남아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긴 다리이다. 축조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삼국시대 혹은 고려 고종 때 권신 임연(林衍)장군이 세운 다리라고 한다.
또한 진천읍 연곡리의 석비와 성석리의 대모산성, 덕산면 산수리의 백제요지, 광혜원면 실월리의 정인옹주와 홍우경의 묘소 등이 있다. 또한 계곡에서 반석으로 물이 흘러내리는 회안반석, 문백리 평산리의 남지 묘소 및 신도비가 있다. 그 외에도 많은 유형문화유산 · 문화유산자료 · 민속문화유산 등의 관광자원이 풍부하다.
군의 중서부에 위치한 읍으로, 읍 소재지는 읍내리이다. 면적은 70.54㎢이며, 인구는 3만 611명(2015년 현재)이다. 본래 진천군의 남쪽이 되므로 남변면(南邊面)이라 하여 15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북변면(北邊面)의 12개 리, 행정면(杏井面)의 20개 리, 성암면(聖巖面)의 32개 리, 덕문면(德文面) · 월촌면(月村面) · 백곡면의 일부가 편입되어 군중면(郡中面)이라 불렸다가 1917년에 진천면이 되었다.
1930년에 명암리와 사송리가 백곡면에, 태락리가 문백면에 이속되었고 덕산면 삼덕리가 편입되었다. 1973년에 읍으로 승격되었다. 1983년에 이월면의 송두리, 가산리와 덕산면의 상진리 · 산척리가 편입되었다.
남서부는 환희산 · 덕곡산(德谷山, 409m) · 봉화산(烽火山, 415m) 등을 중심으로 고도 200∼400m의 구릉성 산지로 되어 있다. 북동부는 미호천의 지류인 백곡천이 남동류하여 넓은 평야가 전개되고 있다. 건송리의 백곡저수지(일명 진천저수지)는 백곡천 중류를 막아 만든 텐타게이트식 저수지로서 3,079㏊의 몽리면적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백곡천 유역은 인근 덕산면 · 이월면과 함께 군내는 물론 도내의 주요한 곡창지대를 이루고 있어 많은 미곡을 생산하고 있다. 그 외의 식량작물로는 콩 · 들깨 · 참깨, 과실류로는 배 · 사과 · 복숭아 등이 많이 생산되고 있다. 가축으로는 돼지 · 닭 · 오리 · 개 등이 사육된다.
관내에는 금암공단과 진천농공단지가 있다. 읍을 중심으로 군내의 각 지역과 타군 방면으로 도로가 방사상으로 발달해 있다. 동단부에는 중부고속도로가 남북으로 통과하며 진천 나들목이 개설되어 있어 교통은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연곡리의 석비, 교성리의 진천향교 · 충렬사 · 연화대좌, 신정리의 용화사 석조여래입상, 석성리의 대모산성, 벽암리의 도당산성 · 길상사, 상계리의 김유신탄생지와 태실, 건송리의 식파정, 산척리의 이상설 생가 등이 있다.
읍내리(邑內里) · 성석리(聖石里) · 송두리(松斗里) · 가산리(佳山里) · 상신리(上新里) · 산척리(山尺里) · 삼덕리(三德里) · 신정리(新井里) · 원덕리(院德里) · 교성리(校成里) · 벽암리(碧巖里) · 행정리(杏井里) · 장관리(長管里) · 건송리(建松里) · 연곡리(蓮谷里) · 상계리(上桂里) · 문봉리(文鳳里) · 금암리(錦巖里) · 사석리(士石里) · 지암리(芝巖里) 등 20개 리가 있다.
군의 북단에 위치한 면으로 면 소재지는 광혜원리이다. 면적은 29.86㎢이며, 인구는 1만 1304명(2015년 현재)이다. 본래 진천군 지역으로 만디(만승)의 이름을 따서 만승면이라 하여 36개 마을을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경기도 죽산군 남면 일부와 음성군 사다면(沙多面) 일부가 편입되었다. 1983년에 내촌리와 사당리가 이월면에 이속되었다. 2000년에 광혜원면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서부는 차령산맥이 뻗어 있는 구릉성 산지이고 중앙부는 구암천(鳩巖川)이 구암리 덕성산에서 발원하여 구암리에서 구암저수지를 이룬다. 이어 동남쪽으로 흘러 면의 중앙부를 지나 금곡리에서 용소를 이루고 있으며, 내촌리 남쪽에서 미호천으로 흘러든다. 동쪽 면계는 칠장천(七長川)이 광혜원리를 지나 남류하고 있다. 동부는 이월면과 연속된 진천평야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주요 농산물로는 쌀 · 옥수수 · 콩 · 수수 등이며, 특용작물로는 땅콩 · 참깨 · 들깨, 과실류로는 사과 · 포도 · 복숭아 등이 생산되고 있다. 가축으로는 닭 · 개 · 사슴 · 젖소 · 한우 등이 많이 사육되고 있는데, 사슴은 군내에서 가장 많이 사육되고 있다.
임산물로는 밤 · 도토리 등이 많이 생산된다. 광혜원농공단지와 산업단지가 위치하고 있다. 회죽리에는 국가대표선수촌이 있다. 도로는 죽산면과 진천읍을 연결하는 국도가 남북을 통과하며 동쪽으로는 대소면과 연결되는 지방도가 있다. 남쪽으로 평택제천고속도로가 통과하면서 북진천 나들목이 개설되어 교통은 매우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실원리에 조선 선조의 정인옹주(貞仁翁主)와 홍우경(洪友敬)의 묘소가 있다. 광혜원리(廣惠院里) · 실원리(實院里) · 구암리(鳩巖里) · 회죽리(會竹里) · 죽현리(竹峴里) · 금곡리(金谷里) · 월성리(月城里) 등 7개 리가 있다.
군의 동북부에 위치한 면으로 면 소재지는 용몽리이다. 면적은 35.03㎢이며, 인구는 8,914명(2015년 현재)이다. 본래 진천군 지역으로 덕문면(德文面)이라 하여 13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방동면(方洞面)의 11개 리, 소답면(所畓面)의 13개 리, 산정면(山井面)의 23개 리, 북변면(北邊面)의 2개 리, 남변면(南邊面)의 일부와 음성군 맹동면의 6개 리가 편입되어 덕문면과 산정면의 이름을 따서 덕산면이 되었다.
1929년에 삼덕리가 진천면에, 오갑리가 초평면에 귀속되었고 1983년에 상신리 · 산척리가 진천읍에, 중석리가 초평면에 편입되었다. 대부분이 100m 이하의 평지로서 중앙부에 미호천의 지류들이 남류하고 있는데 일부 구릉지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경지로 이용되고 있다.
진천평야의 중심지로서 경지율이 매우 높아 군내에서 미곡이 가장 많이 생산된다. 구릉지에서는 수수 · 옥수수 · 콩 등의 식량작물과 잎담배 · 고추 등이 생산되고 있다. 특용작물로는 참깨 · 땅콩 · 들깨, 과실류로는 사과 · 배 · 복숭아 등이 재배되고 있다. 가축으로는 닭 · 오리 · 돼지 · 개 등이 많이 사육되고 있다. 신척 및 산수일반산업단지와 덕산농공단지가 있다.
용몽리를 중심으로 도로가 방사상으로 뻗어 있어 진천읍과 음성읍으로의 교통은 편리한 편이다. 문화유적은 석장리에 고대 철생산 유적, 산수리에 백제요지와 두촌리에 송인 묘소, 기전리에 이영남 묘소가 있다. 무형유산으로는 용몽리에 용몽리 농요가 있다.
용몽리(龍夢里) · 신척리(新尺里) · 한천리(閑天里) · 합목리(合牧里) · 산수리(山水里) · 화상리(花上里) · 인산리(仁山里) · 구산리(九山里) · 기전리(璣田里) · 두촌리(斗村里) · 석장리(石帳里) · 옥동리(玉洞里) 등 12개 리가 있다.
군의 남부에 위치한 면으로 면 소재지는 옥성리이다. 면적은 60.21㎢이며, 인구는 3,870명(2015년 현재)이다. 본래 진천군 지역으로 문방면(文方面)이라 하여 22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백낙면(白洛面)의 15개 마을, 덕문면(德文面)의 일부와 청안군 서면(西面) 일부가 병합되어 문방과 백락의 이름을 따서 문백면이 되었다. 1930년에 연담리가 초평면에 귀속되는 동시에 진천면의 대락리가 편입되었다.
중앙부에 양천산(350m)이 솟아 있으나 백곡천과 미호천의 합류지역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고도 200∼300m의 저산성 구릉지를 이루고 있다. 주요 농산물로는 쌀과 잡곡, 땅콩 · 참깨 · 담배 등의 특용작물과 배 · 포도 등의 과실류가 많이 생산되고 있다.
가축으로는 젖소 · 닭 · 오리 · 돼지가 사육되고 있는데 젖소는 군내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고 있다. 면의 중앙을 통과하는 국도에 의해 북쪽의 진천읍과 남쪽의 청주시 오창읍에 연결되어 있다. 문화유적은 봉죽리에 송강사, 장월리에 망북정, 구곡리에 농다리, 평산리에 남지 묘소 및 신도비 등이 있다.
이 외에도 구곡리의 열녀문과 효자문, 사양리의 이씨영당 등이 있다. 평산리 평사마을에서 미호천을 따라 소두머리에 이르는 곳은 맑은 물이 금모래 위로 흐르고 양쪽 기슭에 깎아 세운 듯한 절경이 계곡마다 장관을 이루는 평사절경(平沙絶景)이 있다.
옥성리(玉城里) · 봉죽리(鳳竹里) · 계산리(溪山里) · 도하리(道下里) · 은탄리(銀灘里) · 장월리(長月里) · 사양리(思陽里) · 평산리(平山里) · 구곡리(九谷里) · 문덕리(文德里) · 태락리(台洛里) 등 11개 리가 있다.
군의 북서부에 위치한 면으로 면 소재지는 석현리이다. 면적은 80.09㎢이며, 인구는 2,186명(2015년 현재)이다. 본래 25개 마을을 관할하였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행정면(杏井面)의 명암리가 편입되었고, 1930년에는 진천면의 사송리가 편입되었다.
서북쪽에는 서운산(瑞雲山, 547m), 동쪽에는 무제봉(武帝峰, 573m) · 옥녀봉(玉女峰, 456m), 남쪽에는 만뢰산(萬賴山, 614m), 중앙부에는 장군봉(將軍峰, 435m) · 백석봉(白石峰, 467m) 등의 산지가 있어 평균 200∼400m의 구릉성산지가 발달하고 있다.
미호천의 상류인 백곡천(栢谷川)이 남동류하여 하천유역에 좁은 곡저평야를 발달시키고 있다. 논 면적이 적어 쌀 생산량은 군내에서 가장 적은 대신에 밭농사가 성하여 고추 · 콩 · 포도 · 복숭아 등이 많이 생산된다. 특히 산간지대의 완경사지를 이용하여 잎담배 재배가 활발하다.
가축으로는 돼지 · 닭 등이 많이 사육되고 특용작물로는 땅콩 · 들깨 · 참깨가 많이 생산된다. 남부에는 진천∼천안시 성환 간의 국도가 있고 백곡∼경기도 안성 간의 지방도가 남북으로 통하고 있어 면의 남부지역은 교통이 매우 편리하다.
문화유적으로 구수리의 장군봉은 신라 김유신장군이 무술을 연마하던 산이라고 전해진다. 석현리에는 절정지(節亭址), 사송리에는 경주이씨의 열녀문이 있다. 그리고 갈원리에 만뢰사 · 산성 등이 있다.
석현리(石峴里) · 구수리(九水里) · 대문리(大門里) · 갈월리(葛月里) · 양백리(兩白里) · 성대리(城大里) · 용덕리(龍德里) · 명암리(明岩里) · 사송리(沙松里) 등 9개 리가 있다.
군의 북부에 위치한 면으로 면 소재지는 노원리이다. 면적은 55.21㎢이며, 인구는 7,555명(2015년 현재)이다. 본래 진천군 지역으로 이곡리(梨谷里)의 이름을 따서 이곡면(梨谷面)이라 하여 25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월촌면(月村面)의 26개 마을, 만승면의 8개 마을, 방동면(方洞面)의 매산리, 덕문면(德文面)의 중가리, 음성군 대조면(大鳥面)의 미곡리 · 사다면(沙多面)의 사산리가 병합되면서 이곡과 월촌의 이름을 따서 이월면이 되었다.
1983년에 송두리와 가산리가 진천읍으로 귀속되었고 만승면의 사당리와 내촌리가 편입되었다. 서쪽 경계에 무제봉(武帝峰, 573m) · 옥녀봉(玉女峰, 456m)이 솟아 있고 북쪽 경계에 옥정현(玉井峴, 335m)이 있으나 대부분은 구릉지이다.
미호천이 북부에서 남류하여 중앙부에서 남동쪽으로 흐르고 있어 덕산면, 진천읍과 더불어 진천평야의 중심지를 이루며, 미곡의 곡창지대를 형성한다. 서부의 완사면은 밭과 과수원 등으로 이용되고 잡곡 · 고추 · 잎담배 등의 재배도 활발하다. 과실로는 사과 · 배 · 복숭아 등이 많이 생산되고 있다.
축산물로는 오리 · 돼지 · 한우 · 젖소 등이 있는데, 오리는 군내에서 가장 많이 사육되고 있다. 이월농공단지가 있다. 도로는 진천읍과 음성∼경기도 안성 간의 지방도가 중앙부를 관통해 교통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노원리에 마애여래입상 · 왜가리 번식지 · 신잡 초상 · 신헌 고가 · 신화국 백자청화 묘지, 사곡리에 마애여래입상 · 이집 묘갈 등이 있다.
송림리(松林里) · 신계리(新溪里) · 장양리(長陽里) · 노원리(老院里) · 사곡리(沙谷里) · 중산리(中山里) · 동성리(東城里) · 삼룡리(三龍里) · 신월리(新月里) · 미잠리(美蠶里) · 사당리(沙堂里) · 내촌리(內村里) 등 12개 리가 있다.
군의 동부에 위치한 면으로 면 소재지는 용정리이다. 면적은 76.28㎢이며, 인구는 3,541명(2015년 현재)이다. 본래 31개 마을을 관할하였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산정면(山井面)의 3개 리와 문방면(文方面)의 일부가 편입되었다. 이때 삼치리는 음성군 원남면에 귀속되었다.
1930년에 덕산면의 오갑리, 문백면의 연담리, 청원군 북이면의 은암 · 진암 · 용산 · 용기리가 편입되어 11개 리가 되었다. 1983년에는 덕산면의 중석리가 편입되었다.
동부에 두타산(頭陀山, 598m)이 솟아 있으나 대부분의 지역은 고도 200∼500m의 저산성 구릉지이다. 초평천이 남쪽으로 흐르며, 하류에는 초평저수지가 축조되어 있다. 초평저수지는 내수면적 258㏊, 담수량 2,510만M/T, 몽리면적 3,078㏊로 자연경관이 아름답고 낚시터로 유명한 저수지이다.
논은 초평천 유역에 좁게 분포하여 미곡생산량은 많지 않다. 그러나 산록 완사지의 밭에서는 콩 · 수수 · 옥수수 등의 식량작물과 참깨 · 들깨 · 땅콩 등의 특용작물, 사과 · 포도 등의 과실류가 많이 생산되고 있다. 가축으로는 돼지와 닭을 중심으로 사육되고 있으며 양봉도 이루어진다.
군내에서 내수면어업이 가장 발달하여 연간 77.9M/T의 어류가 양식되고 있다. 초평공단과 초평농공단지가 있다. 도로는 진천읍∼증평읍 간의 지방도가 지나고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영구리에 두타산성, 용정리에 태화4년명 마애여래입상과 이시발 신도비, 용기리에 금성대군 사당 등이 있다.
용정리(龍亭里) · 중석리(中石里) · 오갑리(五甲里) · 화산리(畵山里) · 영구리(永九里) · 금곡리(琴谷里) · 신통리(新通里) · 연담리(蓮潭里) · 은암리(隱巖里) · 진암리(陳巖里) · 용산리(龍山里) · 용기리(龍基里) 등 12개 리가 있다.